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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고용집 '남정부'와 호남부, 호남시(강후석, 박영연), 호남가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26> 고용집의 '남정부'와 호남부, 호남시, 호남가

이종근이 그동안 연구한 남정부, 호남부, 호남시, 호남가를 연대에 의거, 정리해 여러분 앞에 소개합니다. 

남정부, 호남부, 호남시, 호남시를 노래한 호남의 지명이 들어간 작품으로, 54개~60여 개의 지명이 나옵니다.

'호남가(湖南歌)'의 시원, 죽봉(竹峯) 고용집 선생의 '남정부(南征賦)

'호남가(湖南歌)'의 시원(始原)이 죽봉(竹峯) 고용집(高用輯, 1672~1735)선생의 '남정부(南征賦)'로 보여지는 시각이 우세하다.

1938년 영모재(永慕齋)에서 간행한 시문집 '죽봉집(竹峯集) 44페이지를 보면,

'조선에 팔로(八路)가 있으니 호남 고을이 가장 아름답도다. 삼림이 어지러이 늘어선 정읍(井邑)이요 산이 웅장하게 솟은 나주(羅州)요'로 시작, '누런 벼가 들판에 가득하니 금구(金溝)요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산을 붉게 물들이니 금산(錦山)이라 50개의 성을 가리켜 모두 설명했으니 긴 봄날의 신선처럼 더 없이 기쁘도다'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전라도 임피현 출신(임피 술산 죽봉마을로, 현 대야면 죽산리 탑동마을)의 유학자로 알려져 있는 죽봉(竹峯) 고용집(高用輯, 1672~1735)선생.

'죽봉집(竹峯集)'은 당대 숙종‧영조 년간의 정치사, 임피현의 지역사, 시(詩)‧부(賦) 등에 남긴 문학사적 측면 등 다방면에 걸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고용집' 권1의 '남정부(南征賦)'는 호남지방을 다니면서 지명의 이름에 얽힌 의 미를 낱낱이 풀이했다.

선생은 여행과 풍류를 즐겨 이를 지어 호남지역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각 고을의 특색 있는 지명의 기상을 읊은 바, 호남의 지명이 들어간 최초의 작품 같다.

고용부의 '호남지방을 다니며(南征賦)'

'조선에 팔로(八路)가 있으니 호남 고을이 가장 아름답도다.
삼림이 어지러이 늘어선 정읍(井邑)이요
산이 웅장하게 솟은 나주(羅州)요
높은 산 천 길이나 되는 고산(高山)이요
땅이 만경창파 같으니 만경(萬頃)이라.
강이 산을 띠로 묶은 것 같으니 강진(康津)이요
고을에 금탕(좋은 샘물)이 있으니 장성(長城)이요
아름다운 구슬이 쏟아지니 보성(寶城)이요
기이한 재화가 많이 생산되니 능주(綾州)라
해남(海南) 땅은 아름답고 수려하며
옥구(沃溝) 땅은 하늘이 내린 비옥한 땅이로다
김제(金堤)는 물을 막아 제방을 쌓아 세웠고 진도(珎島)는 나라를 지킴에 아름답도다
전주(全州)는 자물쇠로 잠가 놓은 듯 온전하고
곡성(谷城)은 높은 성 우뚝 솟으니 보루로다
익산(益山)은 산천이 더욱 빼어나게 맑고 다시 수목이 무성하게 자라니 무장(茂長)이라
영광(靈光)은 신령한 빛 길러 모아 내었고
많은 선비 일어나니 장흥(長興)이로다
화순(和順)은 온화하고 순함을 쌓으니 명예가 발하고
흥덕(興德)은 덕과 의로움을 일으켜 절개가 굳도다
순천(順天)은 천성의 바탕이 순하고
임실(任實)은 실지를 맡아 실천을 하는도다
구례(求禮)는 전라도의 어진 선비들이 뜨고 조용히 용담(龍潭)에서 구름 바라보네
임피(臨陂)에서 길게 휘파람 불고
왕실을 보호하기로 맹세하니 부안(扶安)이요
어지러이 배 타고 제주(濟州)로 가니
다만 귀하기가 여산(礪山) 같도다 건도(하늘의 도)는 양(陽)에서 시작하니 흥양(興陽)이요
백성을 편안케 하는 성덕에 힘쓰니 무안(務安)이로다
천지의 큰 인을 열었으니 태인(泰仁)이요
창평(昌平)에 나아가니 세상이 태평하도다
백성들 돌아와 복종하며 모두 기뻐하니 함열(咸悅)이요
바다에 파도가 치지 아니하니 매우 고요하매 대정(大靜)이라 하였노라
좋은 운수 만나 오래도록 평안하니 장평(長平)이요
햇빛 더욱 찬란하니 광양(光陽)이라.
남쪽 언덕에 아름다운 초목 무성하니 남원(南原)이요
수정처럼 빛나니 진산(珎山)이로다.
봄에 못물 오래도록 가득하니 장수(長水)요
여름 산봉우리에 구름 너무도 기이하니 운봉(雲峯)이라
황금빛 풀 찬란해 붉게 빛나니 무주(茂朱)요
아름다운 과일 많고 향기로운 화초 무성하니 옥과(玉果)로다
누런 벼가 들판에 가득하니 금구(金溝)요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산을 붉게 물들이니 금산(錦山)이라
50개의 성을 가리켜 모두 설명했으니 긴 봄날의 신선처럼 더 없이 기쁘도다'

