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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창문학비

고창 동리가비와 향토작가 문학비 공원

 

 

 

 

 

 

 

 

 

 고창은 문화. 예술. 인물의 고장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와 한국의 세익스피어로 불리는 신재효와 , 미당 서정주, 인촌 김성수, 김상협, 진의종 등 인물과 유적을 다 찾으려면 이 어설픈 작가의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다.
 신재효와 향토작가들의 문학비를 찾았다. 고창읍성 입구에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된 신재효고택. 현재는 초가지붕의 사랑채만 남아있다. 마침 수리중이라 관람을 할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사랑채 안에서 신재효가 제자 진채선에게 흥선 영감탱이를 죽여 버릴 거라며 고함을 지르는듯 했다. 판소리의 금자탑을 이룬 신재효는 광대소리를 위해 많은 이론과 유산을 남겼다. 서민 판소리문학의 이론가며, 연출가이며, 지휘자로 판소리 사설의 창작과 집대성을 이루었다. 특히 당시 천대받던 광대와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키우고자 헌신한 것이다.
'고창읍내 홍문거리/두춘나무 무지개 안/시내 우에 정자 짓고/정자 끝에 포도시렁/포도 끝에 연못이라/성씨는 평산 신씨/이실재 효도효는/ 창적의 함자이요/일백백 근원은/친구간의 자호로다/리호는 동리오니/너도 공부 하랴가면/가끔 가끔 찾아오소/에용 에용 어허 우겨 방아로구나'
 1984년 사랑채 옆에 건립된 '동리가비'의 내용이다. 그의 제자 진채선과 흥선대원군과의  삼각 관계를 소재로 했던 영화 '도리화가’(桃李花歌)가 2015년 개봉되기도 했다. 진채선은 신재효가 발굴한 판소리 명창이며 흥선대원군의 첩이다. 흥선대원군은 진채선을 사랑했고, 진채선은 신재효를 그리워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렸다. 흥선대원군의 약발이 떨어지고 신재효가 병이 들자 채선은 그를 따돌리고 고창으로 내려왔다. 연모했던 스승 신재효가 사망하자 3년동안 무덤을 지키다가 사라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은 무서운 지옥인 게 분명하다. 옛사람들의  애절한 사연을 잠시 접고 선운사 진입로가 있는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로 달렸다. 구 삼인초등학교 교정에 조각공원과 다양한 자연 생태관 시설이 운영되는데 이 지역 출신의 시인과 조각가들이 조성해 놓은 삼인 조각공원이 있다. 이공원은 1998년 10월경에 조성되었으며 고창의 기관장과 유지들이 건립추진을 하고 시조시인 유휘상을 비롯한 집행위원이 구성되었다. 우선, 고려 인종 무렵 이규보, 이인로과  해좌칠현 (海左七賢)으로 활동하며 오늘날로 하면 회장역을 수행한 고창출신 오세제(吳世才)의 신체의 병과 마음의 병이 심각함을 호소한<병목>작품이 새겨져 있어 고창의 깊은 문맥을 알수 있다. 조선 세종 때 고창출신 윤회(尹淮)가 지은 <봉황음>비도 자리하고 있다. <처용가 >의 가사만 <봉황음>으로 바꾸고 악곡은 <처용가>의 악곡을 그대로 얹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작품으로 나라와 왕가에 대한 송축가이다. 설치 공간 동선을 따라가니 현재 전라시조문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유휘상 시조시인의 <선운사 상사화>시조비가 반갑다.
'마음에 붙은 불씨 앞섶 여며 다독이며/ 푸른 날 은유로만 속 앓며 간직한 정/가을 볕 영그는 산문 열어째낀 안가슴/(중략)'
 전북문인협회장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한 진동규시인의 <매화>가 여태명교수 글씨와 정현도 조가가의 작품으로 제작되어있다. 특히 진동규시인은 고창군 무장면사무소 뜰에도 <여기 무장이여>시비에 ‘이 고장 숨결은 솔바람/ 역사의 단층마다 뜨거운/가슴을 모여/ 꿈꾸는 토성을  이루었다’(여기무장이여, 부분)며 무장 사람들의 자긍심을 자극하고 있다.
‘누가 물어도 그리운 사람 ’<비밀> 전문이다. 열자로 표현된 이충이 시인의 시비다. 그는<월간문학>으로 등단 후 시집 <빛의 파종> 외 4권이 있고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시와 산문> 발행인으로 있다.
 멋진 자연석에 새겨진<섬을 끌고 가는 마차>의 박남권 시인은 바탕시동인 회장. 남산시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감사를 지냈으며<한국문학예술>발행인으로 활동 중이다.
<겨울바다>를 비에 새긴 박종은 시인은 고창예총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의 2.3대 지부장,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부회장, 초등학교 교장, 교육장을 역임했다.
한국문협 고창지부 초대지부장을 역임한 이상인작가의 <높은산 깊은골>시비가 자연석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전원범 시인의 <망초꽃으로서서>를 읊조리니 하얗게 선 채로 말라가야?할 개망초의 속내와 견뎌내야 할 운명을 생각하니 문학 동산 밖으로 망초꽃들이 나와 눈들을 맞추려한다.
 <두견새 때문에>를 돌에 새긴 우하 서정태시인은 미당 서정주의 동생으로 한국문인협회 창립발기인의 한사람이다. 64세에 첫 시집<천치의노래>를 출간한 후 90세가 되어 <그냥 덮어둘 일이지>를 발표했다. 다음은 하림 정주환선생문학비다. 정주환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이사, 펜클럽한국본부 이사, 대표에세이 회장을 역임한 호남대 명예교수다.
 다음은 2013년 고창예총 회장 재임 중 세상을 떠난 김정웅 시인의<선운사 바람소리>시비다. '안나의 강변'과 수필집 '백성을 하늘같이' 등 20여권의 책을 냈다. 한때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등 유력 정치인으로 활약한 강인섭시인의<진달래>시비에는 한반도의 산에는 차마 눈감지 못하던 눈을 감기고 외로운 넋도 잠재우던 한이 되어 진달래가 피었다고 하니 뭉클하다. 고창문협 사무국장을 역임한 김성수 시인의 <전봇대>가있다. 고창에는 이외에도 지난번 소개했던 진을주 시비가 무장면 성내리 무장면사무소 부근 느티나무 아래 <무장토성>과 상하면 송곡리 봉강 진을주 동산에<송림산 휘파람> 시비가 있다. 고창의 웅숭깊은 문맥은 오늘날에도 역량 있는 작가들이 배출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인ㆍ전라북도문학관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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