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한낮에는 여전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9월 중순이다. 지평선 축제를 홍보가 한창인 김제시 벽골제에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문학비’를 찾았다. 2000년 9월 제막된 이 문학비는 ‘김제 들판은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는 문구가 작가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 '아리랑'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그리고 일본의 패망에 이르기까지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들과 허구적 인물들을 등장시켜 당시 한민족이 겪었던 수난을 다각도에서 묘사한 작품으로 민중들이 겪는 고초, 암담한 민족의 현실, 일제의 수탈과 착취, 반민족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의 만행, 조국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애국지사들의 삶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조정래씨가 김제시 죽산면 내촌마을에 수차례 거주하며 지역민의 고증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유네스코의 세계무형유산인 ‘아리랑’은 모든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는 우리 민족의 단순하면서도 애잔한 가락으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며 흘러 온 우리 민족사와 닮았다. 조정래씨는 1943년 전남 승주출신으로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70년대 데뷔작인 ‘누명’을 통해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수십 편의 중, 단편 소설과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을 집필했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단재문화상을 수상했다.
김제시에서 아리랑 문학비 건립에 이어, 2003년 부량면 용성리에 지상 2층 규모로 ‘아리랑문학관’도 개관했다. <아리랑>의 문학과 역사의 고장으로서 김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아리랑>에 담긴 문학정신과 역사의식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2012년에 김제 죽산면에 대대적으로 ‘아리랑문학마을’ 건립하였는데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현실적 공간으로 재현한 곳이다.
홍보관에 ‘문학은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말이 어설픈 무명작가를 부끄럽게 한다. 홍보관을 중심으로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등이 재현되어있고 내촌,외리마을, 이민자 가옥, 하얼빈 역사, 복합상영관으로 구성 되어있다. 전시 내용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수탈한 대표적인 주요 기관별 활용자료와 수탈당하는 모습을 설명한 자료와 이미지들이며 주재소는 무시무시한 장소로 민초들을 잡아서 고문하던 상황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역사가 복원되어 있다. 역사 내에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당시 조선 통감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순간을 재현한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광복 70주년이 되도록 유해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안 의사의 영혼은 어느 구천을 헤매고 있을지 마음이 무겁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하여 외지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김제에는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진묵대사와 송남 이병기의 시비가 김제시민문화체육공원내, 최학규의 시비가 성산공원에 세워져있다. 승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봉서사에서 출가 신이로운 행적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 뒤 일정한 주처 없이 천하를 유람하였다. 변산의 월명암, 전주의 원등사, 대원사등에 있었다. 신통력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이적을 많이 행하였다고 전한다. 공원내 <노래>제목의 시비가 있다. '하늘 이불 땅자리/ 산을 베개로 삼고 /달 촛불 구름 병풍/ 바다를 술통 삼다 /취할수록 의젓하게/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 산자락에 걸릴까 싶다(노래 전문)'
송남 이병기(李炳基 1932. 3. 10 ~ 2008. 10. 9)는 김제출신의 시인이며 교육자이다. 이리농림중고, 동국대 국문과, 전북대 대학원등을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전북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직하였다. 그는 농촌 출신답게 소탈한 호인이며 술자리 어울림이나, 텁텁한 말솜씨가 그러했고, 걸쭉한 농담과 해학도 푸짐했다고 한다. <현대문학1964>에 시 초회 추천,〈한국일보 1968> 신춘문예에 시조「에밀레」가작,〈동아일보1969>에 시조「석류초」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시비는 2009년 시민문화체육공원에 건립됐다. 시비에 새겨진 ‘돌아가야 하리’ 전문이다. ' 두레가 나면/ 모두 즐기던 들녘마을에/ 모정에 앉아 가을을 나르던/ 젊은 보람의 결실에,/울 없이 살아도/ 도둑 없이 도란거리는 이웃에,/ 모깃불 피우면 별 이야기 듣던/ 할머니 뒤에 기운 은하에,/ 생각하면 떠났던 아픔이/ 풀려오는 봄의 잔디에,/ 돌아가야 하리/ 바작으로 부려놓듯/ 두엄같이 구수한 마을에'
김제시 성산공원으로 으로는 길에 최학규(崔鶴奎 1910 - 1976)의 ‘금산사’ 시비가 있다. 김제출신 현대 시인으로 호는 고산(古山)이다. <현대문학 1964>에 시 ‘꽃’ 으로 추천을 받았다. 그는 동양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서정의 농도를 짙게 풀어 쓴 시인이라고 한다. 시비의 ‘금산사’전문이다. '천문동 푸른 골짝을 은하가 이어 흘러 내 가는단 血管(혈관)에도 푸른 물소리 스며든다./ 칠층탑 감고 넘은 검푸른 하늘에는 상기 푸른 입김이 서려 있어라./ 침묵과 더불어 자리하신 부처 앞엔 念佛 염불도 되려 俗(속)된 푸념 같아 머리끝까지 젖어드는 목탁 소리에 차라리 눈을 지그시 감아 본다. /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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