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출신 독립운동가 최전구(1850~1936)선생의 초상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사’ 석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이 초상화는 세밀하고 구체적인 표현에서 채용신만의 필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906년, 현재 보물로 지정된 최익현의 반신상을 그린 바 있는 채용신은 오늘날 그 업적이 재조명된 진주 의기 산홍(山紅) 등 여러 항일투사의 초상을 남겼다.
최전구 초상 역시 이에 해당하는 귀한 작품으로, 그림의 좌측 하단에 1921년 3월이라는 제작 연도와 채용신의 서명이 전한다.
또한 화제 끝 부분에 적힌 ‘팔십옹 (八十翁) ’이 라는 구절을 통해 비교적 석지 노년의 필치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초상의 주인공은 단정히 관복을 차려 입고 정자 세로 자리한 좌상의 형태로 그려졌다.
전통적인 조선시대 초상 화 형식에 따라 양 손은 서로 포갠 채 긴 소매 깃 사이로 가렸으 며, 높은 사모를 쓰고 쌍학흉배를 단 관복에 금각대를 두른 모습이다.
무릎 사이로는 그의 이름과 인적 사항이 적힌 호패가 드러나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최전구는 잘 알려진 그의 항일 행적만큼이나 초상에서도 불굴의 의지가 잘 드러난다. 날카로운 눈매에 또렷한 두 눈동자는 반듯이 정면을 응시하며, 곧은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까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아마 강한 그의 항일정신을 그대로 초상에 투영하고자 하는 채용신의 노력이었으리라 짐작해보는 대목이다.
비슷한 시기 채용신은 최익현의 모습을 한 번 더 그리게 되는데, 최전구 초상과 같은 관복 차림에 입상의 형태로 그를 표현했다. 바로 1925년작 면암 최익현 초상으로, 사모와 짙은 녹색의 관복에 쌍학흉배, 금각대와 호 패까지 출품작과 유사한 형식을 보인다. 두 초상 모두 세밀한 터럭 표현은 물론, 지긋한 얼굴 주름선과 음영 표현까지, 인고의 세 월을 견뎌낸 흔적이 석지의 필치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고스란 히 전해진다.
또한 채용신이 최대한 실제 인물의 생김새에 입각해 초상을 그린 흔적은 각기 다른 이목구비, 그 중에서도 특징적인 귀의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배경으로는 바닥에 화문석을 깔고, 호랑이 가죽을 덮은 의자가 자리해 역시 조선시대 초상화와의 연계성을 보여주며, 족자도 제작 당시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귀한 사료이다.
함께 출품된 작자미상의 산수도 한 폭은 그린 이를 알 수 없으나 초가 민가의 군집과 높은 산세 사이가 굽이진 길의 표현으로 보 아 실경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 화가의 솜씨로 볼 수 없으나 그려진 장소만큼은 최전구의 생활 터전이었던 고창의 한 지역 내지, 그가 의병활동을 벌였던 곳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 다. 이 작품 역시 원 족자의 형태가 잘 남아 있다.
1914년 2월, 정삼품의 최전구를 정이품의 정헌대부로 승진시키고 독립의군부의 특파내외순찰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의 이마패(二馬牌)가 찍힌 칙명 등 중요한 사료들이 함께 소개된다.
최전구(崔銓九)는 고창 성송면 학전리 출신으로, 한말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을 도와 의병활동에 적극 가담했다. 면암을 대마도까지 호송한 최측근으로 조선의 국권 회복과 자주 독립을 설파하고 군자금 조달 등에 기여한 공으로 지난 1990년에 애국장을 수여받은 독립유공자다.
서울옥션은 19일 오후 4시 옥션 강남센터에서 '제176회 미술품 경매'를 갖는다. 고미술 섹션에 '독립운동가 최전구의 초상 및 관련 유물'이 선보인다.
이번 경매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유묵 등 78점이 출품된다. 박서보, 앤디 워홀, 쿠사먀 야요이, 정상화 등 국내외 현대미술 거장들의 대표작을 비롯, 백자 등 다양한 고미술품도 이번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는다. 안중근 의사의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龍乕之雄勢豈作蚓猫之熊)’는 일본에 소재하던 작품을 국내로 환수한다는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1910년 3월, 안 의사의 사형 집행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 제작됐으나 사형을 앞둔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 필치가 시원스럽고 당당하다. 또, ‘용과 호랑이의 용맹하고 웅장한 형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견하겠는가’라고 해석되는 글귀와 함께 안 의사의 상징인 지장이 선명히 찍혀 있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안의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이종근기자
최전구는
은 최전구는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을 계기로 면암 최익현崔益鉉, 1833-1907의 의병부대에 가담했다. 이후 활발히 의병활동을 펼치던 최전구는 최익현 부대가 순창에서 패전한 뒤 그와 함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해배 후 1910년 한일합병이 이뤄지자 일본의 침략행위를 십대죄목十大罪目으로 규정하고 이를 성토하는 통고문을 일왕에게 보내려다 체포되었으며, 이후 경상남도 욕지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이듬 해에는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해
더욱 활발히 독립활동을 벌였으며, 1914년부터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특파내외순찰사特派內外巡察使로 활약다 1917년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이 죄목으로는 경기도 영종도에서 1년 여간 유배 생활을 했으며, 1919년 고종이 하직하자 단식 투쟁을 하는 등 1936년 8월, 충청북도 청주의 독선재獨鮮齋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독립운동가로서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그가 마지막을 보낸 청주 성송면 학천리에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남정록南征錄』과 『유고遺稿』 4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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