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스승의 날, 강의가 끝나면 감사하다는 인사와 동시에 자리를 뜨던 학생들이 나가지 않고 오히려 다른 학년의 학생들까지 강의실로 들어왔다. 강의실 문을 열고 케익과 카네이션을 가지고 들어온 학생과 자리를 지키던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였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유난히 올해는 맘이 뭉클했다. 이어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저마다의 감사글을 적어 든 사진을 찍어 동영상처럼 꾸며 보여주었다. 해마다 나는 이 날이 되면 다짐을 한다. 나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 외에 부모 같은 스승이 되자고...... 어느 손가락 하나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는 부모의 그런 마음을 가진 선생이 되자고 다짐한다. 스승의 날은 1964년 4월에, 청소년적십자단원 대표들이 전라북도 전주에 모여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스승의 날’은 우리가 현대에 들어와 지정하였지만, 스승을 존경하고 기념하는 정신은 우리의 DNA에 전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서원’을 보존관리할 때 더욱 느껴진다. 서원은 스승의 은혜, 스승의 성정, 스승의 가르침 등을 배우고 따르고 기억하고 실천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생각되며 이러한 선조들의 모범이 있었기에 ‘스승의 날’ 제정이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옛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 서당이 있다. 고구려나 신라에 태학과 대학이라는 국립교육기관이 수도에 있었고, 고려시대부터 향교라는 국립지방학교가 운영되기 시작 하였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는데 그 이유는 ‘백성의 교화(敎化)’를 통치의 역점에 두었기 때문으로 본다. 특히 15세기 말인 성종(成宗, 1470~1494) 때 전국적으로 읍마다 향교가 세워지게 되었고, 향교는 국가로부터 노비와 토지 등을 하사받는 등 국가의 지원 아래 많은 혜택과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향교는 지방민에 대한 교화의 목적이 퇴색되고 대신 관리양성기구로의 역할을 주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폐단에 맞서 조선 중기 이후 ‘서원(書院)’이라는 사립학교가 등장하였다.
서원은 배움의 기능이 있는 강학(講學)과 선현(先賢)의 위패를 모신 제향(祭享)의 두 기능을 담당하였기에 관학(官學)과 차이가 없지만, 제향의 대상이 향교와 달리 공자와 그의 제자인 성현(聖賢)이 아닌 우리나라 선현(先賢)이라는 점, 그리고 중앙정부가 아닌 사림이 그 설립주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가졌다. 이처럼 사립학교가 생기게 된 이유는 관학이 학교로서의 교육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덕을 겸비한 유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서재(書齋), 정사(精舍) 등의 사학(私學)을 설립하여 학문을 보급하고 학문을 계승하였다. 특히 서원은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에 입각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과 학문의 성취를 역설한 것으로 고려 말기에 들어와 조선의 통치이념이 된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였다. 따라서 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문화유산으로, 선비들의 학문 연마의 장소이며, 선현에게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향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과 아울러 후에 지방사림세력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견제 기반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즉 서원은 과거시험과 법령의 규제에 얽매인 관학과는 달리 학문의 자율성이 존중되어 출세주의나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아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던 민족교육의 산실이자 유교적 인재 배출의 요람이었다.
우리 지역의 ‘무성서원’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신라 말의 유학자인 최치원과 조선 중중 때 태인 현감이었던 신잠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원래는 태산서원(泰山書院)이라 하였던 것을 1696년(숙종 22)에 사액됨으로써 무성서원이라고 하게 되었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을 배향하고 있다.
무성서원은 현재 문루가 2층 누각식의 현가루(사진 1)가 있고 문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기와집인 강학당(사진 2), 태산사(사진 3), 강수재(사진 4) 등이 있다. 사우는 성종 15년에 지었으나 현재의 것은 1844년에 중수한 것으로 현존하는 사우 중 가장 오래 된 것의 하나이며, 강당은 1825년에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828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재)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문화재돌봄 사업단은 지역민의 교화에 앞장 선 무성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예방보존을 위한 흰개미모니터링(사진 5), 부분적으로 탈락된 앙토 및 회벽의 미장(사진 6), 창호지 교체 등 경미한 문화재보수를 진행했다. 또한 얼마 전 문화재청에서는 ‘청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킴이’ 모집공고가 있어서,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무성이’팀도 활동계획서를 제출하여 선발되었다.
‘무성이’는 무성하다는 뜻과 무성서원의 학동이라는 이중적 뜻을 지닌 팀으로 청출어람 프로젝트, 심수상응 프로젝트, 비전비상 프로젝트 등으로 무성서원을 보존, 관리, 활용하기로 하였다. 청출어람 프로젝트는 배향인물의 인품을 배워 청어람하는 생을 살도록 하는 프로젝트로 최치원과 같은 인문적 학풍, 정극인 같은 안빈낙도의 삶, 송세림 같은 긍휼의 마음 등을 배우도록 돕는 일이다. 심수상응 프로젝트는 각 건물들과 남겨진 비석, 봉심안, 강안, 심원록 등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과학적인 모니터링과 보존관리를 실시하는 프로젝트이다. 또한 비전비상 프로젝트는 하드웨어적인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서원의 역사성과 장소성, 기억성을 되찾으므로 인해 한국 서원이 비전비상하도록 돕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문화재청은 ‘청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킴이’에 8개의 서원을 지킴이 대상으로 하였다. 그토록 서원의 이념을 길이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경미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문화재돌봄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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