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변산은 풍광이 특별히 빼어나 예부터 방장산이나 봉래산 같은 삼신산의 하나로 불렸고, 많은 시인 묵객들이 변산을 즐겨 찾아와서 그 경치를 읊었다. 고려시대의 이규보를 비롯,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문인들이 변산 관련 시들을 남겼다. 조선시대에 전라도가 삶의 터전이었던 많은 문인·학자들과 부안 변산에서 우거했던 반계 유형원이나 교산허균 같은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라도관찰사로 내려왔던 인물들, 그밖에 유람 목적으로 변산을 방문했던 많은 문인들의 시문들이 전해지고 있다.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의 '변산가(邊山歌)가 '현주집(玄洲集)' 2권에 전하고 있는 만큼 처음으로 소개한다. 그는 남원에 살았던 자로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등 전국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그가 무슨 이유로 변산을 방문했는지, 또 일행이 있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부안엔 아직도 한문해석이 안된 책들이 많다. 본보가 아직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부안의 명문장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그는 세 번에 걸쳐 파직의 아픔을 맛보았다. 산은 바닷가에 있어서 산을 '변산'이라 칭했으니 그런 실상을 모르다면 어찌 이름을 알겠는가 근심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경영함도 없으며 나가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고 보고 듣지도 않네라며, 내가 성내며 꾸짖으려고 하니 하늘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네, 오직 높은 뫼 큰 골짝만이 기심(機心)이 없어 한가로우니 배를 세 번 두드리고 세 차례 노래하리라 하면서 변산의 품을 보듬었다.
조찬한의 '변산가(邊山歌)'
웅장한 산 오래된 산봉우리 높고 험하며 우뚝한데 삐죽삐죽 엉켜 비스듬히 뻗어 두터운 대지에 서려있네 *과아(夸娥)와 *거령(巨靈)이 원기(元氣)를 호흡했으니 혼돈의 세계와 접하여 울창하네
*과아: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이로 신(神)을 지닌 과아씨(娥氏)를 말한다. 북산(北山)의 우공(愚公)이 앞에 산이 가로막혀 통행이 불편하였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옮기려고 매일 흙더미를 덜어 내었는데, 이에 감동한 천제(天帝)가 과아씨를 내려 보내 그 산을 등에 업고 다른 곳에 옮기게 했다.(列子湯;愚公移山)
*거령 : 전설에 화산(華山)을 쪼갰다고 하는 하신(神)의 이름이다. 옛날에 산 하나가 하(河)를 막고 있어 하수가 빙 돌아서 흘렀는데 거령이 이 산을 둘로 쪼개어 하수를 곧게 흐르게 하였다고 한다.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거령이 힘차게 손바닥으로 높이 떠받들고 발바닥으로 멀리 차 버려 하수를 흐르게 했다.[巨靈履屬高掌遠蹠 以流河曲]”라고 했다.(문선)
큰 파도 거센 물결 콸콸 흐르며 넘실넘실 부딪치며 성대하게 흐르니높은 하늘을 찢고 문지르는 듯 격하게 *귀허(歸墟)로 들어가서 *명해와 발해를 끼고 이리저리 흐르네 바람 절벽, 안개 낀 골짝은 아득히 멀고도 어둡고 곰·큰곰·범·들소가 놀라 부르짖으며 함께 일어나네 우레 같은 파도, 번개 같은 물결 솟구쳤다가 되몰아치니' 어별과 교룡들 솟아올라 서로 기대고 있네 해는 집 동쪽에서 뜨고 달은 집 서쪽으로 들어가고
*귀허: 전설상 바다 속에 끝을 알 수 없는 계곡으로 모든 물들이모이는 곳이다. '열자(列子)'의 '탕문(湯問)'에 “발해(渤海)의 동쪽에 몇억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곳에 큰 골짜기가 있는데, 실로 밑이 없는골짜기이다. 그 아래는 밑이 없고, 이름을 귀허라고 한다. 장담 주에 '귀허는 혹 귀당으로 되어있다'고 했다.[渤海之東, 不知幾億萬里, 有大壑焉, 實惟無底之谷. 其下無底, 名曰歸墟․ 張湛注:‘歸墟, 或作歸塘]”라고 했다.
