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과 전원의 풍치를 담아 260여 편의 작품 남겨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 ‘김삼의당김씨(三宜堂金氏)’의 시비를 찾아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진안 마이산을 찾았다. 1억년전의 신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말귀를 닮은 마이산! 세계 유일의 부부봉인 마이산은 마이산 암 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 고개를 경계로 북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으로 흘러들고 남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2011년에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안내서 ‘미슐랭그린가이드’에 소개되어 별세 개의 만점을 받은 국내 최고의 여행명소이다. 남부 매표소를 지나 마이산 산을 천연 탑으로 하여 그 그림자가 드리우면 선경이 된다는 탑영제(塔影堤) 저수지를 지나는 지점에 ‘진담락당 하립, 삼의당김씨 부부 시비(湛樂堂河砬三宜堂金氏夫婦詩碑)’를 만난다
‘부부는 인 륜비롯/만복의 바탕이라/도문시 이 한편을/마음속 새겨보오/왼집안 화목해야/온갖 일 이뤄지리(담락당 하립 시 ‘초야 창화’ 전문)’
‘부부는 백성비롯/군자의 기본이라/ 공경과 순종함은/오로지 아내의 길/님의 뜻 종신토록/어기지 않으리오(삼의당 김씨 ‘화답의노래’ 전문)’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길가에 부부 시비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땀을 줄줄 쏟으며 찾아든 필자를 구경하는 눈치다. 부부시비 옆에는 담락당과 삼의당의 영정이 모셔진 명려각(明麗閣)이 있다.
삼의당 김씨는 남원에서 태어나 살다가 진안으로 이주했다. 삼의당 김씨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고,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아닌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원의 풍치를 담아 260여 편의 한시와 산문을 남겼다.
18세에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닭살커플로 결혼했다. 삼의당 김씨는 남편을 과거에 급제시키기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삼았지만 거듭된 낙방으로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옮겨와 생을 다 할 때까지 살았다. 삼의당 김씨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지난 1930년에 광주에서 ‘삼의당고(三宜堂稿_가 출간됐으며, 남원교룡산성에도 ‘김삼의당시비’가 세워졌다.
마이산에는 재미있는 ‘조선 태조 고황제 시’가 함께 전해온다. 옛날 고려 장군 이성계가 신으로부터 금척을 하사받는 꿈을 꾼다. 마침 남원 운봉에서 왜구 아지발도 무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황산대첩의 승전고를 울리며 진안을 지나는데 현재의 마이산을 보는 순간 금척을 받은 꿈속의 장소와 일치하는 형상에 깜짝 놀라 말을 멈추게 한다. 금자(金尺)를 묶어 놓은 것 같은 생각에 속금산이라 명명하고 돌아가 12년후 조선을 건국 한다.이때 남긴 듯한 글이 남부주차장 매표소 쪽 이산묘 옆 용바위 앞에 ‘조선 태조 고황제 시비’가 건립됐다.
‘天馬東來勢已窮 천마가 동쪽으로 와 형세가 이미 궁하니/
霜蹄未步蹶途中 흰털 말발굽 더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쓰러졌네/
涓人買骨遺其耳 내시는 뼈만 사 가고 그 귀만 남기니/
化作雙峰屹半空 변하여 두 봉우리가 되어 반공중에 솟았네’
명마인 천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일까? 이곳에서 쓰러져 죽으니 내시는 천마를 귀히 여겨 뼈 일망정 남김없이 사가고 두 귀만 남기니 이것이 마이산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마이산 탑사’다. 이곳의 독특한 돌탑들이 있는데 이갑용 처사가 1885년부터 30여년간 쌓았고 비바람에도 100여년간 무너지지 않았다 하여 신비감을 준다. 탑사 경내에도 문학관련 비들이 저마다 사연을 담고있다. 먼저 국가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건립되었음을 표기한 허호석 시인의 ‘마이산’시비가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이산아 夫婦山아/ 하늘에 오르지 못한 애절한 사연/ 天地塔에 가슴가슴 괴었는가/
天上天下 못다한 사랑의 영원한 化身이여! /용담호 천지를 치솟는 용마의 기상은/
山中에 靈山이라 조선 개국의/ 胎夢을 품었으니 신비로다/
생명의 石間水는 갈한 영혼의 목축이리니/ 청정수맥의 금강, 섬진강을 거느렸다 /
온갖 시름 정갈하게 돌탑을 쌓아 /한 개 두 개 올려놓은 저들의 소망을 받드는가 /
구구구 산비둘기 탑사 층계를 오른다 /아! 하늘 문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을.(‘마이산’ 전문)’
탑사의 신비한 탑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이왕선의 ‘산사와 탑’시는 낭랑한 여승의 염불소리에 잠께어 가만히 느껴보는 절간의 풍경이 그려진다.
‘바위틈 계곡 따라 내려오면/옹기종기 탑들이 모여/ 세월의 풍상을 이야기하듯/ 도란히 속삭이는데/대웅전 좁은 뜰에서 내려다보면/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의 기백인양/의기도 양양하여라/ 계곡 따라 올라온 선바람들도/잠시 머물러 숨 고르는 법당에서 소망을 비는데/ 산사의 풍경소리는 스님의 독경 목탁소리에/ 화음이 되어/산사의 기쁜 진리로/세속을 넘나든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노래비 하나를 소개한다. 이왕선 작사, 김효실 작곡, 남광수 노래의 ‘마이산아 반겨다오’ 노래비인데 생소하지만 마이산의 서정이 절절하다.
‘우리 님 타고오신 말귀 닮은 쌍봉우리 매정한 그 사람도 옥탑보고 정을 쌓고/ 길손도 쉬어가고 사랑도 쉬어가는 진안 마이산/ 우리님 타고 오실 말귀 닮은 쌍봉우리 천황문 약수터에/ 인생도 쉬어가고 세월도 쉬어가는 진안의 마이산.(‘마이산아 반겨다오’일부)’
‘문학비는 작가의 문학세계와 문학정신이 서예가와 석공의 손길을 거쳐, 이처럼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때문에 활자화된 문헌이나 검색된 자료보다 더 값지다.’는 생각과 고집으로 오늘도 땀과 비로 흠뻑 젖는다. /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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