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詩妓 梅窓’ 그 불멸의 사랑.. 梨花雨 흣날리는 부안
한때 변산반도의 매력에 풍덩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와 산을 끼고 변산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누구든지 아름다운 풍광에 홀리고 만다. 갑자기 열 받아 뚜껑이 확 열릴 때 한 바퀴 돌고 오면 혈압이 뚝 떨어진다. 언젠가 한반도를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으로 볼 때 변산은 남성의 성기에 해당하고 울금 바위가 낭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볼거리 먹거리에 매력까지 가득한 땅 부안에 이화우 흣날리는 봄 향기가 가득하다. 특히 부안은 당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한여인의 단행본시집 '매창집'이 발간되었고 현대에는 한국 현대시문학의 거장 신석정이 거닐었던 도저한 문맥이 흐르는 지역이다. 부안에는 한국관광공사 추천 ‘한국의 가볼만한 곳’에 선정된바있는 ‘석정문학관과 석정시비’를 중심으로 ‘매창공원과 시비’ ‘서림공원 문학마당 시비’ ‘부안댐 문학공원시비’ ‘새만금 전시관 신석정 시비’등 많은 시비가 건립되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마침 이번 봄 순례는 절창 '이화우'를 노래한 매창 관련 시비를 중심으로 답사를 했다. 400여년전 부안에 살다간 시향가득 머금은 비련의 여인 이매창이 있다. 거문고를 잘 타며 글이 뛰어나 개호는 매창(梅窓). 이름은 계랑(桂娘), 계생(癸生), 향금(香今). 자는 천향(天香)이다. 부안 명기이며 시인으로서 임진란 전후에 “북의 황진이, 남의 매창”으로 불리었다. 허균(許筠)과 유희경(劉希慶)을 비롯한 여러 관리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 58편이 '매창집'에 전한다. 부안군청 뒤 봄색 가득한 상소산 서림공원에 오르다보면 38세를 살다간 매창의 시심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시비가 있다.
'梨花雨(이화우) 흣날릴제 울며잡고 離別(이별)한 님
秋風落葉(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千里(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규장각본 ‘가곡원류’에 실려있는 매창의 절창 ‘梨花雨(이화우)’다. 이화우에서 추풍낙엽으로 어지며 시간적, 공간적을 뛰어넘어 임에게로 향한다. 부안읍 오리현 매창로에 그가 잠들어있는 아담한 매창 공원이있다. 매창은 평소에 거문고와 시에 뛰어나 죽을때에도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그의 묘는 1983년 지방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살아서는 몇의 연인이었지만 죽어서는 뭇사람의 연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묘지 관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마을의 나뭇꾼들이 벌초를 하며 무덤을 돌보았다고 한다. 아마 총각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매창은 촌은 유경희와의 사랑을 통해 극적 인물이 된다. 18세에 28세 연상인 40대 유부남 유희경을 만난다, 유희경은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그는 한시를 잘 지어 사대부들과 교유하였으며, '풍월향도'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하였다. 매창이 그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으니 말하자면 조선문인협회 이사장 정도가 아닌가 싶다
중앙의 대 시인과 다재다능한 매창이 만나니 한양에서 남편 월급만 기다리고 있는 처자식도 잠시 잊은 채 첫눈에 진도를 나가버린다.
그러나, 고은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괴롭고 슬픈 무서운 지옥’이 아니던가. 임진왜란이 터지고 유희경은 전선으로 나가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은 왜 이리 골치 아픈 존재인가. 왜적과 싸우기에 바쁜 유희경은 매창에게 정주고 떠난 임이 되고 만다. 매창은 유희경을 천리보다 더 먼 꿈길에서나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외진 고을 의 기생이 당대의 문사들과 어울리는 시적 감각을 가진 작가라는데 놀랍다. 중앙문단의 대시인 유희경과 매창의 만남은 매창의 시세계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을 것이다. 매창이 지은 수백편의 시들 중 사람들에게 전해오는 시 58편이 매창집으로 발간되었는데 매창 사후 60년후 매창이 자주 찾던 개암사에서 목판본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한 여인의 단행본시집인 것이다. 이 '매창집'은 지금 매우 귀중한 희귀본으로 세권이 남아있는데 두 권은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한권은 미국의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고, 1956년에 신석정이 대역한(對譯梅窓集)이 있다.이렇게 유희경을 그리며 살던 매창에게 바람 같은 운명이 다가 다가온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등장이다. 허균은 지금으로 말하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지도 모를 당대 소설가다. 그가 세무공무원이 되어 부안에 들러 매창과 만나게 된다. 도술을 부리며 율도국을 세우는 홍길동을 만들었으나 매창을 여친으로 만족해하는 허균은 잠시 공직에서 물러나 우반동 정사암에 머물며 매창과의 인연을 이어가다 다시 복직을 하여 이 역시 매창을 떠나간다.
서울 도봉구는 도봉산 입구에 도봉구청장과, 부안군수가 참석한 가운데 유희경 이매창 시비를 건립했다. 도봉구 출신 유희경과 이매창이 서로 그리워하고 주고받은‘매창을 생각하며’와 ‘이화우 흣뿌릴제’를 새겼다. 따라서 도봉구와 부안군의 문화교류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매창의 묘제는 매년 음년 4월 5일에 부풍율회 회원들에 의하여 지내고 있다.부안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 묵객들이 변산과 부안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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