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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주한옥마을 그림으로 만나다

 


'드러냄'과 '드러남'의 차이를 아시나요? 어느 때부터인가 '드러남' 보다 '드러냄'을 중요시하는 흐름이 우리 사회 속에도 들어왔습니다. 한옥마을은 드러남의 대명사입니다. 지붕같은 한옥마을의 사랑채에는 흰구름이 윤무하고 침실같은 대지와 출렁이는 바다에는 푸른 산과 꼬막 등 같은 사람의 집, 아름다운 물길이 있습니다. 한옥마을의 고샅길은 언제나 꽈배기처럼 이리저리 휘어져 있구요, 한자락씩 마을의 풍광을 엿볼 수 있게 끔 돼 있어 매력 덩어리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어린 시절 실팍하게만 느껴졌던 외할머니의 등판이 그리워집니다. 자, 떠나요. 모든 걸 훌훌 버리고 피곤한 심신을 어루만질 수 있는 한옥마을 태조로에서, 은행로에서 좀 쉬었다가 가시구려.


△정인수작가의 펜(pen)화, 오붓한 펜(fan)

 

 

 

 

 

 

 

 

 

펜화의 멋을 아시나요? 옛 사람들은 그림 감상을 일러 '간화(看畵)', 즉 '그림을 본다'는 말보다 '독화(讀畵)', 곧 '그림을 읽는다'는 말을 썼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받아본 제자 이상적이 스승께 올리는 편지에서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음'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고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읽는' 것과 '보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정인수작가가 전주향교 은행나무, 경기전의 매화, 한벽당과 바로 옆의 요월대, 그리고 한옥마을 전경을 통해  '세월이 가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꽃심을 지닌 땅, 전주'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전동성당, 경기전, 경기전의 매화 등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양의 대표적인 필기도구인 펜. 그러나 날카로운 펜 끝으로 동양의 멋을 그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얼키설키 우리네 황토를 구워 만든 담장 너머의 매화 가지 위에 휘영청 보름달을 띄웠습니다. 시나브로 가지 끝엔 걸린 달에 한 마리의 새가 둥지를 틀고 앉아 웃습니다. 이내 매화가 송이송이 피어나면서 탐스럼을 더합니다. 단색이 주는 아름다움은 같지만 자세히 보면, 펜화는 붓과 달리 세밀하고 정교합니다. 흡사 수를 놓은 듯, 펜 끝에서 나온 가느다란 선은 작가가 무늬 하나하나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했음을 보여줍니다.
 펜화를 그리기 위해 꼼꼼하게 살피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건축물의 구석진 곳까지 알게 되는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이내 기왓장의 묵직함, 은행나무의 향내, 처마와 대청의 정취, 정겨운 담장 등이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어느센가, 골목길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박힌 다양한 문화재와 소박한 서민들의 삶이 말을 걸어옵니다 인고의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잎을 피우고 지기를 수백 년, 그렇게 묵묵히 소리 내지 않고 뿌리내리던 고목은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을,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받아들이며 전설을 남기고 있는지도 몰라요. 지금 살아있는 정령(精靈)은 ‘신화’로 시작되는 만큼 무한의 기운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오늘도 작가는 한옥마을은 언제나 슬로시티요, 달팽이요, 안단테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언제나 이곳을 향하는 길목에서 반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배우면서 희망을 얘기하며, 한 박자 건너가는 마음을 통해 가슴에 쌓인 원한과 저린 기억마저도 저 멀리 몰아낼 수 있도록 마음을 다독입니다.  작가의 펜(pen)화, 이제부터는 우리 삶의 오붓한 펜(fan)입니다.

 

