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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51> 완주 구이의 효자 유득용, 삼강행실 동국효자도록에 완주 구이에 '득룡폐부' 기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51> 완주 구이의 효자 유득용, 삼강행실 동국효자도록에 '득룡폐부(得容蔽父)' 기록

완주군 두방리 유경식 집안에는 1615년 효자도록 유전되고 있다. 유경식 집안에서 이 책이 유전되기 있는 것은 유득용에 대한 기록이 이 책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동국효자도록 '득룡폐부(得容蔽父)' 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幼學 柳得容 全州人 壬辰倭亂 父年八十 不能運步 敵至欲害其父 得容以身翼敵 請
代死 俱被害 今上朝旌門)

유학 유득용은 전주 사람이다.(전주유씨 라는 의미다) 임진왜란에 아비의 여든이라 능히 운신하여 걷지 못 하더니 도적이 이르러 그 아비를 헤치고자 하거늘, 득용이 몸으로 가리고 대신 죽음을 청하다가 둘 다 해를 입게 됐다. 이에 왕이 정문(旌門)을 하사했다.

전주유씨 지파 족보 초간본(1628년) 30에 유득용에 대한 기록은, '정유왜란 봉친입산 공피적해 이효정표(丁酉倭亂 奉親入山 共被賊害 以孝旌表)' 즉 정유왜란 때 득용이 아버지를 모시고 산에 들어가다가 적들로부터 함께 피해를 입어 그 효를 기리기 위해 정문을 내렸다는 기록이다. 정유재란은 1597년 8월 27일 ~ 1598년 12월 16일까지의 일이다. 
당시 일본군들은 1597년 9월 25일(음력 8월 15일) 남원에서 전

투를 벌였고, 1597년 9월 29일(음력 8월 19일) 전주성 전투에서 조명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바로 이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유득용의 사건이 일어난 것도 1597년 9월의 일로 추정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 가운데 한 폭인 '석진단지(石珍斷指)'는 완주 고산의 이야기다.
 '석진단지'는 ‘석진(石珍)이 손가락을 자르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이다. 손가락을 잘라 효도를 했다는 비범한 이야기는 '삼강행실도'에 여러 사례가 나온다.
'석진단지'의 주인공은 조선 초기의 효자로 알려진 유석진(兪石珍, 1378~1439)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석진이 행한 효행은 병든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약을 만들어 드려 아버지를 회생시켰다는 내용이다. 실존인물의 일화다.
유석진은 기계유씨(杞溪兪氏)로 완주군 고산현에 살았다.
한편 2023년 12월 구이면지 편찬 자료 수집 과정에서 '삼강행실동국효자도록'과 함께 '전주유씨 지파 족보' 필사본이 발견됐다. 
이 족보는 1628년 생원 유창길(柳昌吉)이 작성했다. 이 족보는 전주유씨 지파 최초의 족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 초·중기 지역의 혼맥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 구이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