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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南原 實相寺 秀澈和尙塔碑)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南原 實相寺 秀澈和尙塔碑) 보물

 

(篆額) 楞伽寶月塔記

 

有唐新羅國良州深源寺故國師秀澈和尙楞伽寶月靈塔碑銘幷序

入朝奉賀. 賀遷幸東都, 使門下弟子比丘飮光.

朝請郞檢校右衛將軍司宮臺▨▨▨院使等同正員

 

語曰. 圖王不成, 其心猶覇夫. 如是衆生得未得, 其次爲, 偉而能師. 德耀乎! 君子因孫隷, ▨▨, 不其偉歟. 良足稱也. 務希夷志, 求無上覺, 豈志大宇宙, 勇邁終古者乎.

昔菩薩帝世, 大達磨傳有禪. 佛法大▨▨, ▨▨▨▨. 龜氏所宗正, 鳥從知非, 寒蜩得便, 萬肅大君, 難辭, 弟子何知於是乎. , 實從尙, ▨▨▨跡之, 何强敍忘▨▨. 夫大師其人, 德可稱仙.

曾祖位蘇判, 族峻眞骨. 慶餘法身. 祖日新, 考修靜, 所欲不仕. 世傳嘉猷, 家主. 有避世保全之淸, ▨▨擧大樹, 善其入道也.

幼亡恃怙, 旋悟幻夢. 瞥聞, 有緣視佛無滯. 年餘志學, 學佛是圖, 落采於緣虛律師, 經于天宗大德. 自爾希心, 鳥如也, 意掀▨▨, 飜翅▨▨.

時屬▨▨▨, 應召來儀都邑. 拜下禮也, 適我願兮, 請爲資, 許之. 乃問若何處來. 答曰爾性何. 旣栖神妙門, ▨▨仙境. ▨▨雪岳, 雲岑, 詣實相禪庭. 國師賜, 之寄, 宿緣所追, 肯搆西堂, ▨▨▨.

尋以▨▨, 出至東原京福泉寺, 受具于潤法大德. 尋得易極, , 旣釋理之術, ▨▨居處有繇. 是禮窣堵波于名山勝地, ▨▨訶是乎. , 雅於禪苑揚蕤, 集以雜花騰馥. ▨▨▨▨▨, 築于知異山知實寺, 覽諸章疏, 無有孑遺. 是生之知義, 日昇覺者之闡宗, 其力也, 還化衆生. 歟其利佛也, 導衆以寂, 無言成蹊. 有若釋門之英, 正法大德弘, 州僧正順, 宗子禪師▨▨, 而降悉坐潛天.

咸通, 贈太師景文大王, 以在山別赴, 降趺急從. 一日八角堂, 請敎禪同異, 對曰, 深宮自有千迷道, ▨▨終無. 迺張, 如晝. 王心悅悟, 爾先雲還, 長從, 出岫相見, 竝加改. 時惠成大王, 爲家德損, 於克諧照. ▨▨益發, . 自贈太傅獻康大王, ▨▨鴻國, 煩飛鵠書. 欻乃▨▨▨鳳儀之舞, ▨▨▨▨▨戎家, ▨▨法祐, 能隆下, 不爽然來思. 因貢▨▨, 外護之使, 行達辯, 慶順滋焉. ▨▨▨▨▨膺籙▨▨.

國師, 遽撤葷腥, 因蠲痛惱, 復忘筌斯在. 是時前國統釋惠威大法師, 法大德, 比丘▨▨▨▨▨愼孚, 解行雙高, 道俗俱從. 無心合契, 道面盡▨▨. 王孫爲師, 具僚列賀禮. 無遠道益隆焉, 關君民也. 師叵利, 則句如無別, 況師高尙者, ▨▨步驟之.

