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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61> 전북의 철비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60> 전북의 철비

'김제 유봉서 영세불망비' 가 1698년에 세워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북에서 가장 오래된 철비다.

고려금석원이 발간한 ‘한국철비대관(지은이 진한용)’을 보면 전북엔 ‘김제 유봉서 영세불망비’ 등 모두 9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북 최초로 철비의 실태를 조사한 자료로 눈길을 끌고 있다.

군산 3기를 비롯, 전주 2기, 김제 2기, 고창 1기, 정읍 1기 등 7기로 나타났다. 전국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철비가 많아 체계적인 학술조사 연구가 필요한 까닭이다.

전북에서 가장 오래된 철비는 김제 금산의 유봉서 영세불망비다. 1698년에 세워진 비로, 2005년경 금구면사무소 앞 국수집 화단에 있었으나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그는 흥양현감을 지냈다.

국립전주박물관의 소장품인 ‘현감이영공희하애민선정비(이희하선정비)’는 1738년(乾隆 三年 戊午 3월)에 건립됐다. 이 철비의 출처는 남원시 운봉면 신기리 448-10, 전체 높이는 108cm, 너비 41cm, 두께 6.8cm다. 현감 이희하는 영조 11년(1735년) 9월에 취임, 영조 14년(1738년) 2월까지 재직, 다음달에 애민선정비를 세운 것 같다. 전면의 서체는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고, 세운 연도는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전북대의 ‘관찰사이헌구청간선정비’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헌구(1784~1858년)는 전라관찰사 재직 시절(1837년 1월-1838년 12월)의 선정으로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평안감사 시절엔 산성 개축 등으로 국방의식과 무예 숭상 기품을 진작시켰다.

맑은 기품에 간결한 일처리였네
 그 빛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음이여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웁거니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淸兮簡兮(청혜간혜)
不顯其光(불현기광)
久而益慕(구이익모)
如何可忘(여하가망)

이헌구를 기리는 4언4구의 비문은 청아한 인품과 신속 정확한 일처리를 한 주인공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워진다는 내용이다. 전주 시내의 한 건물 축조 때 발굴된 이 비는 197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김제 금구의 관찰사 서상정(1813-1876, 1866년 11월-1870년 1월)의 영세불망비는 1870년, 어사 이돈상의 영세불망비는 1868년, 고창의 전 참판 김영곤 선정 불망비는 185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엔 정읍시 소성면 고교리 주정마을에서 1913년에 건립된 ‘철비(鐵碑)’ 1기가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비는 ‘도정(都正)’ 벼슬을 지낸 은진하가 성포면(소성면이 성포면, 소정면이 통합)의 호세(戶稅)를 대신 납부, 주민들이 그 은공을 잊지 않고자 면에서 세운 것으로 전면에 적혀 있다. 후면에는 대정(大正) 2년 계축(癸축) 9월로 1913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시대 때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사용하기 위해 군수물자로 빼돌리면서 많은 철비들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은 “지금도 임실 봉황대, 전주 추천대 등에 가면 철비를 꽂은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공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이종근기자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75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