그 앞의 임영(林泳)의 '호남부(湖南賦)'와 그 뒤의 강후석(康侯錫)의 '호남시(湖南詩)'와 '호남가' 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먼 훗날 고창의 명창인 신재효가 판소리 '호남가'의 가사를 완성 짓는데 기본을 다졌을 것이란 시각이 상존한다.

임영의 '호남부'와 강후석의 '호남시'

조선시대에 호남부와 호남시다. '송사지' 등에 임영(林泳)의 '호남부(湖南賦)'와 강후석(康侯錫)의 '호남시(湖南詩)' 기록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영의 '호남부'


임영의 '호남부'는 호남의 한시도별지명노래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례이다. 옹몽진의 호서별곡보다 늦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도별지명노래의 한사로는 호서별곡의 다음이고, 한문전용 호남의 도별지명노래로는 가장 오랜 작가와 창작 시기가 밝혀진 작품이다. 영남에는 아직 한시도별지명노래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없다. 

'멀리 호남은 한 지방이어라
오십하고도 일곱 고을이 있다네
돌아보니 우리나라는 창평하여 번창하고 평화로우니
호남에 힘입어 편안하게 살고 있다네
지세는 전주라 완전하고
나라가 굳건하기는 장성이 있어서이네
산물이 화려하기는 보성이 있고
빼어난 인물은 영암이 있으리(하략)'

임영(林泳. 1649∼1696)의 '호남부'는 강후진(1685~1756)이 지은 '송사지(松沙誌, 무장읍지)'에 처음 채록했다. 

그는 전라도 무송(茂松)과 장사(長沙)를 합쳐 만든 무장(茂長)지역의 지지(地誌)인 '신편송사지(新編松沙誌, 전 2권)'를 편찬했다.

임영은 소과와 대과에 급제해 사가독서의 혜택을 받은 일급문인이었고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선생의 문집 '창계선생집(滄溪先生集)'엔 호남부가 실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못 궁금하다.

 

강후석의 '호남시'


강후석은 비록 진사가 아니지만 많은 시를 남긴 탁월한 재능을 나타냈다. 다음은 그의 '호남시' 다.

