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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부안출신 김옥진의 육자배기

'김옥진 육자배기(지은이 유영대, 유민영, 펴낸 곳 부안문화원, 출판 흐름출판사)'는 김옥진, 홍성덕, 김금미, 박지현 등 4대(代)로 이어지는 국악 명가의 실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책자다.
 부안 산내출신 김옥진명창의 삶에 대한 조명과 남편 홍두환 명고의 집안 내력을 조사, 그가 동학농민혁명과 관련성을 갖는다. 홍필언, 홍계관, 홍순열이 그의 선조라는 홍정택선생의 구술이다.  홍두환은 홍순열의 장남이며, 김옥진이 1대, 딸 홍성덕이 2대, 손녀 김금미가 3대, 증손녀 박지현이 4대라고 기록했다. 이 책은 1부 김옥진 옥자배기, 2부 홍성덕 육자배기, 3부 화려한 육자배기로 구성, 김옥명창과 4대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국악의 천재로 회고되는 옥보 김옥진씨는 19041117일 부안 내소사 앞마을 원암마을에서 출생했다. 김씨는 가난한 산촌의 농가에서 태어나 가까이 로 산을 보고 멀리로 바다를 보면서 성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홍두환씨로 판소리 명고수였다. 홍씨는 서예와 함께 창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살고 있는 마을로부터 30여리 넘는 곳에 줄포가 있었다. 거기에는 7일마다 장이 섰다. 장터에는 활터가 있었고, 종종 소리 굿판이 벌어졌다. 가끔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나갔다. 이에 홍씨는 아버지는 어린 딸의 청을 기특하게 받아들였던지 활터와 소리를 하는 인근 마을의 사랑방에 종종 데리고 갔다. 때론 한량들이 말을 타는 곳에도 함께 가서 승마의 기초 요령을 배우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소리를 좋아해 광주 권번에 입소했다. 권번(券番)은 조선시대에 있던 기생청의 후신이라 할 수 있지 만 일반 기생과는 엄격히 구분됐다. 김씨는 어느 모로 보면 매사에 돌진형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 이었는지 무엇이든지 보면 만져보고 싶어 안달했고 시작하면 기어코 성사시키고 말았다.

6.25 한국전쟁때 북한으로 납치당할 뻔한 위기를 견뎌낸 그는 부안 읍내 자유시장으로 이사했다. 이른 바 본정통으로, 자유당 정권 시절 신시장과 구시장을 끼고 신설 읍내 본토 시민이 생활에 편리하고자 개설됐다. 그는 식당을 차렸다. 하지만 호구지책이 되지 못한 까닭에 전주로 이사했다. 이사한 곳은 국악인 홍정택씨의 작은 방이었으며, 딸 홍성덕은 부안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가 전주 풍남초등학교로 이사했다. 홍성덕씨의 작은 아버지가 바로 홍정택이었다.

김씨는 홍성덕이 15세가 될 무렵 전주국악원을 수소문하여 입교시켰다. 홍씨로 하여금 백도극장에 들어온 여성국극 선화공주를 보게 하는 등 국악의 길을 막지는 않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임방울과 이중선이 함께 했던 소리꾼 동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선은 소리를 못다 하고 부안 매창뜸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녀는 생활고와 병마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접는 세월로 가게 됐다.

김씨는 가야금을 좋아했다. 특히 육자배기로 자신의 한을 연주했고 시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육자배기를 잘 불러 여수 등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임실 국악 공연 춘향전단막극에 출연했다. 청중들이 즉흥적으로 육자배기 소리창을 하게 되자 임방울 명창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성덕아! 육자배기 쇠음악이 듣고 싶구나그녀는 69세에 전주 다가동 자택에서 운명했다. 묘는 부안이 아닌, 전주 효자동 공원묘지에 자리잡았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이번 주에 치러진다. 비석 하나 없이 쓸쓸하게 누워 있는 현실이 사뭇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