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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고용집의 '남정부(南征賦)'





'호남가(湖南歌)'의 시원(始原)이 죽봉(竹峯) 고용집(高用輯, 1672~1735)선생의 '남정부(南征賦)'로 보여지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본보 24일자의 기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영모재(永募齋)에서 간행한 시문집 '죽봉집(竹峯集) 44페이지를 보면,

 

'조선에 팔로(八路)가 있으니 호남 고을이 가장 아름답도다. 삼림이 어지러이 늘어선 정읍(井邑)이요, 산이 웅장하게 솟은 나주(羅州)요'로 시작, '누런 벼가 들판에 가득하니 금구(金溝)요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산을 붉게 물들이니 금산(錦山)이라. 50개의 성을 가리켜 모두 설명했으니 긴 봄날의 신선처럼 더 없이 기쁘도다'

 

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그 뒤의 임영(林泳)의 '호남부(湖南賦)'와 강후석(康侯錫)의 '호남시(湖南詩)'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먼 훗날 고창의 명창인 신재효가 판소리 '호남가'의 가사를 완성짓는데 기본을 다졌을 것이리라.'호남가(湖南歌)'는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노래한 단가(短歌)이다.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 지방으로 건너와 여러 지명을 하나씩 들어가며, 지명의 뜻을 살려 그 지방의 특색과 풍경 등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단가 계열과 가사 계열이 존재한다.신재효 창작설이 가장 유력하다.

 

선생은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탑동마을에서 태어나 조선후기 최고 문장가로 알려졌다. 옥구 입향조 고돈겸의 18세손, 문총공 고경의 14세손이고 문충공파 사직공파의 파시조 고인충의 10세손이며, 선조 조에 무장현감을 지낸 고몽진의 증손이고 노직으로 통정대부를 받은 고이원의 손자이며, 고필의 장남이다. 외조는 신경녕이고 처부는 이지양이며, 후처부는 삼척진씨이고 삼처부는 권두강이다. 성품이 훌륭하고 효도에 돈독하며 일찍이 시와 글을 지어 여러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사람들이 신동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김집과 송시열의 문하에서 오직 학문 연구에만 전념해 성리학과 경서(經書)에 몰두했다. 북헌 김춘택과 교의가 두터웠으며, 이관명, 이휘지, 민진원, 김진상 등 당대의 명사들과도 교류했다. 

 

 유고 문집 '죽봉집'은 3권 1책으로, 209수의 한시, 수필, 편지글, 기행문, 축문, 임금께 올리는 상소문, 행장, 만장 등이 수록됐다 권두에 민병승, 이중명, 최병심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인 고동화, 고도상,고명환 등의 발문이 있다.

 

그는 당시 정치적으로 혼탁한 상황 속에서도 민의를 위해 올곧은 자세로 임금에게 수차례 상소문을 올렸으며, 부모님께는 효성이 지극한 효자로 시를 잘 지었다. 그는 임피지역에 학문적 영향을 크게 끼친 조속, 김구 등과 같은 명유(名儒)를 숭상하는 데 노력한 전북의 숨겨진 유학자다.

 

선생의 뜻을 이어 받아 봉암서원의 복원과 군산 동부권 향토역사 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해 죽봉기념사업이 추진되기를 바란다. 그는 고향의 유림들과 협의, 스승인 김집이 배양되어 있는 봉암서원(鳳巖書院)에 사액하고, 정읍에 송시열이 배양되어 있는 고암서원(考巖書院)을 창건할 것을 소청했다. 

 봉암서원은 군산 최고(最古)이자 최초의 사액 서원으로 1660년 설립, 자암 김구와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1695년 사액(賜額) 받았지만 지금은 훼철돼 그 터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임피면 ‘서원마을’ 이름에 흔적이 남아있다. 이 서원을 복원해 방학 때 학생들 교육과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발표, 세미나 장소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죽봉의 문학적 전통이 근현대까지도 이어져 임피지역의 고형곤(전 전북대총장), 고건(전 국무총리) 등과 문화예술계 낭곡 최석환(미술), 고람 전기(미술), 채만식(문학), 황병기(음악) 등의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음에 더욱 더 주목해야 한다.

 민선8기 지방정부가 2022년 7월 1일 출범 이후 4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가운데 우리 국민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광역자치단체장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를 긍정 평가보다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구구절절한 애민정신을 전북특별자치도 곳곳마다 널리 알려야할 때이다. 난세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한 절개로 살다간 그의 족적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심코 보는 선생의 '남정부(南征賦)'를 통해 호남지역 지명의 뜻과 역사, 아름다움을 새롭게 배울 수 있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