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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쉽죠

나각·금은입사쇠대금

 

  • 소라껍데기로 만든 관악기의 하나로 ‘나(螺)’ 또는 ‘소라’라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의종(毅宗) 때 각종 위장(衛仗)이나 의장(儀仗)의 수레 뒤에 따르던 취라군(吹螺軍)이 이 악기를 불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다. 악기를 만드는 법은 바다에서 사는 큰 소라를 잡아 살을 꺼내고, 꽁무니 뾰족한 끝부분을 갈아 입으로 부는 입구를 만들어 끼운다. 일정한 크기는 없으며 소라의 원형 그대로 쓰기도 하고, 천으로 거죽을 씌우기도 하며 속에 붉은 칠[朱螺]을 하여 모양을 내기도 한다.
    이 악기는 낮은 외마디 소리이지만 웅장하고 우렁찬 지속음을 낸다. 연주법은 나발과 같이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로 김을 불어넣어 입술의 진동으로 ‘뿌우―’ 하고 소리내는데, 음높이는 소라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궁중연례(宮中宴禮)와 군례(軍禮)에 사용되었고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중〈정대업定大業〉의 일무(佾舞)에도 사용되었다. 지금은 태평소·나발·징·자바라·북 등과 함께 대취타(大吹打)에 편성되어 있는데 특히 나발과는 엇갈리며 번갈아 연주된다.

               

    □ 금은입사쇠대금(鐵製金銀入絲)
    철로 만든 대금으로 가로로 부는 악기이다. ‘젓대’라고 하는데 국악의 대표적인 관악기로 황죽(黃竹) 또는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옆으로 부는 피리[橫笛]이다. 대금(大魁)이라고도 하며, 시나위젓대와     구분할 때는 정악대금(正樂大魁)이라고 한다. 문묘제례악과 대취타(大吹打)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악(正樂)·민속악에 널리 사용한다.
    대금은 다른 횡적류와는 달리 취공부분을 연주자의 왼쪽 어깨에 올려놓고 불고, 취구(吹口)와 지공(指孔), 지공과 지공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긴 편이어서 연주에 신체적 숙달이 필요하다.
    음역이 넓고 고정된 음고(音高)를 지니고 있어 합주할 때 다른 악기들이 대금의 임종(林鐘)에 맞추어 조율한다. 또, 음량이 풍부하고 비교적 넓은 취공을 입술로 조절하며 음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 국악기 중 대표적인 독주악기로도 자주 쓰인다.
    이 금은입사 쇠대금은 대나무처럼 마디가 져 있고 당초와 학 문양을 금과 은으로 입사하여 장식하였으며 무늬 없는 쇠대금은 청공(淸孔)을 막는 갈대줄기의 얇은 막인 갈대속청까지 철로 만들어 실제 악기를 그대로 본떴다. 바람을 불어 넣는 취구(吹口) 1개, 특유의 음색을 내는 청공(淸孔) 1개, 음의 높고 낮음을 조절하는 지공(指孔) 6개가 뚫려 있으며 아래 끝부분에 칠성공(七星孔)이라는 구멍이 있다.

    □ 행진음악[行樂]
    행악은 행진할 때 연주되던 음악을 말하는데, 궁중 소속 악대가 연주하는 행악을 일반적으로 ‘고취(鼓吹)’라고도 한다. 어가행렬의 규모에 따라 고취악대의 규모도 달라졌다. 대개 규모가 큰 대가의장(大駕儀仗)·법가의장(法駕儀仗)에는 전·후부고취(前·後部鼓吹)가 함께 따랐으나 규모가 작은 소가의장(小駕儀仗)에는 전부고취만 따랐다. 고취악대의 악기편성은 왕비의장을 제외하고 모두 동일하며 박·당비파·퉁소·대금·당적·장구·교방고·피리 등으로 구성된다. 고취악대와 더불어 나발·나각 등의 취각(吹角: 조선후기 내취內吹)과 징, 북 등의 금고(金鼓)도 행렬을 따랐다. 왕이 여(輿)를 갈아탈 때 음악을 시작하고 왕이 연에서 내려 목적지로 들어서면 음악을 그쳤다. 이때 왕이 궁을 나설 때와 들어설 때 궁궐 내에서는 전후고취(前後鼓吹)라는 별도의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였다.


    R 참고문헌
    1.『국역악학궤범』(민족문화추진회, 1979)
    2. 전시안내도록『국립고궁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 2007)
    3. 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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