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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진화

백제시대의 화장실에 숨은 베일

백제 왕궁터에서 찾은 화장실이 자세히 소개돼 눈길을 끈다.
 문화재청은 지난 19일 발간된 주간소식지 제25호 ‘문화유산e 이야기(김용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소장)’를 통해 익산 왕궁리유적은 지난 70년대에 처음 발굴된 이후 1989년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으로 매년 발굴을 계속, 지금은 약 3분의 2가량이 발굴되면서 점차 베일에 가려진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3년도에 발굴 도중 재미있는 유구가 확인됐다는 것.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백제 당시에 사용되었던 화장실이 발굴, 그동안 잘 알 수 없었던 우리나라 고대 화장실의 실체를 잘 알 수 있었고, 그 내부 퇴적토를 분석하여 백제인들의 식생활과 질병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왕궁성 내부의 서북편 일대는 평평한 대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발굴 결과 금 은 유리 제품 등을 만들던 공방 흔적이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특히 공방의 남쪽에 인접하여 동서방향으로 큰 배수 시설이 있었으며, 화장실은 이 배수로 남쪽 가까이 배수로와 나란히 3기가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 구조는 제일 큰 것이 깊이 약 3미터, 폭 약 1.8미터, 길이 약 10미터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좌우벽에 나무 기둥을 세워 올려 지상에서는 간단한 구조의 화장실 건물로 결구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러한 화장실은 내부에서 채취한 퇴적토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여기서 회충, 편충, 간흡충과 같은 기생충 알을 다량 확인하고, 또 퇴적토에서 당시에 뒤처리용으로 사용된 나무 막대기를 확인함으로써 그 성격을 알 수 있게 됐단다.
 이 화장실은 어깨 부분에 작은 배수로가 있어 오물이 어느 정도 차면 배수로를 통해 오수가 처리되는 즉, 오늘날의 정화조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어 간단한 구조이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고안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이러한 화장실이 발견된 예가 거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우리와 유사한 이러한 화장실 유구가 상당히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후쿠오카에 있는 고로칸유적에서는 8세기경의 화장실이 발견되어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는 부연 설명.
 또한 국내에서는 그동안 부여 관북리 등에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손잡이 달린 개인용 변기가 나온 예가 있기 때문에 왕궁리 화장실은 아마도 공방생활을 하던 당시 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공동 화장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고 결론지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