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歸去來辭)’, ‘도화원기(桃花源記)’ 등 절세의 문장을 남긴 중국의 도연명은 동진 시기를 살았다. 이름은 잠(潛)이고, 자는 원량(元亮) 또는 연명으로, 심양 시상(現 강서성 구강현)에서 태어나 스스로 호를 오류(五柳)라 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를 ‘정절(靖節)선생’이라고 불렀다.
특히 귀거래사는 벼슬살이에 염증을 느끼고 전원생활을 동경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평택 현령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글 첫머리에
‘돌아가련다! 고향의 전원이 황폐해지려고 하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겠는가. 고귀한 내 마음 말단 관리 생활에 맡겼던 지난날의 잘못된 생각, 어찌 슬퍼 탄식해 홀로 서러워만 하고 있으랴! 지난 인생은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음을 깨달아! 다가올 삶에서는 지난날을 미루어 더욱 잘 할 수 있겠지. 사실 벼슬이란 잘못된 길에 빠져 헤매긴 했으나 그리 멀리 벗어나진 않았으니, 오늘이 바른 삶이고 어제까지의 삶이 그릇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네.....’로
시작된다.
귀거래사는 ‘돌아가련다.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제껏 자신의 존귀한 정신을 천한 육체의 노예로 삼았으나 어찌 슬퍼 탄식해 홀로 서러워하리. 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이미 쓸데없음을 깨달아 장래 인생을 쫓아 갈 수 있음을 알았네. 실상 인생길을 갈팡질팡한 것은 오래지 않았나니 지금이 바른 삶이요, 어제까지 그릇됨을 알았네. 고향 가는 배는 흔들흔들 움직여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솔솔 옷깃에 불어온다. 길손에게 고향이 얼마나 머냐고 물어 보며 새벽빛 아직 희미해 길 떠나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중략) 돌아가련다. 세상 사람과 교유를 끊고 세상과 나는 서로 잊고 말지니 다시 한번 관리가 되어도 거기 무슨 구할 것이 있으랴. 친척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지우련다. 농부가 찾아와 나에게 봄소식 알려 주니 이제는 서쪽 밭에 갈이를 시작하자.(하략)’
임실 양요정(兩樂亭,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전북 문화재자료 제137호)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여러 점 있다.
도연명이 지금까지의 관리 생활이 마음의 형역(形役, 육체의 노예)으로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주장한 것 같은 메시지를 담은 셈이다.
우선 ‘양요정’ 편액 맨 앞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가마에서 내려 고향에 오는 내용의 그림을 비롯, 세 명의 노인이 바둑을 두는 장면, 산보를 하는 그림, 자연에 푹빠진 장면 등 4-5점의 그림이 있다. 특히 화조도는 활짝 핀 백색의 모란에 나비와 새가 날아드는 그림으로, 창녕 관룡사의 약사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양요정은 정자의 건물에 그림이 그려진 거의 유일한 예로, 근대기 지방 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벽화는 원래 있었던 원형 그대로의 그림이 아니라는 전경미 예원예술대학교 교수의 설명.
양요정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부터 선조(재위 1567∼1608) 때까지 살았던 성균진사 충현공 양요당 최응숙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 이름은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라는 말에서 따 왔다
공자는 ‘논어’의 ‘옹야’편에서
‘지자요수(智者樂水)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요산(仁者樂山)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동(智者動)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인자정(仁者靜)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자요(智者樂)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인자수(仁者壽) 어진 자는 오래 산다’
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과 어진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성격과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식별력이 높다. 자신과 맺어지는 인간 관계에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두루 흘러 맺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을 좋아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호수 같은 물을 찾고 관찰하고 즐긴다.
어진 사람은 의리를 편안히 하고 중후해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하여 산을 좋아한다. 늘 자신과 하늘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위에 두고 있다. 이들은 호기심이 적어 한 곳에 가만히 있기를 좋아하고 고요한 성격이 많다. 또, 마음을 가다듬고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래 산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그 마음은 밝고 깨끗하며 이해심이 넓고 깊지만 흐르는 물과 같이 변해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새로워지기도 한다.
반면 어진 사람은 산처럼 부동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고 고요하며, 사욕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측은한 마음으로 동정하는 인간애를 가지고 있다. 인자를 굳이 산에 비유한 것은 산은 모든 것을 품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했다. ‘인(仁)’으로서 품으면 모든 것이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지명자 불원천(知命者 不怨天, 하늘이 준 자기의 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지기자 불원인(知己者 不怨人,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음),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 진정 아는 사람은 떠들어 대지 않고 떠들어 대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 등 비슷한 글귀가 있다.
양요정은 양요당이 임진왜란을 피해 낙향해 45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물을 지은 기록에 따르면 지금 있는 자리보다 훨씬 아래 쪽에 세웠으나, 1965년 옥정호 공사로 인해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지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 지붕으로, 정자 전체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무늬를 놓아 그리거나 칠한 단청과 벽화가 있어 아주 오래 전의 선비정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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