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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쉽죠

분청사기 안쪽에는 왜 글자가 새겨져 있나요

 

 

분청사기에 글자가 많은 이유는 주로 관청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며, 태종 17년(1417년)에는 관청에 상납할 사기와 나무그릇에 관청의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관청의 이름은 대체로 지방이름과 함께 사용되는데, 목청수집품 중에도 언양인수부·순흥장흥고·군인인수부·언양장흥이란 글자가 있는데, 명문과 함께 조형과 문양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언양은 경상북도에 있는 지명이다. 장흥고는 돗자리와 종이 등을 관리하고 궁궐 안의 여러 관청에서 쓰는 물건을 공급하는 관청으로 기록은 없지만 도자기도 공급품 중의 하나로 추정됩니다.

 

 또한 관청명이 있는 도자기 가운데 장흥고가 가장 많고, 특히 경상도 지방의 이름과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도자기의 지역적 특징을 이해하는 자료가 됩니다.

 

 

 인수부는 정종 2년 2월에 아우 정안공(靖安公)을 왕세자로 세우고 국가의 중요한 일을 맡게 한 관청으로 후에 세자부를 설치하여 인수부라 했습니다.

 

 이후 세조 원년에 덕령부(德寧府)로 이름이 바뀌고 페위 당한 단종을 위한 관청이 되었다가 단종이 죽자 다시 인수부로 고쳐져 명종 11년까지 존속한 세자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