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옥을 레고처럼 틀로 찍어 지으려 하는가?
한옥 얘기로부터 운을 떼야겠다. 귀거래사…. 이번에는 현대식 한옥이다. 귀거래사는 2012년 12월에 완공된 2층 한옥이다. 초현대식 한옥인 셈이다. 수천 년에 걸쳐 응축된 우리 전통의 한옥 건축기술이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실용적으로 전승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지 잘 웅변한다. 전주동헌과 향교 인근에 있다. 날렵하게 솟은 지붕, 석회 벽면에 두루미와 기러기 참새 등을 제각각 그려놓은 벽화, 바깥 풍경을 감상하도록 배치한 2층 입구의 통 유리창, 한쪽 정원을 채운 오죽(烏竹), 굽은 소나무 한 그루, 계단 난간의 거북 조각, 인물상을 새긴 굴뚝, 남쪽 담장의 벽화 등…. 길을 지나던 당신의 고운 눈길을 한번쯤은 사로잡기 충분한 가옥이다.
귀거래사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지붕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얼핏 보면 3층이나 4층으로 착시할 만큼 독특한 구조가 별스럽다. 전통 양식인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서로 맞물려 있어서 한옥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모델이 된다. 현대식 한옥이 거둔 의미 있는 성과라고 전문가들도 평하고 있다. 높은 2층 처마를 지면에서부터 떠받들고 있는 두 개의 긴 기둥(長柱)도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수덕사 무량수전처럼, 배흘림 방식으로 깎은 것이어서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이 여기서도 재현됐다. 집을 둘러싼 담 역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통과 현대의 공법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배척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집안이 아슬아슬하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은 담은 분명 전통식이다. 그런데 본채 석회 벽에 맞춘 담벼락의 흰 벽면은 완연한 현대 방식이다. 기와조각으로 연속된 무늬를 새겨 넣은 문양도 그렇다. 하지만 전통 담처럼 우중충하지 않고 오히려 밝다. 새로운 감각이 성공했다는 얘기다.
'자, 이제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고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쏜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어찌 슬퍼하고 서러워만 할 것인가(도연명의 '귀거래사'중)'
도연명은 무릉도원 설화를 쓰기도 했다. 한옥마을 관점에서 보면, 고향으로 돌아간 그가 과연 이런 집을 지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집이 현대인에 의한 현대인을 위한 현대인의 한옥이란 사실이다. 예컨대 처가와 측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었다. 요즘 세대들이 들으면 분명 눈을 흘길 속담이리라. 귀거래사는 아예 처음부터 방마다 측간을 배치했다. 현대식은 그렇다. 처가와 측간이 가까울수록 좋은 법!….
사내들은 자라서 가장이 되고, 가장이 되면 평생에 걸쳐서 집 한 채는 지어야 한다고 부모 세대들은 강조했다. 하찮은 물고기, 새, 짐승들을 봐도 먼저 집을 지어놓고 암컷을 유혹하는 터라, 인간 사내들의 강박증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주택관념은 많이 달라졌고,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른 의도가 나에게 없다. 획일화는 예술을 목 졸라 죽인다. 한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통보존지구가 아니라면 3층이나 5층 한옥도 이제 고려해봄직하다. 난립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젊고 참신한 미적 감각도 존중했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한옥마을에 나름대로 그림 같은 집을 지으려 했던 이들의 원성을, 귀젖 날만큼 내 귀가 숱하게 들었다./이병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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