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업실사람들

한국화가 황호철

 

코발트색 고운 하늘에 한가롭게 노니는 너 흰구름은 여인의 속살처럼 뽀얗구나.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 너 단풍은 사랑의 교태로 다가와 저렇듯 붉은 산이 활-활-활, 붉은 비가 뚝-뚝-뚝.
 바깥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 마음 속의 모든 갈등을 차분히 강물로 흘러보내면서 얻는 교훈 하나. 가장 귀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 하나의 귀한 것을 가슴 아프게 버려야 한다는 사실. ‘이름이란 항상 남는 것이 아니요, 인생은 쉽게 사멸하는 만큼 한가롭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실로 자신의 뜻을 스스로 즐길 뿐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 몇이나 될까.
 한국화가 운경 황호철(62, 세계문화유산연구회 회장)씨의 작업실 한켠. 서로 얽키설키 있는 소나무들 옆으로, 원로 서예가 취운 진학종선생이 일필휘지한 ‘낙지론(樂志論, 후한시대의 중장통 仲長統이 지은 작품)’이 안분지족(安分知足,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의 세상사를 일러준다.
 ‘거처하는 곳에 좋은 논밭과 넓은 집이 있고, 산을 등지고 냇물이 다다라서 흐르고, 도랑과 연못이 둘러 있으며, 대나무와 나무들이 둘러져 있고 (중략) 온 세상을 초월한 위에서 거닐며 놀고, 하늘과 땅 사이를 곁눈질하며, 당시의 책임을 맡지 않고 기약된 목숨을 길이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하늘을 넘어서 우주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니, 어찌 제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겠는가’
 작가는 밤새 빗장 질러놓은 전주 금암동의 대문을 활짝 열고, 시나브로 대둔산의 품에 넉넉히 안겼다. 쪽빛 하늘가엔 양떼 구름이 발길을 바삐 재촉하고, 밝은 미소를 짓는 개미취며 구절초, 흰 솜털이 피어난 억새들과의 환담, 이내 풀내음이 코끝을 살며시 매만진다.
 맑고 담백한 필치로 엮어내는 실경상수화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더 깊어가는 자연애의 요구를 예술적 노력에 의해 충족시키는 그만의 방법.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경을 꼼꼼히 그리는 세필화가 그의 특장으로 손꼽히지만 강인한 힘이 느껴질 때란. 먹의 농담을 잘도 살려내는 까닭에 여백의 미, 절정을 달린다.
 “현장을 다니면서 스케치를 한 후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익숙해서 그저 지나치기 쉬운 풍경들, 자연의 모습들을 화폭에 담고 있는 것이죠. 항상 곁에 있어 친숙한 풍경들의 소중함, 아름다움은 저의 분신이나 다름없죠”
 늘 지나치던 곳, 자주 들리던 장소지만 ‘화가의 심안(心眼)’을 빌어 다시 보면 새롭다는 바로 그 느낌. 삶의 뿌리를 내린 흙, 물, 공기와 초목들을 가슴 벅찬 심장으로 다시 느끼고 소중하게 보듬어 볼 수만 있다면.
 한적한 마을 풍경 속에서 도란도란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소나무 그늘 아래서 가져보는 잠깐의 여유. 계곡의 물소리가 달려들고, 소나무숲의 바람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듯, 세속적 갈등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되어 유유자적하는 탈속의 분위기 잇따른다.
 “한민족은 소나무 위에서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옷을 입고, 소나무 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작가는 요즘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가진 소나무를 소재로 메시지를 낚고 있다고.
 지금, 단풍과 낙엽에 묵은 시름을 묻어 버리는 ‘대둔산’ 작품의 마무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온통 홍엽 든 대둔산의 절경이 발 아래로 아득히 펼쳐질 때, ‘이곳이 선경(仙境)이구나’ 하는 생각 절로 든다.
 ‘금강 구름다리’ 위를 조용조용 지나가는 사람들아! ‘가끔은 징검징검 흔들거리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제 아무리 자신감있는 자태로, 보무도 당당한 자세로 구름다리를 지나가더라도 흔들거림은 누구나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그러나 이마저도 눈부신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은 속시원한 하늘문(天頂) 때문이라오. <글:전민일보 이종근기자, 사진:사진작가 유연준>


1.작가의 말

 

 화선지를 펼치는 조용한 출발은 자연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되어 그 끝을 본다.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사계절 어느 때나 산야를 누비는 일이 긴장의 연속인가, 또 다른 제2의 자연을 창조의 길이 가시밭길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화폭에 등장하는 자연은 가지런하고 고요하며, 소박하고 정직한 모습이다. 철저하게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정서를 자극하고자 묵향과 싸움하고 있다.   화면 가득 침묵이 응집되어 있었으며, 고향을 향한 아련한 향수는 그리움처럼 펼쳐진다. 시골 오지 마을의 풍경 속에서 도란도란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소나무 그늘 아래에 선 잠깐의 여유로 세월을 갈무리한다.

 

2.미술평론가 신항섭씨의 평

 

 작가의 산수화는 투명하리 만치 맑고 담백한 맛을 자아낸다. 특히 담담한 이미지를 통해 시선을 아주 깊은 곳까지 끌고 들어간다.
 어느 한 군데도 도무지 막히지 않는 부분이 없이 열려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점과 선을 조밀하게 구사하면서도 애매하게 표현하는 곳이 없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붓은 형태의 세부까지 챙기면서 일점 일선을 명료하게 놓는다. 그러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을뿐더러 답답하지 않다.

 

3.작가가 걸어온 길

 

전주 출생
개인전 7회(일본, 서울, 전주)
전주대학교 미술학과, 동 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전북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장
대한민국 회화대전,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운영위원
전국춘향미술대전 초대작가
전주대학교 미술학과 강사
전주시 예술상 수상
(현) 한국미술협회, 지붕회, 산묵회 회원
(현)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세계문화유산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