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의 진화

새만금이 준 최대 선물은 고려청자(?)

 
  새만금특별법 제정이 불투명한 가운데 새만금 간척 사업이 가져다준 최대의 선물은 비안도 고려청자라는 주장이 소개돼 눈길을 끈다.
 지난 3월 5일 발간한 문화재청 주간 소식지 23호는 ‘문화유산e이야기’를 통해 새만금 간척사업은 개발과 환경보존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하였지만, 조상들이 뱃길을 따라 고려청자를 부안에서 생산, 개경으로 이동하다 침몰하여 영원히 사려졌을지 모를 해양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선물했다고 소개했다.
 이 기사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구워낸 도자기를 싣고 개경의 귀족이나 관청에 납품하고 두둑한 돈 주머니를 차고서 귀향하는 바람을 갖고 멀고 험한 뱃길을 떠났던 사내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다.’며 ‘고향에 남아 이들을 기다리던 아낙네들의 서글픈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고려청자의 노출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갯벌층이 4-5m 정도 씻겨 나가면서 묻혀 있던 유물이 노출되었다고 소개하며, 이는 노출된 유물 상태와 일부 묻힌 유물의 상태를 보아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물길이 좁아지면서 골을 형성하고 갯벌층이 씻겨나가면서 8백 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려청자의 속살을 드러내게 된 것이란다.
 때문에 유물은 씻겨 나간 골층에서 주로 매장되어 있었으며, 매장 범위가 광범위하여 수중발굴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는 후문이다.
 한편 비안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 해역은 1970년대 이래, 해저 유물의 발견 신고가 20여건 이상이 될 정도로 많은 문화재 매장 해역이기도 하다. 최근 십이동파도, 야미도를 포함, 주변 해역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근해에서 2002년 4월 어부의 신고로, 비안도 북동 방향 1km 해역에 다량의 고려청자가 매몰된 사실이 확인된 것.
 이에 종합적인 발굴을 실시(2002-2003년), 1차 조사는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해군(해난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으며, 2.3.4.5차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주축이 되어  실시했다. 조사 결과, 신고 유물을 포함 3천1백점이 넘는 고려청자를 인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차 조사는 1차 조사 지역의 외곽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 유물과 선체를 조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수중 카메라 및 비디오 촬영을 실시한 후 해저 표면에 노출된 유물을 수습하고, 개펄층 5-10cm에 묻혀 있던 유물은 대나무로 만든 칼을 사용, 개펄을 제거하면서 선체와 함께 청자상감국화문잔, 청자대접 등 5백33점을 인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양된 유물의 기종은 잔, 대접, 접시, 뚜껑 등이며, 문양은 양각 및 음각으로 표현된 연판문, 앵무문, 목단문 등이다.
 비안도 해저 인양 도자기의 제작 연대는 12세기 후기에서 13세기 초기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이들 청자는 인근의 부안 유천리 도요지 제7구역 27.28호에서 출토된 것들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