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박물관(관장 이태영)이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기획전시실서 운봉 승동표 특별전을 마련한다.
이는 승화백의 차남 승수근(전북대학교 교직원)씨가 기탁한 75점 등 149점 가운데 30여 점을 선보이는 기탁특별전에 다름 아니다.
후기 인상파의 냉철한 분석과 자유로움을 작품에 구현하며 ‘한국의 세잔’이라 불리는 고 운봉(雲峰) 승동표 화백(1918~1996)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전북대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승씨가 기탁한 작품은 승화백이 1955년부터 1996년 사이에 그렸던 정물과 인물, 풍경 등 모두 75점이다.
이 가운데는 아내, 큰 아들, 그리고 자화상 등 인물과 중인리의 겨울, 무주구천동의 가을, 무주구천동의 겨울, 구이저수지, 채석강, 삼천동의 풍경, 격포바다의 풍경 등 전북산하의 4계는 물론이거니와 카네이션 등 꽃을 포함한 정물과 자연의 이야기로 압축, 야수파적인 표현기법과 입체파 양식으로 표현된 유화가 선보인다.
승동표 화백은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1936년 오산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제1회 전조선학생 미술전람회에서 ‘꽃다발이 있는 정물’로 특선을 수상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오산고보에서 이중섭, 문학수, 김창복 등과 함께 임파 임용련 선생에게 미술지도를 받았다. 1938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모교인 오산고보에서 미술교사를 역임, 한국전쟁으로 월남을 하게 된다.
1951년 남원농업학교와 정읍중학교 미술교사로부터 1982년 고산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화단과는 교류를 끊고 살아 그렇게 화단에서 잊혀져 갔다.
승화백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미술관 개관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었고,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잊혀진 미술작가 발굴전’의 첫 순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는 후기 인상파의 냉철한 분석과 자유로움을 구현함으로써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은 가운데 2006년과 2008년에는 전북도립미술관이 개최한 전시를 통해 도민들에게 또 한 번의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승화백은 남한에서 100여 점의 완성된 작품을 남기고 갔지만, 누구에게도 돈을 받고 작품을 판 적이 없다. 어디에 출품한 적도 없으며, 그룹전이나 개인전을 열지도 않았다. 그는 이중섭·김환기·이쾌대 등과 더불어 우리 나라 근대미술의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지역에서 주로 작품활동을 한 탓에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소중하게 간직한 기억 저편의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후기에 창작한 대부분 작품이 청년기의 화풍을 고수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혹여 젊은 날의 추억이 잊혀져 버릴까 두려워하고, 남한에서 새로 시작한 삶의 편린들이 부서져 버릴까 염려하는 마음들이 그의 후기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83년 작품 ‘미루나무가 있는 마을의 길’(45.5x37.5cm oil on canvas 1983)을 보자. 시절은 땡볕마저 녹아내리는 6월이다.
농번기를 맞아 발길이 부산한 고샅 풍경이지만 군데군데 여유가 묻어나는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오디 익는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원통모양의 미루나무와 푸른 대숲, 그리고 넓은 고샅이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정작, 풍경보다도 마을사람들의 정담이 더 짙게 배어나는 작품이다.
또 하나의 작품 ‘강가 풍경’(45x38cm oil on canvas 1986)은 가을 언저리를 휘감고 흐르던 강물이 커다란 댐 아래로 흘러내리는 풍경이다. 세월의 언덕을 건너는 초로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풍족한 계절을 절제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풍경의 단층 속에 숨어 있는 아쉬움까지 화폭에 담아낸 작가의 심정 또한 강물처럼 허허로웠을 것이다.
승수근선생은 “아버지의 작품을 전북대박물관에 기탁하게 된 것은 지난해 신축한 박물관의 수장시설의 안전성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친의 작품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말한다.
특히 “그동안 아버님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관해오며 이 작품들이 연구와 교육을 위해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수장 시설이 우수한 전북대 박물관을 통해 작품의 안전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태영 전북대박물관장은 “소중한 작품 기탁을 통해 우리지역의 소중한 작가인 고 승동표화백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전북대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선태 예원예술대 교수(미술평론가)는 “승동표 선생은 서구의 양식을 철저히 탐구하고 더 나아가 자신만의 화풍과 미적감각을 구축해 독특한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며 “특히 선생은 조형적인 측면을 중요시해 구축적이고 논리적인 화면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미술사에서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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