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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고창 매월정

 

 

 

 


 
 고창문화원이 발간한 정자 자료집을 보다가 윤용구가 쓴 매월정 편액이 얼마나 힘차고 기운이 솟든지 도저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을 맞아 고창 문화동호인들과 함께 노동저수지 부근에 있는 취석정을 답사한 후 바로 저수지 동쪽에 있는 신우대밭을 뚫고 매월정에 다다랐다. 가는 길이 험하고 거미줄이 앞을 가렸지만 정자에 도착하니 편액과 현판을 둘러보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였다.
 취석정은 노동저수지의 남쪽에 있고 매월정을 동쪽 섬처럼 생긴 소나무 속에 있어 물 위에 떠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소는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 96-1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자동차를 몇 대 주차할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바로 앞 저수지를 발아래 굽어 볼 수 있으며 서산으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기에 전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은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날아가는 형상(飛雁含蘆)이라고 해서 노동(蘆洞)이라 했고, 주변 지역이 산수가 수려해 가까운 거리에 고인돌과 정자들이 산재해있다. 저수지에서 남쪽으로 난 산길을 넘으면 김기서학당이 있어 선현들의 숭고한 학문정신을 탐구해 볼 수 있고, 또 전라관찰사를 했던 김성근 등의 명필 글씨도 감상할 수 있다.
 매월정의 출발은 고창 출신인 매월헌(梅月軒) 박기호(朴奇琥, 1598~1678)가 주변에 가래나무를 심었는데, 그의 6대손 수방(壽邦)이 주변에 나무를 더 심어 약 40그루가 되어 '임정(林亭)'이라 불렀다. 이후 그의 손자 종구가 비로소 정자를 세우고 그 뒤 중수할 때 선조(先祖) 매월헌의 유지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매월정이란 편액을 걸었던 것이다.
 정자 내에는 노사 기정진(奇正鎭)의 매월정신정기(新亭記)와 안동 김영한이 지은 매월정중수기가 있다. 여기에는 매월당 박기호의 약력이 약술되어 있어 옮겨 본다.
 “공(박기호)는 문장과 덕행이 널리 알려졌으며, 일찍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량을 모아 진격을 하였으나, 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이 산속에 은둔하면서 첫 해에 가래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몇 해가 지나자 그늘이 생겨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가래나무 아래에 풀자리를 깔로 오순도순 서로 정담을 나누다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월당 박기호의 절의정신은 호남절의록에 기재되어 있고 이곳 매월정 주변 이곳저곳에도 그의 정신이 남아있으니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매월정에 올라 윤용구의 편액글씨를 하나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윤용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천황이 주는 은사금을 거부한 지사(志士)로 널리 알려진 선비이다. 그는 전국을 돌며 의리와 지조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글씨를 써주었다. 즉 석촌 윤용구의 붓끝은 나라 잃은 서러움과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는 선동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씨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전한다.
 고창은 전주에서 볼 때 상당히 떨어진 지역이지만 의외로 정신문화가 돈돈히 남아있는 지역임과 동시에 상당히 많은 서당과 정사(精舍). 그리고 정자가 많이 남아있다. 고창읍내에 석탄정과 취석정, 그리고 김정희생가와 현곡정사를 한 번 둘러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모양성축제가 개최되는데, 고창의 미술을 한자리에 감상할 수 있는 고창군립미술관(무초회향관)도 꼭 한 번 들려보기를 바란다./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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