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읍에서 우리전북이 낳은 명필 창암이삼만의 학술대회가 열린 바 있다. 발표된 자료집을 보면서 조선후기 명필로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던 창암 이삼만은 후손이 없어 그 동안 그의 행적이 별로 밝혀진 게 없고 연구 자료가 부족한데 체계적인 자료 수집을 위한 학술대회를 추진하여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자료를 발표하여 기쁘게 생각한다.
일생을 향토사 연구에 바치면서 창암선생의 서도와 생애를 연구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창암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기에 오늘의 학술대회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글을 정확한 근거 제시도 없이 비판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다.
‘....이철수의 불확실한 근거의 전주출생이 거론 되면서 1980년대 초반부터 “최승범과 조병희”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이철수 설을 인용하는 바람에 두 거대 학자들의 한마디로 인하여 이후 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전주설이라고 따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창암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70년대 이후 황무지를 개척하듯 구석구석 발로 뛰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어렵고 중요한 문장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석문을 붙여 발표된 논문인데도 불구, 학술대회 주관처인 창암학회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도 고맙게 느끼기는커녕 근거도 없이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이 논문은 이철수의 글을 보고 쓴 단순한 글이 아님을 좀 더 깊이 연구한 후 반론을 바란다.
이 논문은 1911년 발간 완산지 필원부분에 창암이삼만의 기록이 있고 1942년 간행된 전주부사 922-923쪽에 영조 46년(1770) 9월 22일에 전주에서 태어나 철종 13년(1847) 2월12일 78세로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상관공기골 한벽당 뒤편 최담유허 즉 현 최씨터 주변 돌에 여러 문자가 새겨졌고 인근 도로변 바위에 새긴 연비어약이 창암의 글씨다’ 고 했다.(자료제공자는 이동한으로 진안 임실군수를 역임한 창암 이삼만 4촌의 손자다)
‘한 번 잘못된 정보는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기 까지 너무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 을 생각한다면 그 누구든 어떤 분야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연구 태도가 요망된다’
이 부분은 참으로 좋은 지적이다. 누구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식의 비판은 누구나 삼가야 한다.
앞으로도 새로운 자료를 찾아내어 창암연구에 진일보하여 이 지역이 낳은 명필 창암이삼만이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라면서 마치겠다.이용엽(국사편찬위 사료조사 위원)
일생을 향토사 연구에 바치면서 창암선생의 서도와 생애를 연구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창암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기에 오늘의 학술대회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글을 정확한 근거 제시도 없이 비판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다.
‘....이철수의 불확실한 근거의 전주출생이 거론 되면서 1980년대 초반부터 “최승범과 조병희”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이철수 설을 인용하는 바람에 두 거대 학자들의 한마디로 인하여 이후 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전주설이라고 따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창암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70년대 이후 황무지를 개척하듯 구석구석 발로 뛰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어렵고 중요한 문장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석문을 붙여 발표된 논문인데도 불구, 학술대회 주관처인 창암학회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도 고맙게 느끼기는커녕 근거도 없이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이 논문은 이철수의 글을 보고 쓴 단순한 글이 아님을 좀 더 깊이 연구한 후 반론을 바란다.
이 논문은 1911년 발간 완산지 필원부분에 창암이삼만의 기록이 있고 1942년 간행된 전주부사 922-923쪽에 영조 46년(1770) 9월 22일에 전주에서 태어나 철종 13년(1847) 2월12일 78세로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상관공기골 한벽당 뒤편 최담유허 즉 현 최씨터 주변 돌에 여러 문자가 새겨졌고 인근 도로변 바위에 새긴 연비어약이 창암의 글씨다’ 고 했다.(자료제공자는 이동한으로 진안 임실군수를 역임한 창암 이삼만 4촌의 손자다)
‘한 번 잘못된 정보는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기 까지 너무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 을 생각한다면 그 누구든 어떤 분야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연구 태도가 요망된다’
이 부분은 참으로 좋은 지적이다. 누구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식의 비판은 누구나 삼가야 한다.
앞으로도 새로운 자료를 찾아내어 창암연구에 진일보하여 이 지역이 낳은 명필 창암이삼만이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라면서 마치겠다.이용엽(국사편찬위 사료조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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