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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새통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

 

섬진강이 들꽃으로 피어났다. 송만규 화가의 삶 전체를 굽이치는 이름, 섬진강. 어느 정월 대보름날 김용택 시인의 집에 들러 처음 섬진강을 만났다. 그 물길이 마치 ‘태초의 자연’을 닮은 듯 원초적인 생명력을 느꼈다는 그는 섬진강에 붓을 빠뜨리고 인생을 담근 지 20년이 넘었다. 섬진강에 대한 지독할 만큼 각별한 애정은 그를 ‘섬진강 화가’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비앤씨월드)’는 그동안 개인전과 다양한 매체에 통해 소개된 그림과 글을 모은 작품집이다. 무엇보다도 섬진강 화가로서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떤 물길 속에 변화해 왔는지 보여준다. 2000년대의 작품들이 서정적이면서도 거대하고 웅장한 섬진강의 생명력을 보여주었다면 지금의 그림은 더욱 소박하고 수수해졌다. 이는 한결 작아진 작품의 크기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호젓한 자태를 드러냈던 섬진강은 이제 이름도 낯선 작은 들꽃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화가 송만규는 사물을 향해 몸을 더욱 낮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들꽃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있었다. 기꺼이 ‘바닥에 입술을 대고(개인전)’ 이 땅의 민중과 ‘낮은 이’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그가, 눈에 띄지 않는 들꽃에 손길을 내미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봤을 때 당연한 귀로일 터이다.  그림은 화려한 기교를 뽐내거나 정교하게 자연을 모사하지도 않는다. 한 귀퉁이에선 자신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들꽃의 강인함과 그에 대한 애처로움, 사랑스러움이 작품마다 묻어난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사람들의 고된 인생살이도 어루만진다. 강이 들꽃의 일부가 되듯이 인간이 서로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것이리라. 지금의 서글픈 경쟁 사회에서 무언가의 메시지가 들리는 듯 하다.
 저자는 2002년,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순창 구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장장 21m, 24m에 이르는 긴 그림 ‘새벽강’, ‘언강’ 등을 그렸고, 섬진강 물길 따라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한지에 수묵으로 표현한 바, ‘섬진강 화가’로 불리게 됐고, 국내외 갤러리에서 18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졌다.  이밖에 <땅전>, <JALLA전>, <전국민족미술인연합전>, <독섬-독도전>, <ASIA-그리고 쌀전>, <동학농민혁명100주년전> 등에 참여했으며, 현재 순창 구남마을의 섬진강 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붓을 잡고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