△김성욱작가의 천년 나무, 한옥에 물들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내리는 비에 꽃은 젖어도, 꽃향기는 비에 젖지 않았는지 전주천 주변이 향기로 가득합니다. 꽃이 진다고 어찌 바람을 탓하랴. 그저 더 이상 향기를 맡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할 뿐 차에 띄워 마시고 살겠습니다. 꽃이 진다고 어찌 슬퍼만 하랴. 머지 않아 그 자리에 꽃보다 어여쁜 열매가 다시 맺히는 것을. 물에 띄워 차라리 바다에서 만나보겠습니다. 꽃이 핀다고 좋아하지 않으리라. 언젠가는 곧 지고 말 것을. 꽃이 진다고 이제는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곧 다시 피어날 것을.
  당신은 지금 어디 만큼 오고 있습니까. 한옥마을 대청마루에 앉으면 지붕 위 솜털구름이 눈망울에 걸터앉습니다. 이에 질세라, 날렵한 처마 곡선을 훑고 지나는 산들바람, 승암사의 풍경소리되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화선지엔 천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나무들이 한옥과 어우렁더우렁 물들었습니다. '천년나무-한옥에 물들다’를 테마로 한 김성욱작가의 작품은 향토적 분위기가 강하면서도 세속의 담담함을 풀고 맺힌 것을 풀어내는 듯, 유연한 필선의 유희와 맑은 바람과 함께 사방으로 나뭇가지를 퍼트리거나, 어린잎과 꽃잎들로 하여금 춤사위를 보는 듯한 율동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낫으로 가늘고 긴 낭창낭창한 왕죽을 한웅큼 베어 왔습니다. 합죽선에 돌 하나 올리고, 별 하나 얹고, 바람 하나 얹고, 시 한 편 얹고, 그 위에 인고의 땀방울을 떨어 뜨려 소망의 돌탑 하나를 촘촘하게 쌓았습니다. 하늘이 우리 선조들이 눈물을 너무 흘러서 파란색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진중하게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손을 거치면 어느 새, 기억 속 풍경 위에 자유로운 터치들이 부챗살 너머 다양한 모습으로 되살아납니다.  작품을 보면, 밤이면 밤마다 창호에 은은한 달빛이 스펀지처럼 새어들고, 별빛 한가득 쏟아지는 마당으로 내려와 돌담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거닐어보는데, 이에질세라 초대하지 않은 그림자가 동행합니다.  영혼은 하늘가에 올라가 있고, 삶은 지상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가을 바람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지나갑니다. 한옥마을이 알록달록 꽃 물들어 파랑새, 기다림, 동행, 마중, 추억들은 된바람에 갈색으로 물들었군요, 한옥의 대청마루에 앉으면 지붕 위 솜털구름이 눈망울에 걸터 있고, 솟을대문에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 십장생 한자리에 불러 모았으니 진시황도 부럽지 않네요. 어느새, 송수만년 학수천년 무병장수의 꿈 영글어지는 오늘에서는. 별자리로만 날으는 새떼들이 하늘가 구만리 어둠을 뚫고 아득한 행복과 영생의 길을 터줍니다.  작가가 전하는 ‘천년나무-한옥에 물들다’, '바람-한옥에 물들다' , '바람-나무에 물들다' 희망 비나리입니다.

 

△이택구의 한옥마을 풍경 연작

 

 

 

 

 

한옥마을 안에 역사가 숨쉬는 문화재, 막힘없이 흐르는 물길과 고샅을 작가의 애정 어린 눈과 섬세한 손을 통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갈무리했습니다. 그가 그림으로 마름질한 세상, 그 속에서 조금은 괴로운 현실을 잊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오히려 더 강하게 이를 깨부수고픈 욕구를 다져보게 됩니다. 화가란, ‘이끼 낀 섬돌에도 꽃을 피우게 하고, 천년된 나무의 잎에도 새 싹을 틔우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택구 작가는 전주의 특산물 중의 하나인 전통 한지 특히, 장지 위에 먹과 혼합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지막한 한옥마을의 기와집, 오솔길,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 등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통적 소재를 선택해 수평적 구도로 서정적인 ‘풍경 연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잘 느껴질 수 있도록 은은한 먹빛과 황토빛이 자연스럽게 번진 바탕 위에 그린 한옥마을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적 있는 풍경 같기도 하고, 한국고전 전래동화 속에 나오는 상상의 한 장면인 듯 합니다. 화면 위에 잔잔하게 흐르는 고요함, 소박함, 경건함과 단순함은 작가의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그만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전주 한옥마을 또는 생활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등장시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단편소설을 읽는 듯, 복고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고 말합니다  짙게 드러워진 겨울 밤, 황금빛 태양을 잔뜩 머금은 전주천 등 작품마다 오롯이 솟구치는 세월의 파편들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치열하게 살고 있는 오늘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작가가 말합니다. 한옥마을을 그리워하면 한옥마을을 닮은 사람이 된다구요. 하늘을 그리워하면 누구나 하늘을 닮은 사람이 되지 않나요. 자그만 전주천이 총총한 별에 의지하고 살붙이 생명들이 별빛을 배고 수초 아래서 곤히 잠을 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