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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하반영화백 별세

 

'동양의 피카소'로 통하는 대한민국 최고령 하반영화백이 25일 오후 1시 24분경 전북대 병원에서 병마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1918년 3월 1일 경북 김천에서 출생한 하화백은 7세에 그림을 시작, 9세에 군산 신풍공립보통학교에서 금릉 김영창선생을 만난 후 본격 입문, 그동안 파리 및 도쿄,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제전 등 각종 국제전 및 단체전에 3백여 회 출품했으며, 국내,외 개인전만도 1백 여 회를 치른 바 있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1931),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3회, 국전 입선 7회 등 수상과 함께 한국예총 부회장, 한국예총 전북지회 부지회장, 민전 목우회 전북 지회장, 상촌회 회장을 거쳤으며, 지난 1994년부터 사재를 털어 반영미술상을 제정, 후배 화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까지 군산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다가 급속히 건강이 나빠져 전북대에 입원했었다.

 본인이 기자에게 여러 차례 말한 것처럼 고통이 없는 마하의 세계도 돌아갔다. 그는 지난 1994년부터 사재를 털어 반영미술상을 제정, 후배 화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군산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최근엔 서울 평화화랑에서 ‘패션(PASSION)'을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최근에 군산시에 작품을 기증하는 등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이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그의 그림 이야기는 또 하나의 작은 빛이 되어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비춰 주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양의 피카소'로 이름했다.

 그는 피카소처럼 역사를 바로 바라보고, 다양한 소재를 다재다능(도자기, 한국화, 서양화, 수채화 등)하게 구사해 그렇게 불리웠다. 무엇보다도 원색을 많이 쓰면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예술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생명력이 용솟음친다.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서양화를 잘 그린다고 할지라도 그들과 맞서기는 어렵다. 비록 재질은 물감으로 하되, 그 바탕엔 동양적 사상과 사고의 가치가 살아 꿈틀거리는 소재들을 조형화, 지금까지 선보이게 된 진정한 연유다. 항상 동양화라고 말하는 진정한 까닭이다"

그는 자꾸 서양의 물질문명을 좇아가는 추세 같아 안타깝고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서양이 새롭지만 서양에서 보면 동양의 것은 새로움과 동경의 대상이다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좋은 점은 흔쾌히 인정하되, 만일 예술가들이 우리 것의 참다운 가치를 쉽게 망각한다면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다는 것. 일례로, 프랑스 르 싸롱전의 금상 수상은 밀레가 살았다던 ‘바르비종의 언덕’으로 허허벌판의 풍경을 잔붓으로 정리, 동양화 기법이 들어있다는 평으로 수상했으며, 앙테팡탕전 ‘노비자(비자없는 나그네)’역시 서양화이지만 동양사상이 들어갔다고 해서 큰 상을 받게 됐다.

재질은 물감으로 하되, 그 바탕엔 동양적 사상과 사고의 가치가 살아꿈틀거리는 소재들을 조형화, 지금까지 선보이게 된 진정한 까닭이다.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어도’는 통일을 염원하는 백의민족의 아픔을, ‘소말리아 스크린’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금강산 신선암’은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남북의 미래를, ‘명태’ 작품은 고향이 그리워도 가지 못하는 피난민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구상화에서 풍경, 인물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생성’, ‘착각’, ‘빛’ 시리즈 등 대표작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 속의 붉은 색은 동양의 오방색의 하나며, ‘천지현황(天地玄黃)’이란 글귀는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상생’, ‘쇼윈도’, ‘태양의 득’ 등은 휠씬 밝아진 색상의 작품으로, 좀더 이미지를 축약한 모습으로, 열정의 소산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한다. 감각적인 표현성을 최대한 억제하고 강한 정신성이 드러나 보이는 ‘무제’, ‘환희’, ‘고금의 역사’ 등은 원초적인 생성의 의미와, 또 이로 인한 길항관계를 깊이 천착하기도 보기도 한 가운데 때론 도자기로, 때론 서예로 이들 생각을 담아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새전북신문 기사로 인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첫번째 긴급 복지지원 사업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근래에 암수술을 받았지만 건강을 어스 정도 추슬린 상태로 가을 하늘처럼 청명한 예술혼을 어김없이 선보였었다.

 작가가 24일 이른 아침 기자를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따라 삶이란 그의 작품처럼 '비자없는 나그네'가 아닌 가 싶다. 그래서 그는 영면이 아닌, 어쩌면 작품으로 남아 우리들을 영원히 지켜볼지도 모른다.

  전북미술협회장상으로 장례를 치를 것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주홍·지홍·만홍·교홍·준홍·가로·세로·양로 씨 자녀와 며느리 김용옥 씨 등이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10시 전주 대송장례식장. 장지는 임실 선영하./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