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으로 가는 주변 풍경은 아직도 가을 빛깔이었습니다. 기다리는 겨울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밤나무며 상수리나무에는 마른 나뭇잎들이 엉켜 가을을 지키지 있었습니다. 특히 소나무 사이사이 낙엽송은 더욱 선명하게 노란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함양 도천 마을 숲을 보러가는 도중 자연 지세와 한옥이 어우러진 매우 운치 있는 마을, 개평(介坪)마을을 둘려 보았습니다. 개평이란 어감과는 다르게 개평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의 한분인 일두 정여창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하동 정씨, 풍천 노씨, 초계 정씨 등 3개의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전통을 간직한 마을입니다. 마치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듯 고풍스런 돌담이며 그윽한 자태로 고고한 삶을 간직한 한옥이 그런 착각을 만들어 줍니다. 개평마을 우백호 맥은 소나무 숲이 이어져 내려오고 그 끝자락에는 동대(洞臺)라고 불리는 언덕이 자리합니다. 동대는 마을 돈대(墩臺)를 의미하는데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흙을 쌓아 위를 평평하게 한 것으로, 이곳이 개평마을 우맥호 맥 끝자락으로 마을에서 중요하게 인식하는 장소라 생각됩니다.
도천(道川)마을(경남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로 향합니다. 도천마을은 함양의 대표적인 상징, 상림 숲 북쪽에 위치합니다. 도천마을에서는 함양 읍이 보이면 마을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마을에서 보면 함양 방향으로 훤히 보이고 물길이 빠져 나가는 자리입니다.
즉, 도천마을 남쪽으로 위천이 함양 읍으로 돌아치듯 흐르는데, 그 자리에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수구막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도천마을 숲의 조성경위를 보면 400여 년 전에 홍수로 인하여 위천이 범람하자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백두대간 자락에 자리한 마을들은 지리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로 인하여 홍수를 자주 겪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도천마을 아래에 위치한 함양의 상림 조성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도천마을과 소나무 숲은 88 고속도로 인하여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소나무숲 규모는 5000여 평에 이르며 진양 하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숲내에는 위수 하재구가 지었다는 고풍스런 하한정(夏寒亭)이 자리합니다.
도천마을 소나무 숲은 풍수적 이야기도 함께 전해 오고 있습니다. 도천마을은 처음 우항(牛項)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우동(牛洞)으로 개명하였고 우리말로 ‘우루목’이라 불립니다.
도천마을 주위 산세는 고양이, 개, 호랑이 모습으로 세 동물들이 먹이를 두고 다투는 형세를 이루고 그 한가운데에 마을숲이 위치합니다. 호랑이가 개를 잡아먹기 위하여 내려오다가 강이 앞을 막고 멈춘 곳에 숲이 위치합니다. 마치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의 비보책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고양이 앞에 쥐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형세인데 고양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개를 만들고 개를 제압할 수 있는 호랑이를 세우고 호랑이가 마음 놓고 행동하지 못하도록 코끼리를 만듭니다. 묘하게도 코끼리는 쥐를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다섯 짐승이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모두 안정을 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천마을도 오수부동격의 비보책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중간지점에 마을숲을 조성한 것은 풍수적으로 주변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홍수로 인한 범람을 막을 수 있는 숲을 함부로 못하게 하고, 숲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방책에서 풍수적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낙랑장송 늘어진 물가의 정자에서
나 또한 소나무의 절개와 같이 늙어 가겠노라
이 좋은 경승에 정자하나 짓고자 품은 뜻을 이제야 이루었네
세월이 나와 더불어 흐르고 이 곳은 편안히 지내기에 알맞구나
이 아름다운 숲이 나와 같이 늙어 있고
이름 난 정자가 주인을 얻었으니 그 또한 제격이 되었도다
나 이곳에 살면서 무한 한 뜻을 알고자 하느니
물고기와 새들이 자연을 즐기고 있구나’
돌아오는 길, 다음주 일기 예보는 이제 겨울이 온다고 가을에게 말해 주는 듯 들렸습니다. /이상훈 전주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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