'호수의 남쪽 호남에 60개의 고을이 있었다네
고개와 바다를 천여 리를 지나면
오랜 옛날 우임금이 고산에 제사를 지냈다더라
괭이로 뾰족뾰족한 여산의 숫돌을 파내고
용담 용담에는 용안굴에 용이 잠들었다네
오색구름이 운봉의 중턱까지 피어오르고
진산의 보물이 북두칠성까지 뻗쳐 있구나
무주의 토란이 가을에도 생생하여라
듣기에 익산이 수도의 진산이었다네
또한 기다란 시내가 장수에서 끊임없이 흐르네
금주발이 전주에 온전하게 보존하였네
임실에 저장한 밤이 창고에서 넘친다네
김제의 버드나무 뚝 길이 십리나 되고
금산의 밀림에 단풍이 붉게 물들었네
큰집의 겹 담장이 금구를 금도랑으로 둘러 있네
나그네는 몇 번이고 임피의 산기슭에 머뭇거리네
평탄한 무우밭이 만경이나 넓구나
오랜 가뭄에도 옥구의 물은 쉬지 않고 흐르네
민심이 모두 넉넉하여 함열에서 기뻐하는구나
부안에 힘입어 나라와 가정이 오랫동안 안녕하니
우리 성군이 어질은 정치를 태인에서 베풀었고
정읍에는 우물정자로 반듯한 토지의 경계며
남원의 봄 언덕에서 포곡조가 풍년을 노래하며
고부의 언덕에 연기는 고향의 하늘을 감도네
만방의 넉넉한 인심이 흥덕의 감회를 더하는구나
하늘이 지키는 장성은 오늘도 우뚝하고
순박한 인심은 순창의 상가에서 보겠구나
진안의 어진 이웃과 인심은 어느 분이신고
평화는 번창하고 창평의 집집마다 풍요롭네
구례를 찾으니 옛 풍속이 아직도 남았네
구슬을 캐고 캐도 담양은 여전하네
곡성에 숨어 사는 군자를 찾으니
빛나는 옥과를 깨끗하게 씻어 내왔구나
무장의 소나무는 추위에도 푸르구나
고창의 가장 높은 곳 어디에서 쉬어 갈거나
(중략)고을의 이름이 정의라고 이리 아름다우랴
삼계와 진원만 오직 고을이 사라졌고
삼백년 동안 비어있는 옛터로 남아있네'

호남가

'호남가(湖南歌)'는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노래한 단가(短歌)이다.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 지방으로 건너와 여러 지명을 하나씩 들어가며, 지명의 뜻을 살려 그 지방의 특색과 풍경 등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단가 계열과 가사 계열이 존재한다. 신재효(申在孝) 창작설이 가장 유력하다.
'호남가(湖南歌)'는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 지방으로 건너와 각 고을을 편답(遍踏)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데 각 고을의 풍물과 자연의 경치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聖君)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하니”와 같이 지명풀이로 호남의 각 지명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은 “크게 인자(仁慈)하신 우리 성군 예악을 크게 흥하게 하시니”로 해석되는데, 태인과 장흥은 전라도의 지명이다. 

 '호남가'는 지명의 의미를 연결하는 일종의 언어유희를 통해 함평(咸平), 광주(光州), 제주(濟州), 해남(海南), 흥양(興陽), 보성(寶城), 고산(高山), 영암(靈巖), 태인(泰仁), 장흥(長興), 순천(順天), 진안(鎭安), 고창(高敞), 나주(羅州), 운봉(雲峯), 익산(益山), 담양(潭陽), 만경(萬頃), 용담(龍潭), 용안(容安), 능주(綾州), 금산(錦山), 남원(南原), 무장(茂長), 임실(任實), 옥과(玉果), 화순(和順), 함열(咸悅), 무주(茂朱), 영광(靈光), 창평(昌平), 무안(務安), 낙안(樂安), 동복(同福), 강진(康津), 진도(珍島), 금구(金溝), 김제(金堤), 옥구(沃溝), 임피(臨陂), 정읍(井邑), 순창(淳昌), 고부(古阜), 광양(光陽), 곡성(谷城), 구례(求禮), 흥덕(興德), 부안(扶安), 법성(法聖), 전주(全州), 장성(長城), 장수(長水), 여산(礪山), 남평(南平) 등 호남 지방의 54개 지명을 차례로 나열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작중 화자가 고창성에 홀로 앉아 나주 풍경을 관망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다분히 신재효(申在孝) 자신을 의식한 서술로 판단된다.

'고창성(高敞城)에 높이 앉아
나주(羅州) 풍경(風景)을 바라보니'

'호남가'의 소리대로 높이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고창성이다. 빼어난 유적으로 고인돌과 모양성(고창읍성), 선운사가 있다.
고창은 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모로비리국’으로 이름을 열었고 백제 때 ‘모량부리현’ 또는 ‘모양현’이었고 고려시대 이래 ‘고창현’이라 불렸다 한다.

