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mm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웃 제실'의 보가 터져 노은과 운전 마을이 물에 잠기고 구 장터에 있는 상가 대부분의 집들이 물속에 드는 큰 수해를 입었다. 담을 무너뜨리고 들이닥친 물로 집들은 구들이 내려앉고 동네 사람들은 졸지에 인근의 산외초등학교에서 숙식을 해야 하는 수재민 신세가 되어버렸다.
수마가 내 집을 덮치는 시간 나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우용, 기주, 영상 등 고우 몇 사람과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척곡 저수지는 1967년 척곡천의 협곡을 막아 조성한 비교적 큰 규모의 제방으로 웃 제실의 천수답을 양답으로 바꾼 효자 보였고 1973년 8월에 내린 큰 비로 산외 장터를 쓸어버린 이른바 73수해의 악몽 이후 한 번도 범람하지 않은 수위조절의 일등공신이었다.
우리 집이 평사낙안의 집터를 잡고 사랑채 금사정과 정침 계산당에 상량을 올린 것이 1919년 기미 음력 3월이었으니 햇수로는 93년이요 백년 고택이라 불러 어색하지 않은 연륜을 이고 4대가 살아온 집이다.
조부님 계산 임혁규공은 27세의 젊음으로 증조부이신 금사공 병욱을 모시고 이 집을 신축하여 전남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 성지에서 이사 오셨는데 당시 참깨 2천섬의 재력이셨다고 한다. 극심한 한발로 굶어 죽는 이가 생기고 부황이 든 사람들의 참상을 보시고 척곡천의 하류에 둑을 쌓고 물길을 잡는 공사를 일으켜 산태미만 들고 섰어도 임금조로 양식을 나눠주니 굶는 이가 없게 되었고 물길이 잡혀 노은 운전 구 장터가 침수의 피해로부터 벗어났으니 그 때 신축한 뚝을 불러 덕보라 부르는 이유가 그에 연유한 것이다.
1973년 8월 3일 갑작스런 폭우로 척곡천을 덮칠 때 덕보가 씻겨나가는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사투를 벌였던 기억과 함께 2011년 8월 폭우로 척곡의 보가 터지고 마을을 덮친 천재는 잊지 못할 공포로 남을 것이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나의 애견 백구가 익사할 위기였으나 큰 항아리 위에 올라가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백구는 진돗개로 숙부님을 위해 지은 송재기념관의 개관을 축하한다며 윤신근 박사가 보내준 순종이었다. 지난 7월 하순 어느 날 새벽에 뒷산을 오르는데 이 날도 백구가 신이 나서 앞장을 섰다. 할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 백구의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순식간에 묘봉을 타고 올라가는 것 아닌가. "백구야! 네 이놈 어디를 올라가는가, 당장 내려오너라". 그러나 나의 고함에도 끄덕도 하지 않는 백구였다. 잠시 후 "깨갱"하는 소리와 함께 백구는 구르듯 묘봉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앗차" 백구가 땅벌 집을 건든 것을 알고 나는 크게 놀랐다. 만일 백구의 선제공격 없이 내가 서툰 낫을 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백구가 나를 살린 것이다.
나는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개흙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김황식 총리가 내려와 수해 현장을 둘러봤다. 정세균 의원이 광주 출신 예결위원들과 함께 와서 마을을 둘러보고 우리 집까지 들러 주었다. 그러나 화불단행이라던가. 일을 거들던 내가 허리를 삐긋한 것이 걷기조차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응급가료를 받고 다음 날 큰 아이의 차에 실려 귀경했다. 황황히 떠나는 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구, 백구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이틀 후였다. 깜쪽같이 줄을 끊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병상에 누운 채 일주일이 흐르는 동안 수해현장은 특별 재해지역으로 지정 선포되었으나 담도 없는 내 집은 백구마저 사라져 외롭고 쓸쓸히 보일 것만 같았다.
나는 창 밖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돌아오너라 백구야."
*수필가 임광순 씨는 「나는 졸이로소이다」등의 저서가 있다.( 전북일보 웹승인 2011-09-02 23:02 수정 2011-09-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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