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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북의 용 지명을 알고 보니] 229곳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아

2024년은 청색에 해당하는 천간(天干) ‘갑(甲)’과 용에 해당하는 지지(地支) ‘진(辰)’이 만난 청룡(靑龍)의 해이다. 서구문화, 게임의 영향으로 용은 불과 악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우리 용은 '비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도 간다'라는 속담처럼 비와 물을 상징한다.
우리 민속에서의 용은 비와 물을 상징하여 수신(水神), 우신(雨神) 등으로 나타난다. 조상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빌었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용에게 풍어(豐漁)와 안녕(安寧)을 빌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우리나라 지명에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용’이다. 국토지리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고시 지명 약 10만개 중 열두 띠 동물 관련 지명은 4,109개(4.1%)다.
용 지명은 전국 1,261곳에 쓰여 호랑이(虎) 관련 지명 389곳의 약 3배, 토끼(卯) 관련 지명 158곳의 약 8배 많아 한국인의 유별난 용 사랑을 반영했다.
용두산(龍頭山)이나 용두암(龍頭岩)처럼 지형 형태에서 유래한 용 지명 등이 많다. 또 용은 물에 산다고 전해져 여기서 유래된 검룡소(儉龍沼), 용유담(龍遊潭) 같은 지명도 있다.
용 지명은 전남 지역에 310곳으로 가장 많았고, 전북(229곳), 경북(174곳), 경남(148곳), 충남(111곳) 순이다. 전북 도내의 경우, 마을이 19개, 산 3개, 고개 3개, 굴짜기 1개, 기타 1개 등이 있다.
완주군 봉동면 구암리에는 배미산이 있으며, 김제 금산면 금성리에는 ‘배암날’(등성이) 등의 뱀 지명이 있다.
남원시 인월면에는 뱀등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옛날 중국의 이여송이 우리나라 산천을 답사할 적에 이 곳에서 초중반사(草中盤蛇)의 대혈이 있다 한데서 유래한다. 그 뒤 사람들이 비암등으로 부르다가 현재는 뱀등이라 부른다.
임실군 임실읍에는 용요산이 있다. 이 산은 옛날에는 큰 뱀이 있다고 해 사요산이라고 불렀는데, 후에 이 산 모양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 같다고 해서 용요산이라고 불렀다. 장수군 장수읍에는 사두봉이라는 산이 있다. 옛날 이 산 봉우리가 높아 봉화를 올렸다 하며, 봉우리가 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사두봉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고창군 무장면에도 사두봉이 있다.
이 가운데 지리산은 뱀 지명 박물관으로 40여 곳에 뱀 관련 지명이 깔려 있다. 북서쪽(남원쪽)에는 비암쏘(산내면 대정리, 덕동리, 부운리 등 여러 곳), 뱀사골(산내면 부운리), 비암동(동면 서무리) 등 뱀 지명을 갖고 있다.

전주 용머리고개

전주의 용머리고개는 전주에서 부안과 김제로 이어지는 작은 고개이다. 지금은 고개 주변으로 많은 상가와 집들이 들어서서 그 옛날 이름있는 고개였다는 사실이 무색하다. 하지만 용머리고개의 연대와 유래 등이 정확히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로, 선조들이 용머리 같다는 고개라 하여 龍頭峙(용두치, 용두현, 용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오면서, 용의 형상을 닮은 큰 인물의 출현을 바라고 또 바랬다. 이 고개는 완산의 산자락과 다가산이 이어지는 산마루이다. 용머리라는 명칭은 이 지역의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겨서인데 다가산과 유연대 자락과 연계해서 보면 용의 머리 형상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곡창지대인 인근의 정읍과 김제, 부안으로 연결되는 고개이다. 이 때문에 많은 곡물이 유통되던 장소였다. 아울러 큰 도시였던 전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며, 조선 왕조의 본향이라 그 의미가 큰 전주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했다. 이 때문에 이 곳에는 산적들도 많이 들끓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전주에서 인물이 많이 나는 고장이라 하여 이 고개의 혈을 잘라 정기를 끊고자 했다. 그때 난 길이 용머리고개를 가로지르는 도로이다. 전주시민들은 전주의 혈을 끊었다면서 이를 아쉬워했다. 옛날에는 구제날망 또는 제말랑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일제시대에는 완산교 다리를 건설하여 용의 형태인 산능선을 도로로 개설, 용의 허리를 끊은 후로부터 용머리 고개라 불리어 왔다는 구전도 보인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청동기 사람들 부싯돌로 튀는
햇볕 몇 낱이 바삭거린다.

조선낫은 풀무질로
버얼겋게 익어가고
징소리 몇 줄기, 쇠붙이 여음이
잉걸불이 된다.

산천초목의 귀를 깨우는 담근질
물과 불이 만나서 상생(相生)하며
날이 서는 명도(名刀)
불꽃으로 얼룩거리는
위험한 지각(知覺)의 빛을 털고
어둠을 베어내는 생애의
스스로 조선낫이 된다.
뜨겁던 가슴을 열고 나와
차거운 새벽이 된다.(소재호시인의 용머리고개 대장간에는)

'사랑사랑 내 사랑아'를 힘껏 불러보면 좋으련만 출,퇴근길 이곳은 교통지옥과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다만, 한일민속대장간의 김한일씨와 광명대장간의 김창수씨를 통해 옛일을 견주어볼 수 있을 뿐이다. 달구면 달굴수록 강해지는 무쇠같은 전주인들의 삶이 힘찬 망치칠과 담금질을 거쳐 언제, 어느 때 승천(昇天)하는 용으로 거듭날 것인가.

