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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첨성대 도면을 찾아서

20여 년을 넘게 고이 간직해오던 귀한 자료를 연구를 위하여 필요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문화재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그리고 학문을 사랑하는 과학기술인으로서 참 모습을 보여준 이동우 박사님을 알게 된 것은 값진 수확이었다.

첨성대 그 인연의 시작
우리의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결같겠지만 “어떻게?” 라는 구체적인 물음에는 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한 분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방문지로나 주로 떠올려지던 경주, 휴가 때나 가끔씩 휴식 차 가족과 함께 들렀던 고도古都의 아름다움이, 지난 해, 아니 벌써 두 해 전인 2007년 여름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건축建築과 수학數學을 접목시킨 국제 학술대회에 가장 이상적인 대상물로 여겨지는 첨성대에 관한 논문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첨성대와의 인연은『기하학적 모양새에 대한 수학적 해석』Mathematical Interpretation of a Thirteen Hundred Year-Old Stone Masonry Observatory이라는 제목의 영문 논문으로 완성되어 지난해 미국 San Diego에서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또한 첨성대 건립의 공학적인 면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게 되어 논문을 발표할 적절한 논문집을 찾던 중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전문학술지 「문화재」를 알게 되어 이번에는 우리말 논문 『첨성대 시공방법론』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듯 큰 기대를 안고 시작한 논문은 처음 단계부터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첨성대 도면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첨성대의 수학적 해석’에 대한 영문 논문은 이미 발표된 여러 논문들을 근거로 작성할 수 있었지만, ‘첨성대의 시공방법론’에 대한 것을 도면 없이 논論한다는 것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지어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에 도면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사실과 정황을 언급言及할 수 있는지의 여부야말로 이야기 내지는 개인적 의견으로부터 학술 논문을 구분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1962년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 홍사준 선생님이 직원들과 함께 첨성대를 실측하였다는 기록은 여러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에 언급되어 있었지만, 실측도면이 내 눈에는 좀처럼 띄지 않았다. 영문 논문을 쓰느라 구하였던 1963년 한국미술사학회지에 실린 홍사준 선생님의 첨성대 실측 결과 보고 논문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지만 별첨別添하였다는 실측도와 복원도는 실망스럽게도 보이지 않았다.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이 있듯이 첨성대 도면을 가지고 있을 법한 기관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전화하기 시작했다. 시청, 박물관, 방송국, 한국미술사학회, 문화재청, 문화재 연구소, 국가기록원, 과학박물관, 여러 논문 저자들, 등등. “저는 대학 선생이구요. 이러 저러 해서 첨성대의 얼개를 보여주는 도면이 꼭 필요하니 도움을 주실 수 있나요?”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것이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방학의 대부분을 전화하고 전자우편을 보내고 그리고 답변을 기다리며 지내야 했다. 갑갑하고 지루했던 더운 여름 날의 이러한 고행苦行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문화재청과 미술사학회에서 홍사준 선생님의 도면 사본을 보내주었지만, 도면이 담고 있는 제한적인 정보와 흐릿한 상태로 인하여 논문을 쓰는 일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첨성대 도면 기증자 이동우 박사와의 만남
첨성대 도면 찾기가 뚜렷한 성과 없이 방학의 마지막 달인 8월로 접어든 어느 날, “잘 될는지 모르겠지만 …”하는 절망과 희망의 범벅 속에서, 드디어 마지막으로 남은 패牌를 쓰기로 하였다. 그 동안 내가 참고한 논문 중 유일하게 첨성대 도면 17부가 존재한다고 언급한 논문의 저자인 재미과학자 이동우 박사님에게 연락해 보기로 했다. 이박사님과의 만남은 2000년 9월 한국콘크리트학회KCI와 미국콘크리트학회ACI가 공동으로 개최한 서울 국제학술대회에서 내가 발표를 마친 후 명함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인데 전화하여 첨성대 도면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더구나 첨성대 도면을 언급한 논문이 발표된 시점이 1986년이니 무려 22년 전의 도면이 아직도 있을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과연 도면을 넘겨줄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워낙 다급한지라 용기를 내어 국제전화를 걸어 자초지정을 설명하였다. 이박사님은 도면을 보내주겠노라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다만 20년도 훨씬 지난 자료인지라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동우 박사님으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도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나름대로 도면 찾기를 계속하였다. 우리나라 어느 회사가 첨성대 도면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회사와 통화하였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도면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아! 도면을 넘겨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로구나! 더욱이 그 도면이 이 세상 다른 곳에는 없는 유일한 것일 경우 그 귀한 것을 내어준다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구나!
개강을 보름 정도 앞둔 어느 날, 이동우 박사님으로부터 도면을 찾았으며 이튿날 우편으로 보내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나는 논문을 마무리 한 후에는 도면을 이박사님의 이름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노라고 약속하였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첨성대 도면 17부가 항공우편으로 무사히 도착하였다. 논문 마감일까지 두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이 박사님께 전자우편을 띄운 후 떨리는 마음으로 도면 통을 개봉하였다. 이렇게 어렵사리 구한 귀하디 귀한 첨성대 도면 17부는 1962년 그려진 홍사준 선생님의 실측도와 복원도를 근거로 부산의 어느 구조설계사무소에서 트레이싱tracing하여 작성된 것이라 한다.
이런 대장정大長程을 거쳐 첨성대 도면을 확보하고 논문은 무사히 마무리 되어 지금은 심사를 통과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전문학술지 「문화재」에 실릴 예정으로 있지만, 그 동안 도면을 찾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가히 눈물겹다고 하겠다. 국보 제31호인 첨성대의 도면을 국가기관이 아닌 개인이 소장하고 있고, 그것을 찾고 구하기가 그리도 어려웠다니! 하지만 20여 년을 넘게 고이 간직해오던 귀한 자료를 연구를 위하여 필요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문화재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그리고 학문을 사랑하는 과학기술인으로서 참 모습을 보여준 이동우 박사님을 알게 된 것은 값진 수확이었다. “이박사님, 약속대로 첨성대 도면, 이 글과 함께 문화재청에 기증합니다. 논문 발표되면 한 부 보내드리겠습니다.”

▶ 글·사진 | 김장훈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