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내 모습에서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 에 나오는 심술궂고 구두쇠인 주인공 윤직원이 떠올랐다.
윤직원은 열다섯살인 기녀 춘심이를 애첩으로 두고 있는 탐욕스러운 ‘늙은이’다. 그들의 대화에 탕수육이 등장한다. 당연히 그 시절에 비싸고 좋은 요리였을 탕수육을 어린 애첩이 시켜달라고 하자 구두쇠 주인공은 이죽거린다.
“너 배 안 고푸냐?”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두릿두릿합니다.
“아뇨, 왜요?”
“배고푸다머넌 우동 한그릇 사줄라고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래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 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이십오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사십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그릇 탕수육 한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우동 한 그릇 사주는 것으로 퉁 치려던 심산이었으나 탕수육을 먹겠다고 하자 ‘생 부랑당’이라고 욕하는 영감의 심보. 몇천원 더 먹었다고 “네가 재벌집 딸이냐”하는 내 심보가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였다.
채만식 작가가 1938년 연재했던 '태평천하'에 탕수육과 우동이 등장할 정도로 짬뽕보다 유래가 오래된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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