이서구가 '호남가'를 지었다고고 하는데 근거는 없다. 다만 그가 전라도관찰사를 2번이나 지냈으므로 지었을 수도 있다.
단가 '호남가'는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에 처음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유성기 음반으로 발매되었고, 현재까지도 단가로 불리고 있다. 

임방울이 불러 유명해진 단가이다. 이 외에도 정정렬(丁貞烈), 하농주(河弄珠), 김금암(金錦巖) 등이 '호남가'를 음반으로 취입했고, 가야금병창으로도 불렀다. 이들이 부른 '호남가'사설은 모두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에 수록된 '호남가'와 같은 것이다.

'호남가' 악부

신재효의 '호남가'외에도 작자 미상의 노래가 필사본인 '악부(樂府)'에 전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성군이 흥덕(興德)하사 순천명(順天命)을 호시도다. 만민이 함열(咸悅)하니 격양가성이로다. 수령이 임실(任實)하니 무안민(務安民)하난도다. 우순풍조하니 민속이 순창(淳昌)이로다.
광산(光山)이 화개하니 화색이 무주(茂朱)로다. 고산에 일성(日盛)하니 수색이 김제(金堤)로다. 정읍(井邑)에 장수(長水)하니 곡성(谷城)에 창일(漲溢)한다. …… 한양 삼백년을 인의(仁義)로 치국하니 황하수 청결하니 성인도 남도날사 우리도 성왕을 뫼시옵고 동복(同福) 낙안(樂安)하러다'

무심코 보는 선생의 '남정부(南征賦)' 등 노래를  통해 호남 지역 지명의 뜻과 역사, 아름다움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그의 구구절절한 애민정신을 전북특별자치도 곳곳마다 널리 알려야할 때이다.

 

박병연 전 기령당 당장이 1983년(癸亥) 신정(新正)에 지은 ‘호남시’

 

‘높은 산(高山) 위에 익산(益山)이 있으니 어느 누가 여산(礪山)을 녹록하게 여길까 

전주(全州)와 무주(茂朱)는 임실(任實)을 거치고 기쁘고(咸悅) 평안(咸平)하니 모두 낙안(樂安)일세 

여름날 잔잔한 바람 구름봉(雲峯)에 불어오고 겨울 날 눈보라에도 양기를 일으키네(興陽) 

강진을 휘감아 안은 비단같은 나주(羅州)요 우뚝 선 영험한 바위(靈巖) 광주를 빛내네 

용담(龍潭)의 아래 긴 강(長水)이 흐르고 방죽 옆 금도랑(金溝)은 옥구(玉溝) 사이라네. 

진도와 진산은 진원(珍原)으로 날아가고 안정에 힘쓰고 안녕을 도우니 바로 진안(鎭安)이라

 곡성(谷城)과 능성(綾城)은 하나같이 긴 성이요 예 구하고(求禮) 덕 일으키니(興德) 참 보물성이네(寶城) 

만약 호남이 순박과 창성(淳昌)을 노래하면 크게 어질고 길이 흥하여 제주(濟州)를 구제하리

 세 산의 정기 어린 골짜기로 금산(錦山)이 순수하고 네 강의 물결 멀어도 만경(萬境)의 연못이 되네 

퉁소 구멍 같은 정읍(井邑)에서 고창(高敞)이 시작되고 넓고 밝은 광양(光陽) 진실로 무성하고 길다(茂長) 

민심이 화순(和順)하니 복록이 함께 하고 집안 번성하는 창평(昌平) 천명을 따라서 라네(順天) 

누가 임피(臨陂)를 찾아 김제로 갈꼬 못 남쪽(潭陽)에 쌓고 용안(龍安)을 보전하네 

눈 가득한 옛 언덕(古阜)은 오직 옥과(玉果) 뿐 남평(南平)에 달 비쳐 신령한 빛(靈光) 퍼지네 

봄 구름에 호랑나비 남쪽 언덕(南原)을 날고 가을날 기러기 해남(海南)에서 부르짖네’

 

*흥양은 고흥의 옛 이름이며, 진원은 장성군 진원면 지역이다. 능성은 화순군 능주면, 후에 능주군이 됐다. 무장은 고창군 무장면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