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구름, 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나갈 때 얻은 꿈 조각들’
‘생거부안’ 즉, 살아서는 부안에 살라는 말처럼 부안은 변산국립공원을 낀 바다와 평야 그리고 산과 섬이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고 풍요롭다. 이토록 아름다운 부안은 시대는 다르지만 두 남녀 천재 시인을 탄생시켰다.황진이와 쌍벽을 이뤘다는 이매창과 목가시인 신석정이 부안읍 출생인데 지난 봄 ‘매창시비’ 소개에 이어 ‘석정시비’를 찾아보기로 한다.
신석정(申夕汀)은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던 1907년 부안읍에서 출생했다. 그의 나이 18세, 수평선 너머로 뉘엿거리는 해를 바라보며 벅차오른 시심으로 첫 작품 ‘기우는 해’를 조선일보에 발표, 찬사를 얻으며 시인으로 세상에 나서게 된다. 1930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불교전문강원’의 석전 박한영의 문하에서 1년간 불전을 공부한다. 이 시기에 박용철. 정지용, 한용운, 춘원 이광수, 김억 시인들과 교류한다. 그러기도 잠시, 무정한 서울이 싫었는지 고향 마을에서 농사와 문학적인 삶을 병행하기로 귀향을 한다. 그러나 당시 농촌 현실은 그의 이런 낭만적인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낙향해 살았던 청구원에서 불후의 명작 첫시집<촛불>(1939)과 <슬픈목가>(1947)를 세상에 내 놓으며 빅 히트를 치게 된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첫 시집을 내며 ‘청구원주변의 산과 구름, 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나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말한다. 석정시인은 자연의 영향 때문인지 전원적 목가적인 낭만주의 시를 많이 썼고 늘 고향을 지키며 살았고, 늘 문학을 꿈꾸며 문학을 이루며 살았다.
첫 시집 <촛불>을 간행에 이어 <슬픈 목가>, <빙하> 등의 시집들을 간행하였고, <매창시집>,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유고수필집으로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과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등의 시집도 간행했다. 또한 2009년 4월에 <신석정 전집5권>을 국학자료원에서 출간했다.석정이 떠난 후 1978년에 전주 덕진 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으며, 1991년 8월에는 그의 고향인 부안군 변산면 해창 석정공원에 ‘파도’ 시비가 세워졌다. 그 후 ‘파도’시비는 2009년 9월 10일 지금 새만금 홍보관 내 ‘서두 터 정원’으로 옮겼다. ‘파도’와 시낭송가들의 필수 애송시가 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를 감상해본다.
갈대에 숨어 드는 소슬한 바람 9월도 깊었다/
철그른 뻐꾸기 목멘 소리 해가 잦아 타는 노을/
안쓰럽도록 어진 것과 어질지 않은 것을 남겨 놓고/
이대로 차마 이대로 눈 감을 수도 없거늘/
山산을 닮아 입을 다물어도 자꾸만 가슴이 뜨거워 오는 날을/
소나무 성근 숲 너머 파도소리가 유달리 달려드는 속을/
부르르 떨리는 손은 주먹으로 달래 놓고 파도 밖에 트여 올 한 줄기 빛을 본다 (‘파도’ 전문)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전문)
식민지 상황의 궁핍하고 부자유스러운 공간 속에서 시인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이런 내면의 갈구함이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형태가 시로 승화된다. 석정의 시들은 서정성과 반복적인 언어 사용으로 호소력이 있어 낭송하기에도 좋다. 석정은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채 해방을 맞이할 때 까지 절필을 한다. 5.16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해 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부안읍 선은리에 낙향해 살았던 청구원 복원에 이어 2011년10월에 개관한 석정문학관이 세련된 인테리어와 현대식 미디어 아트가 동원된 공간으로 넓은 마당과 함께 호남지역 새로운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석정의 묘소는 행안면 역리 야산에 위치하며 마을 초입 벽에 데뷔작<기우는 해>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가슴에 지는 낙화소리>시화가 그려져 있다. 영월 신씨의 묘역을 공원화로 새롭게 단장했다./ 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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