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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우반십경(愚磻十景)'과 '동상헌팔경(東湘軒八景)'

'우반십경(愚磻十景)'과 '동상헌팔경(東湘軒八景)'


'우반십경(愚磻十景)'

우반동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은 툭 트여 있어 들고 나는 조수 간만을 볼 수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길지로 손꼽힌다.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은 공주목사를 지내다가 파직된 후 우반동으로 들어갔다. 혹자는 선계 폭포 근처의 정사암에 머물며 '홍길동전'을 집필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우반동 근처에는 '홍길동전'에 나오는 활빈당의 무대이자 변산 도적의 소굴로 추정되는 굴바위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 양반 신분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민중을 중시하며, 신분과 상관없이 재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주장하던 진정한 혁명가 허균은 역모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허균에 이어 우반동으로 들어간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은 32세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20여 년을 머물며 이곳을 사상의 거처로 삼았다. 유형원은 집안의 사패지(賜牌地)인 우반동 지역에 거주하며 조선 토지제, 신분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정책을 제시하며 부민(富民), 부국(富國)을 꿈꿨다. 유형원의 개혁안이 수록된 '반계수록(磻溪隨錄)'은 유형원이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높은 평가를 받으며 영조(英祖)에 의해 수용되고 유포되어 실학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반계 서당의 툇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세속을 떠나 단순히 은둔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모순된 세상에 맞서 싸운 유형원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국가를 바로 세우고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를 꿈꾼 선진들의 넋은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 쉬며 우리들에게 반성과 실천의 행동을 촉구하는 듯하다. 

'우반십경(愚磻十景)'은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옛 우반동 지역의 빼어난 경승지를 말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허진동(許震童, 1525~1610)의 유고집에 실려 있는 우반 십경(愚磻十景)을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이 시로 읊어 우반동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문헌에 기록된 우반동의 풍경

조선 시대에 작성된 많은 문헌에서 우반동의 수려한 경치를 소개한 글들을 찾을 수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1585~1659)은 “변산의 남쪽에 우반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아름다운 포구와 산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고 예찬했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쓴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도 친구와 함께 우반동에 도착하여 정사암(우반동 골짜기에 있던 정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본 우반동의 아름다운 풍광을 '중수 정사암기(重修靜思菴記)'에 기술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엔 “변산의 동남쪽에 있는 우반동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가운데 평평한 들판이 있다. 소나무와 회나무가 온 산에 가득하고 봄마다 복사꽃이 만발한다”고 나와 있다.

우반십경

줄포만을 끼고 변산의 수려한 산세로 둘러싸인 우반동(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은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수많은 당대 명현들이 머물던 곳이다. 
조선시대 시인들과 묵객들이 우반동의 경치를 감상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글로 남긴 사례가 많다. 그중에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허진동은 그의 서재 풍뢰당에 머물며 우반동의 빼어난 경치에 대해 ‘우반 십경’을 지었고, 사암 박순이 시를 지어 부쳤다. 
'우반십경'은 우반동의 빼어난 경치와 그 주위에 있던 사포(沙浦)와 검모포(黔毛浦), 죽도(竹島)와 이헌(梨峴)의 경치를 묶어 말한다.
'우반십경'은 '사진가박(沙津賈舶)', '죽서어등(竹嶼漁燈)', '검모모각(黔毛暮角)', '수락신종(水落晨鐘)', '선계청폭(仙溪晴瀑)', '이현장송(梨峴長松)', '황암방고(黃巖訪古)', '창굴심승(蒼窟尋僧)', '심원관록(深源觀鹿)', '신전타어(神箭打魚)'이다.
'사진가박'은 사포(현 고창군 흥덕면 후포)를 분주히 오가는 장삿배, '죽서어등'은 죽도의 고기잡이 등불, '검모모각'은 검모포진 수군들의 저물녘의 호각 소리, '수락신종'은 수락(절 이름으로 추정)의 새벽 종소리, '선계청폭'은 선계(선계폭포)의 맑은 소리와 은하수 같은 풍경, '이현장송'은 이현(우동리 부근의 지명으로 추정)의 아름드리 노송과 구름이 어우러진 모습, '황암방고'는 황암의 고색창연한 고적, '창굴심승'은 창굴암(사자동 실상사 남쪽에 있던 암자)의 그윽한 선경과 고승, '심원관록'은 심원에서 노니는 사슴, '신전타어'는 곰소만의 어살 풍경을 말한다.

'검모모각(黔毛暮角)', 검모 저물녘 호각소리

지는 해 산 너머로 그림자 거두고
화각 소리 옛날의 수자리에서 날려오네
그 소리 흩어져 들어오며 어둠 재촉하고
머물던 구름 다 돌아가 봉래산을 감싸네

*검모/검모진, 지금의 진서면 진서리 구진(곰소 옆). 옛날에 수군(水軍)의 진(鎭)이 있었음

'선계청폭(仙溪晴瀑)', 우반동 선계폭포

한결같은 맑은 소리 구름 끝에 쏟아지고
번쩍이는 푸른 벼랑에 모인 물 쏘는 듯 하네.
햐얀 깁 같은 물 은하수와 견줄 만하고
신령스런 맑은 샘 있는 고 누가 다 찾으리.