*명해와 발해 : 원문의 명발(溟渤)은 명해(海)와 발해(渤海)의 합칭으로, 보통 대해(大海)를 가리킨다.
아침저녁으로 *형문(衡門)은 열었다 닫혔다 하네 한 사람의 *복희씨(羲皇氏) 천년 동안 광막한 물가에서 아득히 세속과 떨어져 있고 그럭저럭 태초와 함께 이웃했네 율리(栗里) 땅 세 오솔길의 도연명 무이구곡(武夷九曲)의 주문공(朱文公) 한 시대의 진유(眞儒)이자 만고의 맑은 바람이라네 나는 지금 다만 수립하는 것이 없을 뿐만아니라 나는 이미 *나를 잃고 육체만 남았다네 *낚시하지 않고 흙을 쌓지 않고 몸소 밭갈지 않고
*형문(衡門) :형문은 두 기둥에 나무를 가로 대어 만든 문으로 소박하고 누추한 은자의 거처를 의미한다. '시경'의 '형문(衡門)'에 “형문 아래는 놀고 쉴만하네.[衡門之下, 可以棲遲]”라고 했다.
*복희씨 : 전설상의 복희씨 때 백성처럼 아무런 욕심 없이 한가롭게 생활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도연명(陶淵明)의 '여자엄등소(與子嚴等疏)'에“오뉴월 중에 북창 아래에 누워있다가 서늘한바람이 잠깐 지나가기라도하면, 스스로 희황 시대의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말이 있다.
*나를 잃고 : 원문의 상아(我)는 내가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으로,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어 저와 나의 구분이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장자 제물론)
*낚시하지... 않고 : 원문의 부조(不釣), 불축(不築), 불궁경(不躬耕)각 강태공(姜太公), 부열(傳說), 제갈량(諸葛亮)의 고사를 가져와서 이세 사람들과 달리 작자는 세상을 경영하려는 뜻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즉, 강태공처럼 때를 기다리며 곧은 낚시를 하다가 문왕에게 발탁되기를 도모하지 않고, 부열처럼 성을 쌓다가 은(殷)나라 고종(高宗)에게 발탁되기를 도모하지 않으며, 제갈량처럼 남양(南陽)에서 밭을 갈다가 유비(劉備)에게 발탁되는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의미.
졸리면 곧 자고 깨면 주역을 읽는다네 내 마음 알아주는 것은 북두성이요 내 얼굴을 아는 것은 *동해약이라네 *대추는 오이만 할 필요 없고 *복숭아는 항아리만 할 필요가 없네 씹으면 상쾌한 기운이 뺨과 이 사이에 떠다니고 묵묵히 웃는 서왕모는 머리가 희네 흰머리로 곤륜산 비탈을 자주 왕래하니 *어찌 수고롭게 내려와서 주목왕과 한 무제에게 읍을 했던가.
*동해약(東海若): 원래는 북해약(北海若)인데 변산이 중국에서 보면 동해이기 때문에 현주가 동해약이라 붙인 것이다. 북해약에 대한 이야기는 '장자(莊子)'의 '추수(秋)'편에 등장한다. <추수> 편에서는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이 북해약(北海若)에게 대도(大道)에 대한 가르침으로 ‘우물안 개구리[井底之蛙]'나 '여름벌레가 얼음을 의심한다[夏蟲疑氷]’라고 하는 등의 내용을 전해주었다고 했다.