是故我太尉讓王, 倦彼垂衣, 棄如脫屣. 仍從剪咎, 抑煩囂, ▨▨, 何陋之鄕. ▨▨▨得非染, 又玄之道, 終粹淸閑. 其實大事因緣, 素有師保無疵. 故太宗文武聖皇帝詔曰, 可著令置三師之位, ▨▨▨. 我根儒幹釋, 鎔夏鑄夷. 其方本仁, 易以道御. 於是其心已謂鏞難遠擊, 鍾好近, 欲處師寰內, 唯不逮.

特敎勅端儀長翁主深源山寺, 請居禪師, 廣濟迷津. 故時人, 不名稱瑩, 瑩其心地, 豈瑩之謂耶. 居無何, 以玆密邇都城, 泉石淸宮, ▨▨▨. 弟子粹忍義光, 各居南岳北埜, , 勝地絶倫. 法雲爲隨境, 家有以是名. 撰十地境, 壓三山者, 應其感應也. ▨▨▨, 舶不, 自淨刀. ▨▨, 能除, 自餘, 秘說目擊, 倚是尤加鞭後者. 大師無言近世心學, ▨▨無爲亂神之資. 是無交, 故爾稽古, 宜遠有根. 金言, ▨▨▨賞惑月, 經力福惠二嚴, 母氏必生天矣.

其滅渡也, 景福二年, 蕤賓四日. 召其徒曰, 死將至矣, 吾欲行焉. 諸子勉旃, 宜游佛庭. 風狂雨, 浮雲坐聚散, 須知朗月行西東. 言已化去, 享齡七十九, 歷夏五十八. 其始也, 飮光媲芻, 其終也, . 異矣哉. 明夏幷旬於靑蓮寶宅. 聞俗緣大歸, 住瑩原, 追感遺者, 灑泣慷慨.

讓王顧不憗遺, 哭諸門外. 以傳東宮官奉食郎王輅, 飛敎慰問. 四方之瞻仰, 覬萬壽之遐長, 而人之云亡, 吾將安倣. ▨▨▨懷矣. 可擇焉, ▨▨水積魚歸, 便至林傾鳥散. 承遺訓用報.

贈諡曰秀澈, 塔號楞伽寶月. 其後齋營八會, 禮備十旬. 若茗若香, 悉從王府, 莫不均濡衆渴, 遠颺德馨, 尊師之道, ▨▨▨▨. 直相出相門, 門人款休, 逐日踰海. 故能雲眼界霞綻. 毫端狀龍聖龜神示, 千秋万春. 臣也跪伏, 銘追▨▨▨,

詞曰

東仁所植 西敎是則

縷褐之飾 布衣之極

一枚幻軀 六箇兇賊

他或▨▨ 師能

謀重慧戈 用成學

德水濯 妖塵靜

祖西堂藏 父南岳陟

化衆十方 爲師一國

言沃王心 感融佛力

克修善逝 雅訓扇

致捨大寶 賴▨▨

歷數古今 ▨▨▨▨

 

(陰記)

▨▨二年龍集乙丑十月之望建

康熙五十三年甲午四月日重建

 

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南原 實相寺 秀澈和尙塔碑)

소재지/출토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실상사 (입석리)

연대

905(신라 효공왕 9)

크기

166.7× 112.1

서체 및 재질

해서체

주제분류

통일신라(統一新羅)|문화문화재금석문碑文|비문

역주자

박광연

찬자 / 서자 / 각자

미상(未詳) / 미상(未詳) / 미상(未詳)(전액)

능가보월탑기(楞伽寶月塔記)

 

유당(有唐) 신라국(新羅國) 양주(良州)001 심원사(深源寺)002의 고() 국사(國師) 수철화상(秀澈和尙) 능가보월영탑비명(楞伽寶月靈塔碑銘) 병서(幷序)

당에 입조하여 하례(賀禮)를 받들었다. 동도(東都)로 행차하여 문하제자 비구(比丘) 음광(飮光)에게 모으게 하였다.

