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의 영혼 불사르는 빠-알-간 연꽃 물결을 보았다. 진흙 속에 살면서도 그것에 더럽혀지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너 ‘연(蓮)’은 굳이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예찬하지 않더라도, 분명코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햇살을 빼닮았구나. 세상이 혼탁해서 일까, 깨끗한 것이 그토록 그리워진 탓일까. 널따란 방죽 사이로 넘실거리는 것은 푸른 연잎, 청정무구의 별천지로다.
저수지에 빼곡히 빨간 연꽃이 봉우리마다 가득히 피어 오른 저수지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홍련의 매혹에 몰입되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강인한 힘마저 꿈틀거린다.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내민 그대 ‘백련’의 자태는 아름답다 못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청순미를 지녔어라.
백련 꽃봉오리가 앞다퉈 꽃잎을 열기 시작하면 수면을 둥둥 떠다니며 은은한 향기 알싸하게 퍼뜨린다. 고추잠자리와 물잠자리가 저공비행을 하는 연꽃밭에 소나기라도 한 줄기 쏟아질 양이면 거대한 야외음악당으로 변신하나니. 이윽고 소나기가 지나간 후 연잎에 맺힌 물방울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을 꼭 붙잡는다. 수줍은 듯 살포시 봉우리를 연 청순한 그 모습, 바람에 한떨기 실려가면서 풍경을 그린다. 꿈을 빚는다.
여름의 백련과 홍련, 가장자리에 단풍빛 선연한 가을 연잎과 연밥 등 각양각색의 연꽃을 그리는 서양화가 박상규(52, 전미회 회장)씨는 잔잔한 수면 위에 봉오리를 내민 연꽃들을 활짝 피면 핀대로, 봉오리를 접으면 접은대로 운치가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연꽃은 모양에 따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색깔로 나타납니다. 미묘한 차이같지만 기실은 모두가 다른 색상인만큼 이게 걸맞게 표현해야 맞지요”
작가는 제11회 개인전(2006.9.21-27, 전주 우진문화공간)을 맞아 잠시 산과 들, 인물 위주의 작업에서 벗어나 마치 등불을 켜놓은 듯 환한 연꽃 세상에 ‘마음의 등불’을 밝히었다.
꽃이야 다 같은 꽃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심상이야 제각각 다르겠지만, 와글와글 무리지어 경쟁하듯 피어나는 다른 꽃보다 하나 둘씩 꽃대를 올리는 작가의 연꽃은 더 깊은 품격과 정신이 느껴진다.
연꽃의 형태는 사실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색깔, 내면의 색깔을 찾아내기 위해 부여의 궁남지를 포함, 전주 덕진공원, 무안의 백련지, 김제 청운사, 완주 홍련암 등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는 서식지마다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린 연꽃을 본지 족히 5-6년은 됐단다.
청록색, 보라색, 회색 등 어두운 톤을 중심으로 각각 다르게 표현되는 연꽃 외에 소나무, 고목 등에서 표출되어지는 색감은 무상한 세월의 흐름이 감지된다.
특히 소나무는 독특한 빛깔로 묘사,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깊은 속살이 보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면서 깊은 연륜을 가져다준다. ‘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하략, 박노해의 ‘굽이 돌아가는 길’ 일부)’
순간의 찰나 미학 ‘누드 크로키’는 작가에게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16-17년 여 동안 전북 화단에 누드예술의 정체성을 확립,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순간의 빠른 필치로 포착해 내는 여체는 동물적인 형상에서 벗어나 소우주 같은 신비를 자아내는 대목에 다름 아니다. 크로키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놓았음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으면 전주 우석대학교 한방문화센터로 발길을 옮겨 전통차 한 잔을 조용히 음미하면서 한쪽 벽면을 바라보아라. 인체의 경략을 포즈로한 작품들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업실 입구에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꽃봉오리를 닫는 수련, 물 위에 자태를 뽐내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바람은 가지 사이를 돌아다니며 작별 인사를 하고, 나무는 답례로 수련 아래로 낙엽을 살며시 던져준다.
정원의 일부 성급한 단풍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빨간 잎새를 흔들기 시작했고, 물가의 아름드리 나무도 노란 옷으로 갈아입느라 부산하다. 떨어지는 낙엽을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라고 읊은 시인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늦가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작가는 오늘, 온 세상이 하얗게 모두 변해가도록 목빠지게 첫 눈을 기다리면서 연꽃 그림을 매만진다. 하늘 아래 사바세계는 온통 짙은 먹구름이 끼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화(蓮花) 세상’은 언제가 될런지, 소망과 기다림으로 또 하루를 접는다. <글:전민일보 이종근기자, 사진:사진작가 유연준>
1.작가의 말
평생토록 명리를 쫓아 죽도록 고달프게 사는 인생, 이 무엇인가. 하는 수 없다면 그 바쁜 일상 속에서 짬을 내어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향에 진한 연꽃에 그림자 뒤척이는 줄과 부들을 보게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을 이루고 있지만 이를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도다’
개구리밥과 마름 사이로 노니는 작은 물고기를 보다가 그만 옷깃을 풀어헤치면서 거닐어본다. 노래를 읊조리며 노닐 수 있으니 몸은 묶여도 맘은 시속으로부터 벗어날진저!. 예나 지금이나 세속에서 선비 노릇 하기 참으로 어렵다오.
2.서양화가 조경순(부인)씨의 말
24년 동안 그림을 하는 도반으로서 부부로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남편으로서는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으며, 작가로서는 사물이 변화하는 각도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장점을 갖고 있는 등 색을 갈무리하는 능력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특출나다.
후배 작가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갈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을 견지하면서 살고 있다. 오는 12월 저의 제4회 탱화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무게감이 더해지는 그의 작품처럼 듬직하고 더욱 더 믿음이 간다.
3.작가가 걸어온 길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 졸업
개인전 13회
박상규 조경순부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4회, 심사위원
목우회 공모전 등 특선, 입선 14회
전북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초대작가
무등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벽골제미술대전, 개천미술대전 등 운영위원, 심사위원
전라미술상 수상
한국미협 전주지부장, 전국 온고을미술대전 대회장
(현) 신작전, 토색회, 노령회, 결-나이테 회원, 전북인물작가회, 라인 누드크로키회 회원
(현 )한국미술협회 서양화분과 이사, 전미회 회장
'작업실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화가 오우석 (0) | 2007.11.26 |
---|---|
서예가 김진돈 (0) | 2007.11.20 |
김종대씨, 제1회 강암서예 초대작가전 (0) | 2007.11.11 |
한국화가 황호철 (0) | 2007.11.06 |
그림 그리는 의사들 모여라 (0) | 2007.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