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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경운기 멀미

 

차 멀미, 오토바이 멀미, 심지어 경운기 멀미까지 심하게 하는 일흔 여덟의 바우댁. 한 달 만에 다시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바우덕이’라 불리는 바우댁 어머니를 뵐 때마다 나는 몇 년 전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영화 '엄마'를 떠올린다.

땅 끝 마을 해남에서도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영화 속 '엄마'는 차 멀미 때문에 한 번도 차를 타 본적이 없다. ‘엄마’는 차를 타기는커녕, 지나가는 차를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울렁증이 생겨 28년 간 동네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다.

 

아들 군 입대 배웅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엄마’가 막내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차를 타고 가면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인 해남에서 목포까지 이백리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한다. 의미심장한 첫 나들이, 그 가깝고도 먼 여정에서 어머니가 겪게 되는 이야기들. 저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도 영화 속 ‘엄마’보다 결코 약하다고 하지 못할 ‘바우댁’이 있다.

그녀는 보건진료소에서 시오리 정도 떨어진 동네에 산다. 겨울 바람과 맞서며 변함없이 보건진료소까지 걸어 오셨다. 두툼한 스웨터에 목에는 머플러를 머리에는 수건까지 둘러 무장하셨다. 보건진료소에 도착하였을 때 어머니의 이마와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어머니가 십리 길 이상을 굳이 걸어오는 이유, 지독한 ‘멀미’ 때문이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고 아들 내외에게 차가 없는 것도 아니다. 차를 타면 멀미가 더 심하니 아들이 경운기에 태워 모시고 오려 해도 경운기가 텅텅거리며 품어내는 허연 연기 냄새에 속이 뒤집어진다고 극구 사양하신다. 결국 어디든 걸어가야 하는 바우댁은 아들의 고급 승용차도 무용지물로 만들며 승차를 거부하는 멀미쟁이다.

 

- 어머니, 오래간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잘 계셨어요?

- 그럼요, 잘 지내지요!

- 혈압약이 떨어졌군요.

- 혈압약도 다 떨어지고, 요새 팔 다리가 너무 쑤시고 아파서 약도 좀 받으려고 왔습니다.

- 어머니, 잠시 쉬었다가 혈압부터 재보겠습니다.

어머니의 거친 손을 혈압계 속으로 넣는다.

- 혈압이 정상입니다. 약이랑 잘 드셨군요?

- 아~ 그럼요! 안 잊어버리고 잘 먹었지.

- 그러셔야죠. 관절통 약이랑 챙겨 드릴께요.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약 조제를 마치고 봉투에 약 내용과 복용 방법을 기록한다.

 

바우댁이 다시 주위를 경계하신다. 이제 나는 안다. 오늘도 어김이 없다. 호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둘째 아들부터 셋째 그리고 딸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낡은 수첩을 내밀며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신다.

- 소장! 미안하지마는 또 전화 좀 걸어주소.

 

처음 나는 바우댁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집에 분명히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고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부탁하여 전화번호만 누르면 쉽게 통화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보건진료소에 와서 부탁을 하시는가 말이다. 나는 수첩에 적힌 자녀들에게 순서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 안녕하세요? 여기는 고향 마을에 있는 보건진료소입니다.

- 아~ 네~!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끊으십시오.

잠시 후 차례대로 자녀들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 야야~ 바쁘지? 몸은 성허냐? 애미는? 새끼들은 학교 잘 댕기고? ..... 오냐. 나는 뭐 아무 일 없다. 알았다. 그래. 잘 지내라~잉!

 

바우댁이 자녀들과 통화하는 자리를 살짝 비켜 드린다. 진료실 가리개 뒤에 숨어 통화 내역을 본의 아니게 엿듣는다. 그리 특별한 소식도 아니고 비밀스러울 것도 없는 일상적인 대화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통화를 마치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서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는다. 바우댁과 나는 일상의 작은 일 앞에 미소를 나누고 눈물을 나눈다.

- 소장! 고맙소. 참말로. 저기 부탁이 또 하나 있는데, 여기 와서 울 새끼들한테 전화했었다는 이야기를 큰아들이나 며느리한테는 하지 마소!

나의 두 손을 잡으며 당부를 하신다.

- 그리고 여기 쌍둥이들 과자 값이네.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우리 아이들 과자 값까지 챙겨주신다. 바우댁은 다시 머플러와 수건을 두르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보건진료소를 나가신다.

함께 사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서울 대전 대구 부산에 흩어져 사는 아들과 딸들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는 바우댁. 말하지 않는 깊은 속사정은 알 길 없으나 한 번쯤 찾아가 만나보고도 싶을 터인데 자식들과 손자에게 가는 찻길마저 멀미에 봉쇄당한 어머니. 초월할 수 없는 공간 안에 갇힌 바우댁의 사랑 전달법은 전화선 밖에 없다.

 

걸어온 길을 따라 펼쳐진 적상산을 병풍삼고 계곡 바람 소리를 음악 삼아 굽은 손을 휘휘 저으며 다시 걸어가실 바우댁! 어머니의 뒷모습을 창밖으로 바라본다. 그녀에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보건진료소 나들이는 무슨 의미일까?

 

창문을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을 방안 가득 들여놓듯 어쩌면 단조로운 어머니의 일상에 보건진료소 가는 길은 ‘둘레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하는 마실 길, 그 길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글.사진 무주상곡보건진료소 박도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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