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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상징

종묘제례악의 산실,종묘

종묘제례악의 산실,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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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종묘제례악은 그 음악에서뿐 아니라 연주되는 장소인 종묘의 독특한 건축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종묘의 정전(正殿)은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는데, 각각의 신실(神室)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건물 한 칸마다 한 왕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선이 강조되어 독특한 형식미를 지니고 있다. 종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위패를 모신 한 칸(間)의 신실(神室)이다. 각 신실은 동일한 모습이다. 그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이 단순하고 형태가 같은 신실이 19번 반복되는 것이다. 여기에 종묘의 건축적 엄숙함과 형태적 장엄함의 비밀이 숨어 있다. 월대의 한없이 넓게 펼쳐지는 돌바닥도 정전 앞 공간의 엄숙함과 고요함을 더해 준다.

처음 종묘를 세울 때 건물은 7칸으로 지었다. 그러다가 종묘에 모실 신령이 늘어가자 종묘 건물과는 별도로 그 서쪽에 부속건물을 지었다. 영녕전(永寧殿)이라는 집이다. 이 부속건물에는 최초 왕의 4대 할아버지나 또는 직계 자손으로 왕위가 계승되지 않은 왕을 모시도록 하였다. 영녕전과 구별하기 위해서 본 건물을 정전(正殿)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속건물이 아닌 정식 건물이라는 뜻이다. 정전에는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太祖)를 비롯해서 직계 자손으로 왕위를 이어가고 또 큰 공로를 세운 왕이 모셔졌다. 영녕전에서는 우선 건물 가운데에 태조의 4대조 위패를 모시고 이 4칸(間)과는 별도로 서쪽 끝에서부터 오래된 위패순으로 동쪽으로 순서대로 위패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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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은 대단히 넓은 네모 반듯한 낮은 단(壇)을 두고 그 뒤편에 목조의 단층 긴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단은 월대(月臺)라고 부르는데 한쪽 길이가 100미터를 훨씬 넘는 크기이다. 제사가 있을 때 이 월대 가득히 사람들이 올라선다.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은 물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춤추는 무희도 모두 이 월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월대 위는 거칠게 다듬은 네모난 돌로 덮여 있다. 일부러 돌을 불규칙하게 다듬고 또 가지런히 줄 맞추어 깔지도 않았다. 거친 표면과 불규칙한 배열이 오히려 이 월대 바닥에 생동감을 준다.

종묘는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인구 1천만을 넘는 초 거대도시이며 콘크리트로 지어진 고층 건물이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심 한복판에 6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과거의 건물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쉽게 믿어 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뿐 아니라 6백 년 전과 다름없는 제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 역시 하나의 문화적 경이라고 하겠다. 이런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가 봉안된 장소인 종묘는 이미 1995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어 종묘제례의 종묘제례악이 또한 2001년 유네스코의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어 수상한 바 있다. 종묘에서의 제례 재현은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거행되며, 종묘제례악은 국립국악원의 공연 및 음반 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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