조청랑(朝請郞)003 검교우위장군(檢校右衛將軍)004 사궁대(司宮臺)005 ▨▨▨원사(院使) 등 동정원(同正員)006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왕도를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은 여전히 패부(覇夫)와 같도다.”007 이와 같이 중생이 깨닫지 못한 것을 터득하고, 그 다음으로 하여 훌륭하게 스승[붓다]008이 될 수 있다. 덕이 빛나도다. 군자는 후손으로 인하여 하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칭찬하기 충분하다. 드문 것에 힘쓰고 뜻을 편안히 하여 위없는 깨달음[無上覺]을 추구하니 어찌 대우주(大宇宙)에 뜻을 두고서 용맹하게 노력하기를 영원히 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옛날 보살황제[菩薩帝]009의 시대에 위대한 달마대사가 전한 것 가운데 선()이 있다. 부처의 말씀은 크고 하여 세속에서는 쉽게 할 수 없다.구씨(龜氏)010가 종정(宗正)으로 삼은 바는 새가 뒤따르는 것011이 아님을 알고 가을 매미[寒蜩]012 같은 신하가편안함을 얻는 것이어서 만숙대군(萬肅大君)도 말하기 어려워함이 있는데, 제자가 어찌 이에 대해 알겠는가. 구하고, 열매는 높은 것을 쫓고, 그것을 따라가니, 어찌 억지로 서술하겠는가. 대저 대사가 그러한 분이니, 대사의덕은 신선이라 칭찬할 수 있다.

대사의증조부는 위계가 소판(蘇判)013까지 올랐고, 족망이 진골(眞骨) 가운데서도 높았다. 선대에 쌓은 선의 은택014이 후손에게까지 미쳤다. 할아버지 일신(日新), 아버지 수정(修靜)은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대대로 좋은 법도015를 전하여 집안이 성(). 세상을 피해 온전함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어서 큰 나무를 들어 ()에 들어감을 좋게 여겼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서 허망한 꿈과 같음을 돌연 깨달았다. 별안간 눈먼거북이 소리를 듣기도 하고, 부처를 만날 인연이 있으면 지체하지 않았다. 나이 15[志學]016 남짓 되어 불교를 배울 것을 도모하여 연허(緣虛) 율사017에게서 삭발하였고, 천종(天宗)018 대덕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때부터 사모하는 마음이 새와 같아서 마음속으로 날개짓하며 .

당시 마침 사께서 흥덕왕의부름에 응하여 도읍(都邑)으로 오셔서 절하고 하례하였다. 자신이 원하던 것에 맞아서 제자가 될 것을 청하자 홍척이허락하였다. 이에 홍척이 대사에게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대사가대답하였다. “그대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대사는이미 정신을 오묘한 문[妙門]에 두었고, 신선의 경계[仙境]. 설악산에 홀로 운잠(雲岑)으로 실상선정(實相禪庭)에 이르렀다.019 홍척국사가 내리시며 도가 깃드는 것은 지난 생에 맺은 인연[宿緣]을 좇나니 서당(西堂)020을 잘 계승하여021 할 뿐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 동원경(東原京)022 복천사(福泉寺)023에 이르러 윤법대덕(潤法大德)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머지 않아 역극(易極)을 찾아 바다 절벽에 이미 이치를 해석하는 방법 거처가 있겠는가. 명산의 수승(殊勝)한 땅에서 탑[窣堵波]에 예배하였으니, 아마도 마하(摩訶)이것일 것이다. 을 깨끗이 하여 선원(禪苑)024의 꽃향기를 드날렸고, 잡화(雜花)025의 향기를 모았다. 마침내 지리산 지실사(知實寺)를 쌓으시고 여러 장소(章疏)들을 남김없이 보았다. 대사는나면서부터 부처의 가르침[]을 알았고, 날마다 부처[覺者]가 천명한 종지(宗旨)에 올라타서 그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였다. 부처를 이롭게 하기 보다는 고요함으로 중생을 이끌어 말없이 지름길을 이루었다. 문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이들은 정법대덕(正法大德)026 (), () (康州)027 승정(僧正)028 (), 종자선사(宗子禪師) 같은 이들로, 이후에 모두 좌선하며 하늘에 잠겼다[潛天].

