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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꽃무늬 문살, 영혼이 숨쉬다

세상 찌든 때를 벗고 들어오라 하네. 

 세상 모든 것에는 품격이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저 고만 고만하게 보이는 난초에도 수십층의 격차가 있고, 야산 기슭에 서 있는 소나무에도 소나무마다 다른 품격이 있게 마련이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집의 품격은 기둥과 들보, 문과 창, 마루 등에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인품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이 가운데 아기자기한 맛을 풍기며 집의 품격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 창살이다. 사대부 가옥의 불발기에서 보는 둥글거나 또는 팔각형 모양으로 짜놓은 창살무늬는 단아한 선비의 멋을 흠뻑 느끼게 만든다.

 한국 불교예술의 정수라고 표현되는 사찰의 꽃살문은 세계 어느 나라 건축물에서도 좀처럼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예술성이 깃든 조각품이며, 특정 종교의 예술로서의 가치를 넘어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법당의 문은 중생이 이승의 티끌을 털고 부처의 극락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이기에, 불교에서 최상의 장엄을 표현하는 ‘꽃’으로 장식돼 있다. 석가모니 부처가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것도 ‘꽃’이고, 최고 경전인 법화경과 화엄종의 명칭에서도 꽃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꽃은 법이요 부처의 진리이며 극락이다.

 경건한 불교 신앙심이 민중속으로 다가가 고려불교의 귀족적인 긴장감은 사라지고 소박하고 단순하며 따뜻한 정감이 서린 ‘꽃살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한국성을 지닌 문화유산이다.

 사찰의 꽃살문은 대부분 부처를 예배하는 법당의 출입문에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를 경배하는 최고의 공양물이 꽃이기 때문이다. 또, 꽃살문은 부처와 중생을 이어주는 엄숙한 경계를 치장하면서도 그 안에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삶과 같은 순수함과 담담함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극락의 문, 우리의 꽃살문은 아름다움과 장엄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꽃살문은 격자살문과 빗살문, 솟을살문 등 전통 사찰의 출입문에 새겨진 다양한 무늬를 말하며, 주로 교살문, 격자문살의 교차된 부분에 꽃무늬를 붙여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우리네 꽃살문은 단순한 형태의 날살문과 띠살문부터 가장 화려한 솟을꽃살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문틀 안에 세로로 살을 지른 형태로 장중하고 단순한 주심포 맞배집에 어울리는 ‘날살문’과 널판에 모란, 연꽃, 새, 자라,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들을 투조하여 새긴 ‘통판투조꽃살문’, 또 아(亞) 귀(貴) 용(用) 등의 글자를 본떠 만든 ‘문자꽃살문’, 사각형의 빗살을 상하좌우로 서로 잇대서 배열한 것으로 주로 승방이나 요사채에 사용되고 있는 ‘숫대살문’ 등이 유명하다.

 이밖에 날살과 띠살을 같은 간격의 사각형으로 짠, 일명 정자살문 또는 우물살문이라고 하는 ‘격자살문’이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격자살과 빗살을 주로 하여 여러 가지 살을 혼용한 ‘솟을꽃살문’, 솟을살의 교차되는 부분에 모란, 국화, 연화 등의 꽃들을 도드라지게 새긴 ‘격자빗살문’ 등도 눈길을 끈다.

 특히 송광사 하사당의 날살문과 띠살문, 범어사 팔상전의 격자살문, 빗살문, 범어사 안심료의 숫대살문, 남장사 극락보전의 솟을민 꽃살문, 용문사 대장전의 윤장대 솟을 꽃살문, 그리고 내소사 대웅보전 솟을연꽃살문 등이 유명한 사찰의 꽃살문이다.

 이 가운데 솟을연꽃살문은 솟을살이 교차되는 부분에 모란, 국화, 연화 등의 꽃들을 새겨넣고 단청한 것으로, 가장 화려한 형태의 문이다. 즉 부처와 중생을 이어주는 경계를 치장하는 지극히 아름답고 순수한 장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연꽃, 모란, 국화, 해바라기, 백일홍 등의 꽃을 새긴 문살을 사방연속으로 짜맞춰 보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로 빠뜨린다. 내소사의 꽃살 무늬는 연꽃을 소재로 봉오리와 활짝 핀 모양을 여럿 새겨 불성을 깨우치는 단계를 표현하고 있다. 고건축의 단아하고 깊은 맛을 흠뻑 풍기는 대웅보전의 품격을 더욱 높이는 것은 문살 무늬다.

내소사 대웅보전, 화려하면서도 소박함 백미

 

'등푸른 햇살이 튀는 전나무 숲길 지나/내소사 안뜰에 닿는다/세 살배기가 되었을 법한 사내 아이가/대웅보전 디딤돌에 팔을 괴고 절을 하고 있다/일배 이배 삼배 한번 더/사진기를 들고 있는 아빠의 요구에/사내 아이는 몇 번이고 절을 올린다/저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문(門)이 환희 웃는다/사방연속으로 새겨진/꽃창살무늬의 나무결을 손끝으로 더듬다 보니/옛 목공의 부르튼 손등이 만져질 듯하다/나무에서 빼낸 옹이들이/고스란히 손바닥으로 들어앉았을 옛 목공의 손/거친 숨소리조차 끌 끝으로 깍아 냈을 것이다/결을 살리려면 다른 결을 파내어야 하듯/노모와 어린 것들과 아내를 파내다가 이런!/꽃, 창, 살, 무, 늬/옹이 박힌 손에 붉게 피우곤 했을 것이다’

 

  박성우시인의 ‘내소사 꽃창살’.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은 ‘금빛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법당 천장을 올려다 보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금방이라도 살아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단청이 있거나 커다란 건축물은 아니지만 수수한 매력이 있어 아름답다, 정면 여덟 짝의 꽃무늬 창살은 나무를 깎아 만들 수 있는 조각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하는 상징물에 다름 아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 토막을 꿰맞춰 지었다는 대웅보전의 빛바랜 단청과 처마 밑을 장식하는 정교한 조각은 이곳이 예사로운 사찰이 아니었음을 한눈에 짐작케 하고 있다.

 고풍스런 문창살은 장인들이 땀을 쏟아 하나하나 새겨 놓은 국화와 연꽃문 양들이 화사한 꽃밭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 그곳에 가면 온통 꽃밭 천지다. 그 꽃은 그러나 땅에 피어난 게 아니다. 창호(窓戶, 문)에 활짝 핀 꽃, 바로 문창살(문살)에 조각해 놓은 꽃이다. 그래서 영원히 시들 줄을 모르며 방실방실 우리를 맞는다.

 건물 정면 여덟짝의 창호엔 꽃무늬 문살로 가득하다. 문짝 하나하나가 그대로 꽃밭이고 꽃가마다. 사방연속무늬로 끝없이 이어진 꽃들은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오색 단청은 세월에 씻겨 내려갔고, 이제는 속살을 드러내 나무 빛깔 나무결 그대로다. 담백하고 청아하며 깔끔하며 순박한 전북의 멋, 한국의 아름다움 그 자체. 깊은 밤, 꽃살에 붙은 창호지 틈새로 은은한 달빛이라도 새어들면 세속의 욕망은 소리 없이 흩어지고 금방이라도 해탈의 문이 열릴 듯하다.

 아름다운 동화를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오랜 세월에 나무결의 빛이 바래 신비감을 더해 주고 있다. 똑같은 아파트에 똑같은 창을 달고 사는 현대인의 품격은 어디에서 살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