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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쉽죠

조선왕실의 가마

 

  • 조선 왕실의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던 가마는 주로 국가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왕실 가족이 궐 밖으로 행차할 때 사용되었다. 조선은 유교이념의 실천을 위해 조선 초부터 국가의례를 정비하였는데, 왕실의 가마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마련된 어가행렬 속에서 다양한 의장으로 장엄되고 수많은 군병에 의해 호위 받으며 문무백관을 따르게 함으로써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였다.
    가장 고귀하신 왕과 왕비, 왕세자는 연(輦)을 탔고, 공주와 옹주는 덩[德應]이라 부르는 가마를 탔다. 지붕과 벽체가 없는 가마인 남여(藍輿)는 국왕이 궐 안팎에서 이동할 때 사용되었으며, 민간에서도 상류층의 이동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봉교(鳳轎)가 새롭게 등장하여 황실에서 쓰였다.
    사람이 타는 가마 외에도 향로와 축판(祝板)을 싣는 향정자(香亭子),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관료들이 올리는 글인 전문(箋文)·치사(致詞)를 싣는 용정자(龍亭子), 국가 행사 때 올리는 문서인 옥책(玉冊)·교명(敎命)이나 선왕의 업적을 담은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을 싣는 요여(腰輿), 의식에 사용하는 도장인 보(寶)나 임금이 하사한 옷인 명복(命服)을 싣는 채여(彩輿)와 같이 여러 가지 의물을 운송하기 위한 가마도 있었다.

    □ 임금 가마[輦]
    조선시대 왕이 탔던 가마이다. 지붕, 몸체, 가마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모서리에 용을 그린 둥근 기둥을

    세우고 둥근 기둥 사이에 각기둥을 세운 후 아랫부분

    에만 난간을 돌렸다. 몸체에 주칠을 한 후 난간 부분

    에 금색으로 백택(白澤), 기린(麒麟) 등 다양한 상상

    의 동물들을 그려 넣었다. 네 면에 주렴을 드리우고

    다시 휘장을 내려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지붕

    네 모서리 봉황 장식에 고리를 달아 유소(流蘇)를 고

    정시켜 내려뜨렸으며 가마채의 끝 부분에는 도금한 용머리 장식을 끼워 마감하였다.

    □ 왕실 여성의 가마[駕轎]
                                조선시대에 대비(大妃) 등 왕실의 여성 웃어른이 타던 가마이다. 전체에 주칠을 하고 모

                                든 면에 꽃, 넝쿨과 박쥐, 칠보문, 수자문(壽字文) 등을 부조로 장식하였다. 창은 겹창으

                                로 만들었는데 미닫이형 내창은 덩굴 문양을 투각하여 장식하였고 지붕에서부터 검정색

                                비단으로 휘장을 내려 창문을 막았다. 지붕은 각이 져서 위로 둥글게 솟아 있으며 꼭대

                                기를 납작하고 둥근 모양의 금속[보주(寶珠)]으로 마무리하였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

                                를 만들어 고정하였고 끝부분은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 봉황 가마[鳳轎]
    대한제국기에 새롭게 등장한 가마이다. 지붕 및 출입

    비롯한 가마의 네 측면을 봉황으로 장식하였고 길이

    를 짧게 한 붉은 색 휘장에도 봉황을 금박하였다.

    지붕은 두 단을 지어 올렸고 팔각의 단을 이룬 정상을

    여덟 마리의 봉황을 두른 호리병 모양 꼭지로 마무리하

    였다. 지붕의 각 면에는 구름문양을 그렸고 네 모서

    봉황 장식에서 유소가 내려져 있다. 내부에는 주칠을 한 의자를 설치하였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를 만들어 고정하여 매도록 하였는데 끝 부분은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R 참고문헌
    1. 전시안내도록『국립고궁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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