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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훈옛그림

진재 배석린

 

 

 

 

 

 

 

 

진재 배석린 (晉齋 裵錫麟, 1885-1957)은 1885년(고종 22) 9월 25일 출청북도 영동(永同)에서 태어났으나 오랜 관직생활로 전북 일대에서 일생을 살았다. 그는 일제강점기 관리 및 서화가로, 호는 진재(晉齋)이며,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1891년부터 가정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06년 일어강습소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8월 강습소가 폐지되면서 퇴학했다. 1907년사립 보명의숙(普明義塾)에 들어갔으나 역시 학교가 폐지되면서 퇴학하였고, 1908년 사립 장흥의숙(長興義塾)을 들어가 졸업을 한 후, 인천의 인명학교에서 교사로, 9월에는 내각위원사무촉탁시무(內閣課員事務囑託視務)로 일하였다.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1911년 총독부 경찰관서 통역생으로 채용되어 경상북도 선산군에 배치받은 것을 계기로 경찰계에 들어섰다. 1923년 11월 보통문관시험(보통고시)에 합격하였고, 1924년 5월에 경부(警部)로 승진하여 대구경찰서, 영천경찰서, 청송경찰서에서 차례로 근무하였다.
 이후 전라북도 전주군 서기로 임명되어 거주지를 옮겼다. 전라북도 도청의 지방과, 사회과, 학무과, 문서과 등 여러 부처를 거친 뒤, 1924년부터 무주, 고창, 김제, 남원의 군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퇴직을 앞둔 1937년을 기준으로 정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남원군수로 재직하던 중 1935년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공로자명감』에 725번째 조선공로자로 올랐으며, 이 책자에는 "당당한 체구의 소유자로 활동력이 풍부하면서 매우 유화하고 친절하다."라는 인물평이 실려 있다.
 산수, 인물, 영모도, 화조, 사군자 등 다양하게 잘 그렸으나 특히 묵란도를 더 더욱 잘 그렸으며, 글씨와 그림을 독학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대회에서 수상했다.
  1924년 제 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묵죽(墨竹)」으로 입선하고 「묵란(墨蘭)」으로 3등상을 받았다. 1926년 제 5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안노공삼표(顔魯公三表)」라는 작품으로 입선하였다. 또 1929년 제 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춘우의(早春雨意)」, 「벽산고루(碧山高樓)」 등으로 입선한 가운데 효산 이광열, 유당 김희순 등과 교유했다.
그의 딸은 숙당 배정례(1916-2006) 화백이며, 아들은 판화가 배륭(1930-1992), 손자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지낸 조소가 배형식(1926-2002)이다./서보훈 A-옥션 전무이사


그림1. <산수 8폭>, 비단에 수묵, 121 x 27.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2. <산수>, 종이에 수묵, 23 x 3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3. <산수 2점>, 비단에 수묵, 66 x 2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4. <묵죽, 묵국>, 비단에 수묵, 66 x 2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5. <묵난>, 비단에 수묵, 130.5 x 32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6. <묵란도 2점>, 비단에 수묵, 128 x 34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7. <묵죽도>, 종이에 수묵, 136 x 51.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8. <묵란도>, 종이에 수묵, 136 x 51.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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