*대추는...없네 : 고대의 신선 안기생(安期生)과 관련된 고사이다. 안기생(安期生)은 전설상의 신선 이름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소군(少君)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해상(海上)에 노닐면서 신선 안기생을 만나 보았는데, 그는 크기가 오이만 한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 [臣嘗游海上 見安期生 食巨棗 大如피"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사기 권28 봉단서) 여기서는 변산 자체가 선계이기 때문에 굳이 안기생처럼 큰 대추를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복숭아는... 없네 : 복숭아는 아래 구절에서 서왕모(西王母)가 나오므로 서왕모(西王母)가 심은 반도(桃)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왕모의 복숭아는 3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태평광기 권3) 여기서도 변산 자체가 선계이기 때문에 굳이 서왕모의 복숭아가 클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어찌...했던가: 서왕모가 신선이면서 주나라 목천자(天子)를 요지에서 맞아 연회를 베풀어 준 사실과 한무제가 선도(仙道)를 갈망하여 서왕모를 만나고자 빌었더니, 칠월 칠석에 서왕모가 아홉 빛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와서 한 무제에게 천상의 술과 천도복숭아를 선물로 주고, 상원부인(上元夫人)을 불러 둘이서 함께 한 무제에게 장생불사의 방도를 깨우쳐 준 것을 말한다.*열자 주목왕 한무제내전)
진인(眞人)으로 돌리려 한 것 또한 경박하니 *세 번 쫓겨나고 세 번 들어간것' 나를 탄식케 하네 나의 기가 떠돌다 이 구역에 막혔으니 *막고야산의 신인'이 머무는 것과는 어떠한가 콸콸 흐르는 것 우뚝 솟아 높은 것 만고토록 만만고토록 푸르고 푸르러 곧바로 넓고 광대한 내 기와 함께 담백하게 서로 벗하며 천성을 보전하여 옛날과 벗하지 않고 지금과 벗하지 않고 오직 이 산을 벗하리라.
*세 번...것 : '논어의' 미자(微子)'편의 유하혜가 사사(士師)가 되어 세 번 쫓겨나도 현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원용한 것이다. 현주가 탄식한다는 것은 현주 역시 세 번의 파직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심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현주는 1611년(광해3) 40세 때 사간원정언이 되어 정민홍(鄭興)을 탄핵하다가 파직당했고, 1617년(광해9) 46세 때 백마적(白馬賊) 탈옥 사건으로 영천(川) 군수에서 파직당했으며, 1624년(인조) 53세 때 이괄(李适)의 난으로 어가가 남천(南遷)할 때 뒤쳐졌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파직됐다.
*막고야산 신인(堯姑射山 神人):'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막고야(姑射)의 산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피부는 빙설(氷雪)과 같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은 처녀와 같다.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을 들이키고 이슬을 마시고서 구름 기운을 타고 비룡(飛龍)을 몰아 사해(四海)의 밖에서 노닌다. [姑射之山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라고 했다.
산은 바닷가에 있어서 산을 '변산'이라 칭했으니(山在海邊山稱邊) 그런 실상을 모르다면 어찌 이름을 알겠는가 근심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경영함도 없으며 나가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고 보고 듣지도 않네 때때로 *검영(黔嬴)이 조화의 화로를 안고 근심하는 것을 보고 내가 성내며 꾸짖으려고 하니 하늘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네 오직 높은 뫼 큰 골짝만이 기심(機心)이 없어 나와 같이 한가로우니 *나는 배를 세 번 두드리고 세 차례 노래하리라.
*검영: 천상에 있는 조화(造化)의 신이다. 여기서는 조화의 신인 검영이 인간의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근심하는 것을 보고 이미 기심이 없는 작자가 검영을 꾸짖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초사(楚辭)'의 '원유(遠遊)'에 “검영을 불러서 득실을 보이게 하고, 나를 위해 먼저 평평한 길로 앞서가게 하네.[召黔嬴而見之兮, 爲余先乎平路]”라고 했다. 이 구절의 주석에서 왕일(王逸)이 조화의 신에게 득실을 묻는 것이다.[問造化之神以得失]”라고 했다.
*나는 노래하리라 : 이 구절에서 세 번 배를 두드리며 세 차례 노래한다는 것은 기심이 없는 '높은 뫼[高岑], 큰 골짜기[大壑], '시인 자신 셋의 한가로움을 노래한다는 의미이다.(도움말 한국학호남진흥원의 '현주집')/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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