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예로부터 문맥(文脈)의 고장이요, 한국문학사의 본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운산가(禪雲山歌), 무등산가(無等山歌), 방등산가(方登山歌), 정읍사(井邑詞), 지리산가(智異山歌) 등 5곡의 백제가요가 있으며, 오직 '정읍사'만이 지금 남아 있다. '정읍사'를 시작으 양규창시인의 '전라북도 문학비 이야기'를소개한다.
전주를 출발해 칠보를 지나니 눈발이 날린다. 칠보산 고갯길이 위험할 지 모르니 요즘 땅콩 회항 하듯 돌아설까 하다 을미년 첫 만남을 기약하고 눈 속에 기다리고 서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기력을 다한 애마가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쉰다.
정초부터 손에 땀을 쥐며 도착한 정읍은 백제 때는 정촌(井村)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부터 정읍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땅을 한자만 파도 물을 길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지하수가 넉넉하기 때문에 고을이름에 우물정자가 들어갔다고 한다. 정읍은 정감의 땅만은 아니다. 갑오전쟁의 흔적이 있다. 거센 저항의 불길을 일으키고 마는 호남인의 꼿꼿한 배알을 선명히 간직한 고을이기도하다. 특히 정읍은 유일하게 전해오는 백제가요 '정읍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우선 그녀가 기다리는 눈 덮인 아양고개로 정읍사 공원을 찾았다. 망부상의 모습은 허리띠를 두르고, 백제시대 치마, 저고리를 입었으며 양손을 모으고 서 있다.
장사 길에 나선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자꾸 고개를 드는 의구심을 '달이여 높이 돋아 멀리 비춰주세요' 라는 간절한 기원으로서 마음을 다독거렸을 백제여인이 기다리고 서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린 여자, 도대체 그녀의 남편은 왜 오지 않을까.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하는 어느 대중가요가 떠오른다. 요즘 같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스마트폰으로 당장 확인을 하고 잠적을 하더라도 우주에 쏘아 올린 위성을 통해 위치를 추적하여 찾아낸다. 혹시 모텔로나 스며들어도 심부름쎈터에 한뭉치 쥐어주면 오뉴월 개잡듯 끌어내준다.
1300년 전 그 날도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하고 애절하다. 달이 휘영청 밝아 아내는 아양산 언덕을 올랐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혹 진흙탕물에라도 빠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면서 기다림 속에 안녕을 기원하는 가요(歌謠) 한 편을 지어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현존하는 '정읍사(井邑詞)'다.
'달하,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저재 녀러신고요
어기야
진 데를 디디올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기야 내 가는데 점그랄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망부상 앞 면에 검은 돌을 박아 그 위에 '정읍사' 전문을 새겨 놓았다. 문순태 작가의 '그 천년의 기다림' 가운데 “기다림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기다림이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과 같다. 어쩌면 인내이고 희생이며 용서이고 그리움이며 사랑이 아닌가한다. 그러므로 기다릴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가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구절이 뭉클하다.
자료에 따르면 '정읍사' 는 작자, 연대 미상의 백제 가요로 『고려사』「악지」 ‘삼국속악조’에 의하면, 정읍의 한 여인이 부른 노래로 기록되어 있다. 가사는 1493년의 『악학궤범』에 실려 있다. 『악학궤범』의 연행 절차에 따르면 여러 기생이 「정읍사」를 부르는 가운데 8명의 여기(女妓)가 나와 절차에 맞춰 춤을 추고 북을 치는데, 마지막에 악사(樂師)가 박을 치면 북을 멈추어 물러나고 음악이 그친다고 한다.
현재 정읍시에 세 군데에 '정읍사비(井邑詞碑)'가 있고, 이 중 두 곳에는 망부상이 함께 서 있다. 내장산 월령봉 아래 망부상과 정읍사 시비함께 세워져있다. 내장 저수지 아래는 1984년 6월 조성된 정읍사비는 내장산 문화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정읍시가 백제가요 '정읍사'를 활용한 관광자원화 시책으로 ‘백제가요 정읍사 관광지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2017년까지 역사와 문화체험 공간과 편익, 문화체험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가 도저하게 흐르는 정읍에는 이외에 칠보 상춘곡 가사비, 산외면 소고당 가사비, 이평면 양성우시인의 만석보 시비, 문화광장 '정읍사비'와 함께 박정만 시비 등이 있다. /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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