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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62> 28개의 별자리를 활용해 만든 문화유산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62> 28개의 별자리를 활용해 만든 문화유산
시간은 공간과 달리 형체가 없다. 따라서 옛날에는 하루 24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의 시간이란 왕이 알려주는 것이었다. ‘관상수시(觀象授時)’라 하여 옛날 제왕들에게는 하늘의 모양을 살펴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임무 중의 하나였다.
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명해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어 이를 통해 시간을 재서 종을 쳐 백성에게 알렸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종루(현재 종각)를 짓고 하루 두 번 종을 쳤다. 그것을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라고 한다. 
인정이란 저녁에 성문을 닫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8번의 종을 치는 것이고, 파루는 새벽에 성문을 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33번의 종을 치는 것이다. 28번의 종소리는 밤하늘에 자리한 28개의 별자리에 알려 백성이 편안한 밤을 맞이하라는 뜻이었으며, 33번은 불교의 33천(天)에 하루를 알리는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또,새해가 되면 달력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달과 날짜를 알려주었다. 1년 주기의 농사일에 참고하기 위해 양력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절기를 정하고 달력에 표시했다. 옛사람들은 시간이란 흐르는 것과 동시에 끝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여겼다. 천체의 운동 주기를 일 년으로 하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주기를 한 달로 하였으며, 낮과 밤이 바뀌는 지구의 자전주기를 하루로 삼았다.
그렇다면 인정의 의미인 밤하늘 28개 별자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달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27일 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구에서 관찰했을 때 태양이 ‘황도12궁(黃道十二宮)’을 따라 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달도 별자리 위를 움직인다. 이 길을 ‘백도(白道)’라고 한다.
달의 길인 백도와 태양의 길인 황도와의 차이는 약 5°정도 경사각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달이 하늘의 백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약 28일 동안에 달은 초승달, 반달, 보름달, 반달, 그믐달로 변해간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달이 가는 길을 28등분하여 이 시간을 한 달로 정했다. 이것이 음력(陰曆)이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동양에서는 서양의 별자리와 다른 계통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적도 부근에 28개의 별자리를 만들어 28숙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28숙과 더불어 1,464개의 별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28개의 별자리인가. 28개의 별자리를 의미하는 ‘이십팔숙(二十八宿)’은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사용되어 온 황도와 천구의 적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28숙’이란 달이 희미하게 모습을 보인 뒤 만월에 이르기까지 1개월간의 운행 경로인 백도상(白道上)에서의 28성좌명(星座名)으로, 하나의 성좌에 날마다 ‘달이 머무른(宿)’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28숙은 오행과 길흉화복이 내포되어 있으며, 동방에 각항저방심미기, 북방에 두우여허위실벽, 서방에 규누위묘필자삼, 남방에 정귀류성장익진 등 28개가 자리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를 지낼 때와 사마의와 싸울 때에도 28숙이 나온다.
후한 또는 고조선시대의 유물에서도 청동거울에 고대문자로 새겨진 28숙의 명칭과 형태가 발견된다.
 중국 송나라 때에 3원 28숙 체계를 따른 ‘순우천문도’가 그려졌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자리 그림인 ‘천상열차분야지도’에 3원 28수의 체계를 따른 정교한 별자리가 그려졌다.
 고구려 사람들은 해에는 세발 까마귀(봉황이라고도 함), 달에는 두꺼비나 방아 찧는 토끼를 그려 넣었다. 특이한 것은 해는 반드시 동쪽에, 달은 서쪽에 그린다는 것이다. 북두칠성도 반드시 해와 달과 함께 그려졌다. 덕화리 2호분에는 이 별들 외에도 28숙의 별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동양 최고(最古)의 돌다리인 ‘진천농교(진천농다리,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는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는 다리로, 독특한 모습이 눈에 띈다.
 고려 고종 때의 무신 임연이 그의 전성기 시절에 고향인 이곳에 다리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체로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진 이 다리는 전국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임이 분명하다.
 농다리는 고려 초기 붉은 음양석을 이용해 축조된 지네 모양의 특이한 구조를 가진 돌다리로 1천여 년의 풍상을 이겨오고 있다.
 임장군이 음양을 배합하여 자주빛 돌로 축조하였는데, 상응 28숙에 따라 수문 28칸으로 축조하고 각 칸마다 1개의 돌로 이어 하나의 활이 뻩쳐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오래되어 4칸이 매몰되어 지금은 25칸만 남아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28숙에 따라 수문 28칸으로 축조하고 각 칸마다 1개의 돌로 이어 하나의 활이 뻗쳐 있는 것 같다고 나온다.
 그 구조가 자못 허술해서 장마 물이 넘칠 때면 다리 위로 흘러 거의 몇 길에 이르렀고, 노한 파도와 노한 물결이 그 사이에서 소리를 내었다고 하지만 일찍이 하나의 돌도 달아나지 않았다. 1개의 흩어져 있는 돌을 포개어 쌓은 것에 불과한데 1천년의 오랜 시간을 지탱하였는데 세상에서 신기하다고 일컫는 것이 당연하다.
  고궁박물관에 자리잡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국보 제228호)’이 바로 그것이다. ‘천상열차분야’에서 천상은 하늘 형체를 말하는 것이고, 열차는 황도 부근을 12지역으로 나눈 12차이며, 분야는 이에 대응하는 지상 지역을 말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건국의 당위성과 권위를 과시하고 하늘의 명에 따라 나라를 세운 것임을 알리기 위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갖기를 원했다.
 마침 고구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 돌에 새긴 천문도를 손에 넣은 태조는 별을 관찰하는 일종의 국립천문대라고 할 수 있는 서운관에 명을 내려 오래된 별의 도수 오차 등을 바로잡고 중성기를 편찬했으며, 그에 따라 천문도를 제작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1395년(태조 4년)에 권근 등 학자 11명이 수년간 노력한 끝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했다. 바깥 원 주위에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28개 구역으로 나눈 28숙이 새겨져 있고, 바깥 원과 작은 원 사이 공간은 이 28숙으로 나뉘어 있어 모든 별자리 도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태인 피향정(보물 제289호,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은 통일신라 정강왕때 태산 태수였던 최치원이 세웠다고도 하며, 그가 재직 중에 소요하던 곳이었다고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이 정자는 정자의 앞뒤로 상연지, 하연지 두 개의 연지가 있어 꽃이 피면 주위가 장관을 이루고 연꽃의 향기가 정자에 가득하다고 하여 ‘피향정(披香亭)’으로 부른다.
 내부는 마루를 깔았는데 앞뒤의 돌계단을 통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자마루의 아래는 28개의 원형의 돌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두리 기둥을 세웠다. 기둥이 30개가 되어야 하는데 중앙의 2개를 세우지 않고 28개를 세웠으니, 이는 우주의 28숙을 따른 것이다.
 전북 임실군 성수면 대운이재엔 2005년 운현전적의혼추모'가 제막돼 후손들에게 나라사랑의 의미를  더욱 되새겨 주고 있다.
 ‘임실독립운동사(저자 최성미)’는 기존의 의병사 부분에서 인적 사항이 잘못된 부분을 제적부 등을 통해 확인 수정했다.
 28명 의사들의 28숙을 찾은 게 성과 가운데의 하나다. 이석용의병장을 북극성으로 하여 동서남북 28숙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부여하여 별자리를 표석에 새겼다는 사실을 새로이 밝혀낸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진천농교
피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