함통(咸通) 년에 태사(太師)로 추증된029 경문대왕(景文大王, 재위 861~875)께서 대사가산에 있는데 따로 부르시자, 산에서 내려와 급히 국왕의 명을따랐다. 하루는 경문왕이팔각당(八角堂)에서 교()와 선()의 같고 다름에 대해 설법해줄 것을청하자 답하였다. “깊은 궁궐에는 본래부터 1,000개의 미로가 있듯이 끝내 없습니다.” 이에 교와선에 대해 자세하게 펼쳐서 단계별로 그림을 그리듯 하였다. 왕이 마음속으로 기쁘게 깨닫고 구름보다 앞서 돌아와 산에서 나와 만나서 아울러 더해주고 고쳐주었다. 이때 혜성대왕(惠成大王)030이 왕가(王家)를 위해 자신의덕을 덜어내어 궁극에는 화합을 도모하였다. 더욱 일으키고, 수레 길을 태부(太傅)로 추증된031 헌강대왕(獻康大王, 재위 875~886) 때부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수철화상을 초빙하는서신032을 보냈다. 재빨리 봉황이 일어나 춤을 추고,033 찬란하게 찾아오지 않았다.034 바친 것으로 인하여 밖에서 호위하는 사신이 .

국사는 매운 맛의 채소나 비린내 나는 음식을 갑자기 멀리하고, 아프고 괴로운 것을 없애고, 다시 방편을 잊음이 여기에 있었다. 이때 전() 국통(國統)035 () 혜위(惠威) 대법사(大法師), () 대덕, 비구(比丘) 036 신부(愼孚)가 해()와 행()이 모두 높아 출가자, 재가자가 모두 따랐다. 무심하게 계합(契合)하니 도면(道面)이 모두 . 왕손(王孫)이 스승으로 삼았고, 모든 관료가 줄지어 하례하였다. 멀든 가깝든도가 더욱 융성하였고, 임금이든 백성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국사는 이롭게 할 수 없으면 구차하게 구별함이 없었다. 하물며 스님처럼 고상한 분은 본디 걸어가거나 달려갔다.

그러므로 우리 태위(太尉) 양왕(讓王)037께서 나라를 통치하는 데 싫증나[倦彼垂衣]038 신발을 벗는 것처럼 포기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허물을 없애고 번잡하고 시끄러움을 누르는 것이 비록 어찌 누추한 땅이라 하겠는가. 본래 물들지 아니하고, 또 현묘한 도는 끝내 순수하여 맑고 한가하였다. 그것은 실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039이니, 본디 국왕의스승040으로 삼는 데 허물이 없었다. 옛날 태종(太宗) 문무성황제(文武聖皇帝)가 조칙을 내려, “삼사(三師)041의 지위를 둠을 분명히 한다라고 하였으니 . 우리는 유교에 뿌리를 두고 불교를 줄기로 하였으며, 중화를 거푸집으로 하여 동이(東夷)를 주조하였다. 그 방향이 본래 인방(仁方)이어서 도()로 다스리기 쉽다. 마음으로 이미 큰 종은 치는 것을 멀리하기 어렵고, 작은 종은 가까이하기 좋다라고 생각하여 국사를 궁궐 안에 머물게 하고자 하였으나, 머물지 않았다.

특별히 단의장옹주(端儀長翁主)042에게 교서를 내려 심원산사(深源山寺)에 선사께서 머무시도록 요청하여 널리 미혹한 중생을 제도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이 밝다[]고 부르지 않았지만, 마음 바탕을 밝혀주므로 어찌 밝다[]고 하지 않겠는가. 얼마 안 되어 이곳이 도성(都城)과 너무 가깝다고 하여 산과 물이 맑은 곳에서 . 제자 수인(粹忍), 의광(義光)이 각각 남악(南岳)과 북야(北埜)에 거처하였는데, 비교할 수 없는 수승(殊勝)한 곳이었다. 불법의 구름[法雲]이 경계를 이루었으므로, 이것[법운]으로 이름을 삼는 집도 있었다. 십지경(十地境)043을 찬술하여 삼산(三山)을 제압한 것은 그 감응에 응한 것이다. 비설(秘說)을 목격하였으니, 더욱 뒤에 오는 이들에게 채찍질을 더하는 것이었다. 대사는 근세의 마음 공부에 대해 말이 없으셨고, 난신(亂神)을 도와주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이는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옛 일을 살펴서 마땅히 근원이 되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 마침내 부처의 말씀[金言]힘을 다해 복덕(福德)과 지혜가 엄정하니, 어머니는 반드시 하늘에 태어나실 것이다.

