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전라감영지(구 전북도청 1청사,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4가 1번지)가 통일신라시대에도 전주지역의 중심지였음이 확인되는 기와가 출토돼 관심을 끈다. ‘관(官)’자명 명문와와 ‘전(全)□’자명 명문와가 수습되면서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재)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최완규, 조사단장)가 올 4월까지 갖는 ‘전주 전라감영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적갈색점토층에서 ‘관(官)’자명 명문와와 ‘전(全)□’자명 명문와가 출토됐다. 그러나 일부 남아있는 적갈색점토층에서는 석렬, 부석, 적심 등의 유구를 확인하였으나 유실이 심한 까닭에 전체적인 규모나 성격의 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친 유구를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성과물로 보인다.
고려시대 유구는 흑갈색사질점토층에서 기단석과 초석을 갖춘 3동의 건물지와 부석 시설이 일부 확인됐으며, 조선시대 유구는 건물지 3동으로 적심, 담장, 기단 등이 조사됐다. 고려시대의 건물지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토기편, 청자편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전주시는 2000년 전라감영터를 전라북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하고, 전라감영터에 관아를 정비 복원, 전주의 옛 명성과 정체성을 되찾고 구도심을 활성화하고자 사업을 추진해왔다.
때문에 전라감영지 복원에 앞서 발굴조사를 실시, 건물지 유구를 파악하여 복원에 앞서 학술 자료로 활용함은 물로 정비 복원 자료로 삼고자 (재)전북문화재연구원에 조사를 의뢰, 2006년 12월부터 4개월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재)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최완규)는 15일 오후 2시 전라감영 발굴조사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갖는다.
(재)전북문화재연구원측은 “‘관(官)’자명 명문와와 ‘전(全)□’자명 명문와가 출토되어 전라감영지가 통일신라시대에도 이 지역의 중심지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발굴조사 결과, 전라감영지의 상당 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노출된 것은 전라북도 도청 조성시 콘크리트 지하구조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거나 교란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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