강감찬 장군과 기우제의 전설이 깃든 전주 용머리고개

강감찬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신앙과 전설로 회자되는 유명한 장군이다. 강감찬 장군이 전주에도 왔었는데, 이 고개를 막 지나칠 때였다. 전주에 비가 오지 않아서 곡식이 말라죽고 있었다. 이때 강감찬장군은 하인에게 “저 앞 강에 가면 초립을 쓴 동자가 강을 건너고 있을 터이니 데려 와라.”고 했다. 하인이 초립동이를 데려오자 강감찬 장군은 “마을이 이렇게 가물었는데 그냥 지나치다니 몹시 괘씸하구나. 당장 비를 내리지 않으면 네 목을 치겠다.”고 외쳤다. 그 초립동이는 용이 인간으로 변신을 한 것이었는데 강감찬장군이 알아본 것이다. 그러자 초립동이는 갑자기 용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면서 마을에 비를 뿌렸다. 용은 너무 힘을 쓴 탓에 승천하지는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 때문에 이 곳을 용머리고개라 한다고도 한다.


전주 용머리고개 전설, 몸뚱이가 둘이 달린 소

마한(馬韓)의 기운이 쇠잔할 당시 민가에서 머리는 하나인데 몸뚱이가 둘이 달린 소를 낳은 이변이 생겼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일수이신(一首二身)'이 태어나고 홍수가 범람하는 것은 용왕이 크게 일어날 징조라고 하자 인심은 날로 흉흉해졌다.
이때 전주천은 좁은목에서 폭포로 떨어진 물이 지금의 다가산 밑에서 급히 소(沼)를 이루어 물이 많았고, 물살 또한 급류였다. 전주천에서 자란 용이 천년을 기다려 승천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전주천의 물을 모조리 삼킨 후 하늘에 오르려고 힘을 쓰다가 떨어지고 말았는데, 힘이 빠져서가 아닌, 천 년에서 하루가 모자란 것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용이 떨어진 곳은 완산칠봉의 계곡으로, 당시만 해도 사람이 다니지 않은 원시림이었다. 승천하지 못한 한(恨)을 품었던 용(龍)의 머리가 지금의 용머리고개에 떨어졌으며, 용머리의 형상이라고 하여 용머리고개로 부르고 있다.


용 지명이 많은 완주 용진읍

완주군 용진읍이 '용진읍지'를 펴냈다. 이름하여 '완주군의 수도 용진(龍進)'이다. '용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용진읍은 서방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거울처럼 맑은 물의 소양천과 고산천이 휘어 감싸안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그래서 용 지명이 아주 많다.

용교(龍橋. 미네다리. 미나다리)

부분명-복구석이 용교의 본 이름은 미나다리다. 용의 순수 국어는 ‘미르. 미리’지만 ‘미나. 미네’는 그 변한 말이고, ‘다리’는 고대 지명에 있어 ‘들’이라는 말이다. 용교 뒤에는 용소(龍沼)가 있어 미네다리는 그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복구석이는 개가 엎드린 형상의 바위가 있어 생긴 명칭.

용암(龍岩里. 용바우)

부분명-척동(尺洞. 잣터) 용암은 이 마을 옆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생긴 이름인데 지금은 없다. 척동의 본시 이름은 잣터다. 잣은 성(成)의 순수 국어로, 이곳은 성터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뒷산 능선이 잣대와 같이 곧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용흥리(龍興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용진읍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흥리 녹동리 봉암리 시게리 시중리 반룡리 시천리 도계리 일부를 병합, 용흥리라 하여 용진읍에 편입함.

용복(龍伏)

뒷산 모양이 용이 엎드린 것 같다고 함.

김제 용지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들의 이름에 ‘용(龍)’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연못(池)이 많으므로 용지면(龍池面)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지(龍池), 화룡(化龍), 쌍룡(雙龍), 용와(龍臥) 등을 병합, 용지면이라 하고 김제군에 편입했다.

순창 용골산

용골산(龍骨山)은 남쪽 방향에 지리잡고 있는 무량산(無量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삼면이 섬진강으로 둘러 쌓여 있다. 그리고 기암괴석이 많아 자연경관 또한 매우 좋고, 전설을 매우 많이 간직한 산이다. 적성에서 순창방향으로 가다가 갓고개를 못미처에 있는 중산리 버스승강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용골산(龍骨山)과 무량산이 모두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이 마치 용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량산(無量山)의 이름은 자원이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산의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또 용골산과 무량산은 용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 수려한 자연경관이 많다.용골산의 남쪽방향인 어치리 내룡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오르면 천연동굴인 아흔아홉개의 용굴이 있는데, 세번째 용굴까지는 사람이 갈 수가 있으나, 네번째 용굴부터는 불을 켜도 앞을 분간할 수 없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이뤄진 용골산 정상인 상봉의 신선바위와 산중턱에는 삼형제바위, 그리고 최근까지 스님들이 찾아와서 축조했다는 절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용골샘 등이 있다.

진안 마이산의 여름 이름 '용각봉'

진안 마이산은 계절별로 그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는데 봄에는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의 돛대와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형상이 푸른 숲과 바위가 어우러져 용의 뿔과 같이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과 바위의 형상이 말의 귀와 같아 마이봉(馬耳峰)이라 부르며 겨울에는 하얀 눈 위에 솟은 봉우리가 먹물을 찍은 붓과 같다고 해서 문필봉(文筆 峰)이라고 부른다.

고창 용수리와 용계리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龍水里)는 풍수지리상 마을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마을 전체 형상이 용(龍)의 꼬리 형국이라고 한다. 용은 물[水]이 있어야 잘 산다는 관념에 따라 청천마을 앞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 후부터 용수마을이 잘살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아산면 용계리(龍溪里)는 용이 계곡에 살며 등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수는 오암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비룡출수형(飛龍出水形)’ 묏자리가 있다고 한다. 용암은 용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용바우가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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