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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석정 이정직

호남지역, 특히 김제지역은 지주계급을 중심으로 한 양반계층이 폭넓게 형성되면서 학문과 사상이 발달했고, 자연적으로 글과 그림이 발전하게 된 문화예술의 고장이었다. 당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호남의 서예를 대표했던 인물이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으로 호남의 서예는 그를 중심축으로 해 더욱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다.

이정직은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 해학(海鶴) 이기(李沂, 1848~1909)와 함께 근대 ‘호남 삼걸’로 일컫는 인물이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총체적인 변화가 극심했던 개화기를 거쳐 일제치하 직전까지 한 시대를 같이 보냈던 친우들이다. 또, 이 세 사람은 공리공론적인 성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진취적이고 실용적인 실학을 개척하고자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정직과 이기는 김제출신이라는 것이다.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난 이정직의 자(字)는 형오(馨五)이고, 호는 석정(石亭), 석정산인(石亭山人), 연석(燕石) 등을 썼다. 그는 유학은 물론 시, 문학,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던 문인예술가이자, 어학,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에도 관심을 가졌던 실학자의 풍모를 지녔다.

이정직의 글씨는 왕희지(王羲之, 307~365)를 근본으로 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서풍을 선보인다. 그리고 그는 그 스스로 밝힌 것처럼 글씨에 비해 그림에 매진하지 못했지만, 사군자, 화훼, 괴석 등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제서단(金堤書壇)’은 이정직의 문하에서 배출된 서화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서예와 묵난에 능했던 조주승(趙周昇, 1854~1903), 학문은 물론 사군자에 뛰어났던 송기면(宋基冕,1882~1956), 나갑순(羅甲淳, 1885~1946), 최규상(崔圭祥, 1891~1956) 등이 이정직에게 배운 제자들이다.

이밖에 20세기 전북 서화계에 이름을 떨친 당대 명필 조기석(趙沂錫, 1876~1936), 묵죽에 뛰어났던 유영완(柳永完, 1892~1953), 송기면의 아들 송성용(宋成鏞. 1913~1999) 역시 김제서단의 명맥을 잇는 서화가들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이 9월 23일까지 미술실 특집전시 ‘석정 이정직의 글씨와 그림’을 갖는다. 이번 특집 전시는 그가 직접 기르고 영향을 끼친 김제서단의 서화가인 조주승, 유영완, 송기면의 글씨와 그림도 함께 선보인다.

현재까지도 전북 서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김제서단 서화가의 면면을 통해 이정직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도 남음이 있는 자리로 눈길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