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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창문학비

부안 매창시비

 

날씨가 풀리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봄이 오면 배꽃이 흐드러져 ‘이화우’가 쏟아진다. ‘이화우’는 매창이 남긴 절창이다.

 

梨花雨(이화우) 흣날릴제 울며잡고 離別(이별)한 님
秋風落葉(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千里(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화우 전문)

 

 

매창(1573∼1610)은 중종 때의 부안의 기생이다. 매창은 다재다능한 인텔리 여성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향금(香今)이며 호를 계랑, 매창(梅窓). 계생(桂生)이라 했다. 한시에 능하고 거문고에 뛰어났으며 시조 1 수와 한시 70 여 수가 전 한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 문사인 유희경, 허균등과 교류했고 부안 기생으로 개성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뤘다.
매창은 당대의 시인이며 현사였던 촌은 유희경의 시에 매료되어 그를 매우 흠모하게 되었다. 50 대의 시인과 19 세의 계랑은 시를 화답하고 거문고 가락에 취해 그 날로 사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랑이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골칫덩어리인 일본이 침공해 온 것이었다. 계랑이 촌은을 만나자 마자 이별을 하게 되었다. 촌은은 사랑보다 나라 일이 더 중하므로 울며 붙잡는 매창을 두고 의병을 모아 싸움터로 나아갔다. 어느덧 가을이 되어 창 밖에는 낙엽이 지고 있었다. 계랑은 그것을 보면서 애끓는 시조 한 수를 지었다. '이화우‘ 가슴에 미어오는 절창이다.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다. 나이 차이를 초월하며 싹튼 사랑.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고  시 솜씨가 훌륭했던 두 사람은 시로, 감정을 나눈 애절한 사랑을 나누다가 매창은 끝내 촌은을 잊지 못하고 38 세로 세상을 떠났다.
매창이 죽고 40여 년이 지난 뒤 부안의 시인들의 모임인 ‘부풍시사’에서 그녀의 묘비를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58 년이 되는 해에는 그녀의 한시를 모아 <매창집>을 간행했다. 부안군청 뒤 상소산 서림공원에 오르다보면  38세를 살다간 매창의 시심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시비가 있다. 

 

 

 매창과 촌은의 로맨스. 뜨겁고 화려한 사랑 이야기보다 애절함과 진심이 담긴 사랑이라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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