*선계/우동리에서 바디재 가는 길에 있는 선계폭포

'사진가박(沙津賈舶)', 사진의 장삿배  

조각배로 해협의 조수를 띠고 와서
몸소 고래 놀음에 멀리 이익 챙겨 가네
평지에서도 오히려 남을 빠지게 하니
청컨대 그대는 다시 초청하지 마오

*사진-상선이 정박하던 곳.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사포리

'죽서어등(竹嶼漁燈)', 죽도의 고기잡이 등불  
      
강은 어두어 외로운 섬이 어디 있는지
다만 먼 곳의 고기잡는 등불만 보이네
은하수 희미해질 때 찬 조수물 빠지니
몇마리 물고기 든 대바구니 메고 돌아오네

*죽서/곰소 앞바다에 있는 섬. 지금은 고창군 죽도면 죽도라고 부름.

'수락신종(水落晨鐘)', 수락의 새벽종  
        
도인은 잠이 없어 절간에 앉았으니
불꺼진 향불의 재에 이슬 기운 써늘하네
은은한 경쇠소리 구름 밖에 사라지니
매양 새벽 달빛에 마을 닭소리 화답하는 듯

*수락/절 이름인 듯 함.

'이현장송(梨峴長松)', 이현의 장송    
                
나라에서 기른 명산 세월이 오래되니
구름에 이어지는 아름들이 노송 푸르고
근래에 도끼로 많이 솎아내어
큰 나무 거꾸러지니 동량재목 줄어졌네

*이현/ 우동리 근방의 지명이라고 함.

'황암방고(黃巖訪古)', 황암에서 고적을 찾다  

바둑 한 판 끝난 것 석실에 남아 있고
깊은 산골의 봉황새 암벽에서 늙어 가네
아쉽구나 구지기를 볼 수 없으니
신선의 발자취 찾으려해도 세상 이미 희미하네

'창굴심승(蒼窟尋僧)', 창굴에서 중을 찾다  

한가하여 그윽한 선경 홀로 찾아가니
서쪽 산을 따라 동쪽 숲에 이르게 되었네
절간의 주방과 대밭이 서늘하게 화합하니
불교의 공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상쾌하네

*창굴/사자동 실상사 남쪽에 있었던 암자

'심원관록(深源觀鹿)', 심원에서 사슴을 구경하다  

풍성한 풀과 맑은 물 마시며 지내니
삼삼히 떼를 지어 구름같이 보이네
이들 나와 함께 할 것임을 알았으니
누가 산지기를 위하여 사슴몰이 하여주리

'신전타어(神箭打魚)', 신전에서 물고기를 잡다  
                
누가 산나무 엮어 강물 둘렀는가
조수 빠지자 많은 물고기 한꺼번에 빠지네
비웃노라 도주공의 물고기 기르는 수고를
앉아 있으면 창해가 자연히 물고기 몰아오네                                
<동상선생문집(허진동 원저, 유풍연 역)>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반 십경'을 감상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우반 십경에는 단순히 빼어난 경치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어 시대가 변하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반동의 경치를 보고 감탄하던 여러 선현들의 기록에 비해 현재는 그 절경을 잃은 듯하다. 
 난잡한 전봇대, 우동 저수지 조성, 버드재 도로 등 근대화 과정 속에 무분별한 난개발 때문이다.
우반동이 가진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과 경관 복원을 통해 새로운 생태 문화 마을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동상헌팔경(東湘軒八景)

해옹 김홍원(海翁 金弘遠)의 이름은 '동상집
(東湘集)'에 보이지 않으나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동상정에 자주 출입했던 것 같다.
 그가 동상 일대 여덟 곳의 경승을 읊은 '동상헌팔경(東湘軒八景)'이 그의 '해옹집(海翁集)'에 실려 있다.
사포(沙津,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 후포)로 돌아가는 배, 검모포의 호각소리, 두승산의 해오름, 선운(고창 선운산)의 낙조, 십리에 걸쳐 있는 줄포만, 우반동을 흐르는 장천 등 그 당시 우반동 동상 일대의 풍경이 선하게 잘 그려져 있다.

사포귀주(沙浦歸舟)
검모취각(黔毛吹角)
두승조양(斗升朝陽)
선운낙조(禪雲落照)
십리평호(十里平湖)
일대장천(一帶長川)
후원장송(後園蒼松)
전계총죽(前階叢竹)

하지만 이같은 '동상헌팔경'이 어느 해에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