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선운사 천왕문은 2층 맞배집으로, 아래층은 사천왕을 모시고 있고, 위층에는 종과 북을 매달고 있는 종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맞배지붕의 간결한 선이 아름답다. 지붕마루의 부드러운 곡선이 뒷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선운사 천왕문 앞. 2층으로 된 누각에 ‘천왕문(天王門)’이라 시원스레 쓰여진 파란색 현판이 선운사의 첫 관문임을 알려준다.
부처님이 계시는 사바세계와 정토를 구분 짓는 경계구역에 위치해 있는 천왕문에서 사천왕을 만날 수 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부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세계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가 수용한 것을 의미한다.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구성, 저마다 권속을 거느리고 있는 이 사천왕은 힌두교의 사방 수호신과 내용상 동일한 관념을 채택했지만 신의 명칭에서 그 원어까지 동일하지는 않다.
지국천왕은 온몸에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고는 부릅뜬 눈으로 매섭게 노려본다. 앙다문 입이 마치 이곳을 지나는 죄인의 목을 한 칼에 칠 기세다.
광목천왕은 몸이 흰빛이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하며, 증장천왕은 붉은빛을 띤 몸에 매서운 눈을 하고 있다. 다문천왕은 북쪽을 수호하며 비파를 들고 있고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사천왕상은 “너희들이 죄를 짓고 악하게 살면 이렇게 우리에게 짓밟힌 채 지옥에서 고통받게 될 것”이다는 메시지를, 그 목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다. 죄짓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갈파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절집들의 천왕문과는 달리, 선운사 사천왕(광목천왕)의 발 밑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광목천왕상의 오른쪽 무릎에 깔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탐관오리와 음녀상은 형벌을 받는 이의 모습이다.
고통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선과 욕심을 버리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불가에서 서쪽의 음탕한 기운을 막는 광목천왕은 무서운 큰 눈으로 사악함을 몰아낸다고 한다. 고통을 주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느끼게 한다고 하지만 이 여인상은 오히려 음탕한 눈빛을 보내면서 추파를 보내고 있다.
참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사천왕상에게 벌을 받고 있으면서 전혀 뉘우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핏발 선 눈으로 오히려 노려본다. “나를 바라보는 너 또한 나의 치마폭에 싸이게 될 걸”하고 윙크하면서 음탕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음녀상은 해학적인 미학과 우리 조상들의 익살이 그대로 읽혀진다.
미망 속에 헤매는 거짓 나로부터 벗어나 본래부터 완전한 참나를 깨달아 진리와 하나가 됨으로써, 인격을 완성하는 등 인간들의 자아를 되돌아보고, 그 진면목을 찾게 만드는 혹독한 형벌은 아닐까.
음녀상의 인상적인 눈빛을 보아라. 대부분의 사천왕상 밑에는 악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들이지만, 이곳에는 방탕한 모습의 음녀가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선운사의 음녀상은 그래서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 명물로 자리한다.
고창 선운사 천왕문의 여인상은 비도덕성이 낳은 여인상이라면 강화도 전등사의 대웅보전(보물 제178호) 여인상(나부상, 나녀상)은 비련이 탄생시킨 여인의 모습이다.
그렇다, 전등사는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이 유명하다. 대웅보전엔 사랑을 잃은 도편수의 애절한 설화가 한스럽게 살아 있다.
몇 해 전 TV드라마 소재로도 차용되었던 이 설화는 사찰이 건립될 때 공사를 담당했던 도편수가 주모와 정을 나누었으나 이를 기다리지 못한 여인이 그의 돈을 챙겨 도망을 친 것.
이에 도편수는 네 개의 나부상을 깎아 대웅전의 귀공포(처마의 모서리)마다 하나씩 달아놓았다.
평생토록 무거운 처마를 이고 있게 한 것은 죄갚음을 하라고 새겨 넣은 것이란다. 그 모습이 얼핏 보면 원숭이 같기도 하지만 전설을 모르고 가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네 곳 중 다른 세 곳은 나부가 두 손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반해 정면 왼쪽의 나부는 한 손을 내리고 있다.
마치 벌을 받다가 잠시 딴청을 피우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만큼 나부상을 만든 목수의 재치와 익살에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외국 관광객들이 이 나부상을 신기한 듯 카메라에 담아간다고. 그래서 전등사의 여인상이 천왕문에 잡혀 있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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