멸도(滅渡)하신 것은 경복(景福)044 2(893, 진성왕 7) 54일이다. 문도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죽음이 장차 이르려 하니 나는 가고자 하노라. 너희는 힘써 노력하여 마땅히 부처의 뜰에서 노닐지어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비가 뜬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지니, 모름지기 밝은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을 마치고서 돌아가시니, 향년이 79세이고, 법랍[歷夏]58세였다. 처음은 음광(飮光) 비구(媲芻)였고, 마지막은 . 기이하도다. 푸른 연꽃 핀 보배의 집에서 세속의 인연들이 선사께서돌아가심을 듣고 형원사(瑩原寺)에 머물렀는데, 추모하는 마음이 남은 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선양(禪讓)을 받은 왕[진성왕]께서 하늘이 훌륭한 이를 남겨두지 않음을 돌아보면서 문밖에서 곡하였다. 동궁관(東宮官) 봉식랑(奉食郞)045 왕로(王輅)에게 전하여 교서를 보내서 위문하였다. 사방의 우러러봄을 받고 만년을 살기를 바랐지만, 사람은 죽는다고 하니 우리는 장차 누구를 본받을 것인가. 이제 품었다. 택할 수 있으니 물이 쌓이자 물고기가 되돌아가며 문득 숲이 기울자 새들이 흩어짐에 이르렀다. 유훈을 받들어

시호를 추증하여 수철(秀澈)이라 하였고, 탑호는 능가보월(楞伽寶月)이다. 그 뒤에 여덟 번의 재()를 베풀고 100일의 예를 갖추었다. 향 같은 것들이

두 왕부(王府)에서 나와 중생의 갈증을 고루 적시지 않음이 없었고, 멀리까지 덕의 향기가 퍼져 스승을 높이는 도가 . 다만 재상은 재상의 집에서 나오는 법, 문인 관휴(款休)는 해를 좇아 바다를 건넜다. 그러므로 능히 구름은 눈[]의 대상인 서리꽃[霞綻]. 붓끝으로 형상화한 용과 성스러운 거북이의 신령한 계시가 천년 만년하도다. 신이 무릎 꿇고 엎드려 ()을 지어 추모한다.

 

()는 다음과 같다.

동방의 인()이 심어진 곳에 서방의 가르침[불교]이 법칙이 되니

비단 갈옷[縷褐]으로 꾸며 베옷[布衣]이 남아 있지 않네

한 구의 허상의 몸[幻軀]에 여섯 개의 흉악한 적이 있어

남들은 간혹 지만 국사는 할 수 있도다

선사의꾀에 지혜의 창을 보태 배움을 이루게 하였고,

덕의 물로 씻어서 요망한 속세가 깨끗해졌다네

할아버지는 서당(西堂) 지장(地藏), 아버지는 남악(南岳) 홍척(洪陟)으로

시방(十方)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한 나라에서 스승이 되어

말씀으로 왕의 마음을 비옥하게 하고 감응으로 부처의 힘을 화합하였네

부처의 말씀을 잘 닦아서

큰 보배를 버려두고 에 의뢰하네

예나 지금을 헤아려

 

(음기)

▨▨046 2년 용집(龍集)047 을축(乙丑) 10월 보름에 세우다.

강희(康熙) 53년 갑오(甲午)(1714) 4월 일에 중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