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나무들이 한옥과 어우렁더우렁 물들었다.
한국화가 김성욱이 24일까지 전주 교동아트미술관에서 15회 개인전을 갖고 있다. 그가 그림으로 마름질한 세상, 그 속에서 조금은 괴로운 현실을 잊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오히려 더 강하게 이를 깨부수고픈 욕구를 다져보게 된다. 화가란, ‘이끼 낀 섬돌에도 꽃을 피우게 하고, 천년된 나무의 잎에도 새 싹을 틔우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년나무-한옥에 물들다’를 테마로 한 그의 작품은 향토적 분위기가 강하면서도 세속의 담담함을 풀고 맺힌 것을 풀어내는 듯, 유연한 필선의 유희와 맑은 바람과 함께 사방으로 나뭇가지를 퍼트리거나, 어린잎과 꽃잎들로 하여금 춤사위를 보는 듯한 율동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굵고 강한 필선은 황량한 들녘, 고목의 앙상한 가지들로 하여금 안단테로 서서히 희망 바람 각양각색으로 푸지게 몰고 오며, 바람은 때론 흥겨워 춤을 추고, 때론 대놓고 웃기도 하며, 때론 숨어 울기도 하며, 때론 내 삶에 묻은 젖은 얼룩을 헹궈 메마르게 하는 등 밀고 밀리며, 쫓고 쫓기며 지나가지만 어느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바람은 그렇게 어머니가 되어 나를 품고, 재 주위를 지나 표표히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잘도 흘러간다. 바람은 한곳에 뭉쳐 머무르는 법이 결단코 없는 존재, 하지만 바람은 바라는 것, 곧 희망이 되니, 그래서 나의 바람은 멈춰 설 수 없다. 하늘 한 번 우러러보니 바람에 실려 떠도는 너울 한 자락, 햇빛 사이로 무지개 되어 떠도는 구름이 막 흘러간다.
전주 한옥마을이 알록달록 꽃 물들어 파랑새, 기다림, 동행, 마중, 추억들은 된바람에 갈색 물들게 했다. 한옥의 대청마루에 앉으면 지붕 위 솜털구름이 눈망울에 걸터 있고, 시나브로 날렵한 처마 곡선을 훑고 지나는 산들바람, 남고사의 풍경 소리되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내 솟을대문에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 십장생 한자리에 불러 모았으니 진시황도 부럽지 않네. 어느새 송수만년 학수천년 무병장수의 꿈 영글어지는 오늘에서는. 강물처럼 별빛처럼 흘러가라 하네.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다가라 하네. 이는 작가가 전하는 ‘천년나무-한옥에 물들다‘ 희망 비나리이다./이종근기자
작업실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