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임실군청 제공>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이 있는 덕치 진뫼와 천담, 그리고 구담은 임실 섬진강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덕치면 진뫼에서 조금만 섬진강 상류로 거슬러 가다보면 덕치면사무소 앞 길가에 설보비(雪洑碑)가 있다. 1879년부터 이곳에 무심히 서 있는 이 비석은 1639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임실 설보비(雪洑碑)는 1879년에 조성된 것으로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 위치한 비석으로 높이는 88cm이며, 비문은 송사(松沙) 기우만(寄宇萬, 1846~1916) 선생이 지은 것이다. 내용은 병자호란 전후로 대가뭄에 1639년 춘분날 밤에 ‘애석(崖石) 사이로 눈자취[雪㾗]’를 따라 보를 쌓고 수로를 내어 회문리 일대에 관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운학(雲壑) 조평(趙平)선생의 공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마보(洗馬洑), 서리보, 설보라고 불렀으며, 농경문화유산에 대한 기록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1879년 그 후손 청경 조병용 선생이 다시 설보를 수리한 후에 세운 비석이 이 오늘의 설보비이다. 임실 덕치면의 설보비는 섬진강 물길을 8㎞나 개척한 것으로, 이 보는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1639년) 수로이다. 이 비는 2022년 임실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무형유산조사연구 4 ‘전통 관개지식과 수리문화’발간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료와 자료들을 소개했다.
회문리 일대에서는 설보와 봇도랑 축조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1997년에 발간된 ‘임실군지’에 실린 설보 전설은 다음과 같다.
‘설보는 현재 덕치면 회문리 뜰을 관개하기 위한 수로시설로, 1634년부터 시작되어 몇 차례의 실패 후 1639년에 완공됐다. 1639년 춘분날 밤 (조평의)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갈천에 가면 눈이 내린 흔적이 있을 것이니, 그 눈길을 따라 보를 쌓으면 뜻을 이룰 것”이다라 하고 사라졌다. 이에 조평은 다음 날 눈길을 따라 말뚝을 꽂아 정표를 해두었다. 다음 날부터 주민들과 힘을 합하여 돌과 목나무를 마련, 정표를 따라 수로를 만들었다’
2022년 8월에 있었던 현장 조사에서 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위의 인용 내용보다 좀 더 상세하다. 설보는 신기하게도 섬진강변 언덕 끝에서 다른 편 끝까지 '채기'가 비스듬하게 놓인 곳에 설치됐지만, 보로 가둔 물을 회문앞들까지 끌어오는 일이 난관이었다. 그래서 조평은 봇도랑을 어떻게 낼지 고심하였는데, 어느 날 꿈에 회문산 밑을 따라서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다음날 꿈에 나온 대로 눈이 내린 자리에 '절읍'을 꽂아두고 이 표시를 따라 봇도랑을 냈다. '채기'란 큰 바위를 기리키는 임실의 방언이다. ‘절읍’은 삼대를 찐 후, 삼베의 재료로 사용되는 껍질을 벗긴 나머지 대의 부분을 가리키는 임실의 방언이다.
조평은 임실현감의 도움을 받아 회문리 등 일대의 인력을 총동원해 지게로 절읍을 운반해 복도랑을 놓을 자리를 표시하고 괭이로 파서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회문리 설보는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보로서, 보 축조 연혁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비석이 내려오고, 콘크리트로 개축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이용되고 있는 보라는 점에서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개축되면서 보의 위치는 변경됐지만 과거 보가 있었던 자리가 남아있고, 봇도랑 노선은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회문리 설보는 조선시대 사족(士族)에 의한 산간 구릉지의 보 축조와 개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전설에 따르면 보를 처음 축조한 조평은 관내 수령에게 요청해 인력을 제공받아 설보와 봇도랑을 완성할 수 있었다.이 내용은 전설이기는 하나 사족이 주도한 개간사업에서 인력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그 일면을 보여준다.
설보 축조와 관련된 전설과 콘크리트로 개축되기 이전까지 존재했던 보막이 관행은 보를 이용해 관개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 축조기술뿐만 아니라 봇도랑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였음을 보여준다. 콘크리트 시설로 교체되기 전까지 설보를 이용하는 회문리 일대의 사람들은 공동 작업반을 조직, 설보와 봇도랑 관리를 해왔다.
설보 또는 서리보 전설이 내려오는 보들은 하상의 높이가 몽리답보단 5m 정도 낮고, 사질 함량이 높은 토양으로 외부로부터 관개수를 공급받지 않으면 논바닥에 물을 담수하기가 어려운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런 지형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봇도랑을 설치하여 관개수를 끌어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모래가 많이 섞인 땅이기 때문에 관개수가 봇도랑을 통과하는 동안 누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설보 또는 서리보 전설은 현몽이라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와 같은 환경 조건과 봇도랑 축조기술을 모두 담고 있는 전통지식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회문리 설보는 보가 있는 곳과 몽리구역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도 보의 이용 방식이 지형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임실엔 회문리 설보를 비롯, 관촌면 방수리 방수리보, 강진면 갈담리 서리보, 그리고 순창군 현포리 설탄보 등 섬간강변에는 눈 또는 서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 여러 개의 보를 갖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무형유산조사연구 5 ‘덕장과 건조 기술’도 이번에 같이 펴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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