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뭄이 더해지면서 수몰된 정천면 농산마을이 아득하니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매일매일 거닐었던 길과 집터 너머로 물고기들이 모처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면서 육지의 공기를 맛봅니다. 저 멀리, 당산나무와 꼬막처럼 엎어져 있는 곳은 정천면 이포마을로, 지난 상흔을 품은 채 끄트머리만 보입니다. 용담댐 건설로 인해 진안읍, 상전면, 용담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등 1읍 5면 68개 마을이 수몰되었고, 2,864가구 1만2,000명의 이주민이 이미 오래 전, 새로운 터전으로 떠났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물이 부족합니다.
수몰민들의 애환과 추억을 담은 '용담호 사진문화관'이 지난 6월 9일부터 추석 전까지 ‘물이차도 안 나간다’를 주제로 12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작가는 주민들의 반대 투쟁이 시작된 1995년부터 댐이 준공된 2001년까지 6년에 걸쳐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을 담은 2만4,000여 장의 흑백사진 가운데 빙산의 일각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 허물어 내린 집 앞에서 막소주를 들이켜면서 담배 한 대를 진하게 빨아대는 할아버지의 슬픈 표정, 눈물 바다가 된 용담중 마지막 졸업식(제84회), 이삿짐을 쌓아놓고 이웃들과 눈물의 인사를 하는 사람들 등 수몰민들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사진 앞에 저도 모르게 발길이 서게 됩니다. 사진 속 철거가 되고 있는 이포다리 위가 현재의 '용담호 사진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라니요?
‘물이 차도 안나갈란다’란 사진 앞에 시선을 모아봅니다. 나무 위로 까치집이 중천에 자리하고 있는데, 오른편엔 한 사람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으며, 왼편엔 ‘물이 차도 안나간다’는 글귀가 아주 선명합니다. ‘내년 봄에 용담 문화마을에 이사갈 예정임’이란 글귀가 선명한 사진도 아마 이같은 마음의 발로이겠죠.
2층엔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수몰민들의 유물 2,300점이 전시중인 가운데 용담면 우체통, 주스 자동판매기, 똥장군, 지게와 족보, 그리고 용담댐 건설을 반대하는 탄원서와 농지상환문서 등도 보입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군요. 공간이 아주 협소해 작품 사진이 크지 않으며, 수장고가 손바닥 크기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지역의 국회의원과 전북도, 진안군, 수자원공사 등이 협조해 현 용담호 사진문화관을 박물관 또는 더 큰 전시 공간으로의 확대, 개편은 불가능한 것인가요?
작가는 “마을과 집들이 헐리고 뭉개지는 장면들과 공포에 떨고 있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후손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상상하고 있을까요. 이웃 사촌들이 '이제 헤어지면 부고장이나 받겠지'하며 단체 사진이라도 나누어 갖자던 '웃음 반, 울음반' 표정의 사진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고 말합니다.
실향민의 그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담호는 하늘을 뒤덮은 비구름만 잔뜩 품고 있습니다. 댐 건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편익을 주지만 이면에는 반드시 생이별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사연이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어 용이 아직도 승천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뭄이 극심한 어느 날, 용담호가 살아 제 몸의 일부를 보여주며 꿈틀거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또 다시 이같은 아픔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이종근기자
이철수 사진작가
사진작가 이철수씨는 진안군의 지원을 받아 용담호사진문화관에 전시실과 작업실을 마련, 지난해 9월 11일 개관식을 갖고 이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남 화순출신으로, 광주공고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1년 외롭고도 고단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나로도여행 도중 시골 아이들이 농구하던 광경을 찍은 사진을 ‘일간스포츠’에 출품, 금상을 수상한 것이 바로 그 계기가 됩니다. 그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했지만 사진학 공부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어 1991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1992년 서울예술전문대학 사진과에 입학, 육명심교수 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39세에 사진을 전공한 그는 전주 도심에서 우연히 주민들의 반대 시위를 목격하면서 기록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의 첫 작업이 용담댐 수몰민의 삶으로, 2002년 9월엔 ‘용담 다목적댐 건설 다큐멘터리 자료 설명집’을 펴냈습니다.
'한국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북도립미술관, 한국의 초상미술-기억을 넘어서 (0) | 2014.07.15 |
---|---|
송영구망모정 건립하다 (0) | 2014.07.14 |
전북의 맛집-빵집, 속속 서울로 (0) | 2014.06.25 |
전주삼양다방, 다시 문 열어 (0) | 2014.06.19 |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사리장엄전 (0) | 2014.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