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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내소사 동종의 역사를 알고보니]1850년 농부가 밭메다 발견한 내소사 동종, 국보됐다





"내소사 동종(銅鍾)은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어디 하나 부러진 곳 없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국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최근들어 부안에서 열린 내소사 고려동종 국보 승격 기념식에서 국보지정서를 월봉 진성 주지 스님에게 전달하면서 "저는 장인 한중서를 만난 인연으로 뛰어난 주조 기술과 문양 속에 담긴 고려 종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동종 전문가로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청장은 홍익대 대학원 재학 당시 금속공예를 전공하며 청동북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내소사 동종 장인 한중서를 만났다.
'부안 내소사 동종'은 높이 103㎝, 입지름 67㎝ 크기의 종으로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드러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크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후 60여 년 만의 국보 승격이다.
봉래루 옆 보종각에는 살아 숨쉬는 고려범종이 있다.
국보로 승격될 수 있었던 것은 한중서라는 고려 최고의 장인이 있다. 그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내소사 동종 뿐 아니라 보물로 지정된 고성 옥천사 청동북, 고령사명 청동북, 신룡사명 소종 등을 제작했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는 도인 허백과 종익의 주관 아래 장인 한중서가 700근(420㎏) 무게로 내소사 동종을 1222년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종은 본래 부안 청림사에 봉안됐다가 청림사 폐사 후 땅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농부가 발견해 철종 때인 1850년 내소사로 옮겨졌다.
이때 인근 사찰에서는 서로 범종을 달라고 졸랐고, 지혜로운 농부는 갈 곳을 범종에게 물어보았다. “개암사로 가겠느냐?”하고 종을 치고, “실상사로 가겠느냐?” 종을 쳤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소사에 가겠느냐?”하고 종을 쳤더니 그제야 우렁차게 소리가 나서 내소사로 보냈다는 인근 촌로들의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범종소리는 ‘부처님의 음성’이니, 부처님의 말씀에 따른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 범종에는 중생의 원을 들어주기 위해 급히 하강하는 불보살의 모습이 있다. 얼마나 급히 내려오셨으면 이를 어쩌나! 불보살의 머리 위 보개(寶蓋)는 미처 따라오지 못해 영락을 휘날리면서 같이 가자며, 급히 뒤따르는 모습이 재미있다. 범종으로 인해 또 한 번 살아 있음을 느껴는 내소사가 됐다.
이 내용을 적은 이안기도 몸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종의 크기는 높이 103㎝, 입지름 67㎝다.
동종은 용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용뉴(용 모양 걸이), 종의 어깨 부분을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 문양으로 입체적으로 장식하고, 몸체에 삼존상을 부조로 배치한 점, 섬세한 꽃잎으로 표현된 4개의 당좌(종을 치는 나무 묵대가 닿는 부분), 균형 잡힌 비례와 아름다운 곡률을 가진 몸체 등 뛰어난 장식성과 조형성을 갖고 있다.
직접 종의 예술적 가치를 열정적으로 설명한 최청장은 “봉안처, 발원자, 제작 장인 등 모든 내력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세부 장식은 단연 고려 범종의 백미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