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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부안의 봉래동천 암각서

 

부안에 국내에서 가장 큰 암각서(금석문)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안군청 뒤편의 200년 된 ‘봉래동천(蓬萊洞天, 부안의 별칭)’이란 글귀가 바로 그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 조사위원인 이용엽씨는 최근에 발간한 ‘묻혀진 서예가 박시수의 행적을 찾아서(부안문화원 발간)’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문화재 지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안군청 뒤편은 옛 관아터로 진석루가 있었던, 넓은 바위에 초대형 초서로 쓴 '봉래동천(蓬萊洞天)'과 해서'주림(珠林)',예서 '옥천(玉泉)'의 여덟 글자가 쓰여 있다.

특히 ‘봉래동천’은 조선 순조 때인 1810년에 부안현감으로 부임해 1813년까지 근무했던 박시수(1767--1834)가 쓴 조선후기 최대의 걸작품이다. 초서로 일필휘지한 이 대형글씨는 부안인의 정서를 잘 대변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글씨의 장법이나 결구에서 초서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봉래동천(蓬萊洞天)'이라 쓴 암각서는 두 글자 연장 길이가 가로 404㎝, 세로 523㎝에 이르고 글자 한 자의 크기가 274㎝, 글자 획의 평균 굵기는 15㎝에 달하는 글씨로, 동편에는 ‘봉래’ 서편에는 ‘동천’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서림(西林)의 혜천이 흘러내려 ‘옥천’을 이루니 선인들이 사는 ‘봉래동천’ 이 되며, ‘봉래(蓬萊)’라는 말은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을 이름인 만큼 이는 부안의 별칭에 다름 아니다.

또 다른 글씨인 ‘옥천’(玉泉)은 현재 부안군청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지금 청사 뒤편 암반에 조성된 우물을 일컫으며, 자연 암반을 파내고 다듬어서 만들어졌다. ‘옥천’의 옆에는 ‘주림(珠林)’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돌팍(돌(石)의 부안지방 사투리)거리’로 불려지고 있는 부안군청 청사 뒤가 지난 1999년 원광대학교 박물관 조사 결과 조선시대의 금석문이 묻혀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전라금석문연구회(회장 김진돈,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의 탁본을 통해 글자의 크기는 물론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용엽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 조사위원은 "박시수의 글씨는 창암 이삼망에 견줄 만한 명필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며 “각종 시비(의 군락지인 서림공원은 부안의 역사,문화의 보고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관광자산으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진돈 전라금석연구회장도 “‘봉래동천’의 래(萊)자의 글자 크기는 세로 274㎝에 달하는 대형 명필글씨로, 전국적으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며 “이같은 유적은 사료적 가치가 커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다각적인 조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